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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약소국 특징 활용한 외교…동북아 평화 중재에 적극적

등록 2015-05-20 21:37수정 2015-05-21 13:47

지난달 29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역에서 중국을 향하는 국제열차 앞에서 몽골인들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러시아~몽골~중국을 잇는 이 철도는 몽골의 생명선이다. 사진 박영률 기자
지난달 29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역에서 중국을 향하는 국제열차 앞에서 몽골인들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러시아~몽골~중국을 잇는 이 철도는 몽골의 생명선이다. 사진 박영률 기자
[강대국 사이에서] ④ 몽골
“외교는 몽골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몽골에서 만난 많은 몽골인들이 한결같이 강조했던 말이다. 몽골은 중국과는 4710㎞, 러시아와는 3452㎞의 국경선을 접하고 있다. 한반도의 7.5배에 이르는 영토를 300만명의 인구와 1만6000여명(국경수비대 포함)의 병력만으론 지킬 수 없다. 당연히 외교는 안보의 핵심 수단이다. 냉전 이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몽골 외교에는 몇가지 원칙과 시사점이 있다.

몽골은 중·러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완충국이다. 외교의 핵심은 당연히 중·러 사이의 세력균형 유지다. 슈르후 몽골과학아카데미 부설 국제학연구소장은 “제일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잡는 것으로, 몽골은 거의 500년간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두 강대국 사이 힘의 균형이 유지되면 몽골의 독립도 유지됐고, 균형이 깨지면 몽골은 어느 한쪽에 종속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뒤 10여년간 중-소의 평화가 유지되던 시기에 몽골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잡힌 대외정책을 펴나갈 수 있었다. 현재 수도 울란바토르의 오래된 건물 대부분이 당시 중국의 원조로 지어진 것이다. 이 시기에 소련은 몽골의 공장 건설을 지원했다. 1960년대 들어 중-소 이념 갈등이 격화하자 몽골은 소련 쪽으로 기울었다. 중국에 가까운 남쪽 국경을 봉쇄했고, 소련군의 주둔이 시작됐다. 담바 간바트 몽골국가안전보장회의 산하 전략연구소장은 “당시 중-소 무력충돌이 일어났으면 몽골이 전쟁터가 됐을 것”이라며 “냉전 종식 후 몽골 외교의 제1원칙은 당연히 중·소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몽골은 1993년 러시아군(옛소련군)이 완전 철수한 이후 어떤 외국군의 주둔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인구 300만명·병력 1만6천명…
국가안보에 외교가 핵심 인식
1993년 러시아군 완전철수 뒤
‘외국군 주둔 불허’ 원칙 확고

‘울란바토르 대화’ 제안 등
지역문제 해결 적극 참여 나서

몽골은 중·러의 과도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제3의 이웃’ 개념을 도입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캐나다 등과도 관계를 확대했다. 지난달 29일 울란바토르 도심에 있는 ‘서울의 거리’ 입구를 몽골 젊은이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박영률 기자
몽골은 중·러의 과도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제3의 이웃’ 개념을 도입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캐나다 등과도 관계를 확대했다. 지난달 29일 울란바토르 도심에 있는 ‘서울의 거리’ 입구를 몽골 젊은이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박영률 기자
‘다시 중-러 관계가 악화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몽골이 ‘제3의 힘’을 끌어들여 러시아와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줄이려는 ‘다극화’ 전략이 나오게 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개혁개방에 여념이 없던 1990년대에 몽골은 제3의 이웃에 손을 내밀었다. 슈르후 소장은 “미국 주도의 서방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을 줄이고 몽골을 도와줄 ‘제3의 이웃’이라 판단해 20년 가까이 그 길로 갔다”고 말했다. 미국 등이 몽골에 우호적으로 접근하고, 개혁개방으로 경제력을 회복한 중국도 몽골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가자 러시아 역시 더이상 무관심할 수 없게 됐다. 미국·중국·유럽연합·일본·한국이 몽골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을 본 러시아는 몽골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우려해 2003년 몽골 채무의 97%를 면제하고, 나머지 채무 상환 기한도 연장하는 조처를 내놓았다.

몽골은 역사적 전환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몽골은 소련의 힘을 빌렸다. 구한말 조선은 열강의 각축전 와중에 나라를 잃었지만, 비슷한 시기 몽골은 준완충국으로서 반쪽짜리 독립이긴 했지만 주권을 지켜냈다. 1990년 중·러의 힘이 약해지자 ‘제3의 이웃’을 향해 나아갔다. 미·일 해양세력과 중·러 대륙세력의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는 지금을 또 다른 기회로 판단한다. 바야사흐 몽골국립대 국제관계대학장은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몽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특징을 오히려 ‘이점’으로 활용하려는 외교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동북아 평화의 중재자로 나서겠다며 제안한 ‘울란바토르 대화’에 대해 주변국들은 처음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몽골은 정치적 대화를 중심에 둔 전략이 주목을 받지 못하자 정부·민간 교류를 병행한 ‘투 트랙 전략’으로 선회했다.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는 동북아에서 소국인 몽골은 주변국으로부터 위협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점을 살려, 울란바토르를 동북아 국가들의 대화의 장으로 만들어 몽골의 외교적 위상을 키우려 한다. 간바트 전략연구소장은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등 지역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몽골의 생존전략”이라고 말했다.

울란바토르/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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