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포트브래그 특수작전부대 기지에서 미군 제82공수부대가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미 중부사령부로 향하는 민간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란이 미국에 대해 “결연한 보복”을 천명한 가운데 미군은 보복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사전 방어행동 차원에서 부대 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AFP 연합뉴스
미국이 이란 군 실세인 카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공격해 살해한 뒤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다음달 아덴만 해역에 임무교대를 위해 파견되는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확대하는 형식으로 ‘호르무즈 파병’을 검토하던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불사’ 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호르무즈 파병은 이란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우리 군이 전쟁에 휘말리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호르무즈해협 공동 방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해온 상황에서 벌어졌다. 정부 관계자는 5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악화되면서 우리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파병과 관련해 이야기가 더 진전된 것은 없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각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로 이란 군이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현재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이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 퇴치 작전을 펼치고 있는데, 6개월 단위 임무 교대 일정상 다음달 왕건함(4400t급)과 교체될 예정이다. 아덴만에서 호르무즈해협까지는 직선거리로 1800㎞인데 왕건함으로 늦어도 사흘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라는 점 등을 고려해, 정부는 이때에 맞춰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호르무즈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왔다.
미국-이란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파병’에 대한 우려와 비판 여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분쟁지역에 우리 군이 가게 되고, 이란과의 관계 악화, 중동 지역 교민들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라크에 1600여명, 이란에 290여명, 이스라엘에 700여명,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에 150여명의 한국 국민이 체류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나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 등을 고려해 미국의 요청을 100% 무시하기도 어렵다. 외교부 당국자는 “호르무즈해협은 원유 수송이나 상선 운항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국제사회 노력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고, 아직까지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북-미 비핵화 협상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의 ‘일촉즉발’ 상황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 무게중심이 중동에 쏠릴 수밖에 없어, 북-미 협상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국제지역학)는 “중동 전체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미국이 비핵화 협상 등 한반도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는 현상 유지 차원의 관리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동에 집중하면서 북-미 협상의 교착 국면이 길어질 경우 북한이 강경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 여부에 따라 대응 방향을 달리할 수 있다며 ‘새로운 전략무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공격을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고로 보는 것은 과잉 해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키운 것은 탄핵 국면 돌파용 성격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관계가 좋기 때문에 강경책의 대상으로 이란을 선택했다. 북한에 대한 경고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노지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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