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강경화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뉴질랜드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를 거부했다는 문제로 연일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일단, 외통위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 장관 사이의 대화를 그대로 복원해 봅니다. 둘의 공방을 자세히 살펴 보면, 현재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강 장관과 외교부의 인식을 비교적 날 것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 외교관 건과 관련해선 공개 사과를 하신 거죠?”(이상민 의원·아래 ‘이’)
“예,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강경화 장관·아래 ‘강’)
“그런 우리 나라 국민께 한 것이고, 뉴질랜드 정부나 뉴질랜드 국민이나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과를 안 하실 겁니까.”(이)
“상대국에 대해서 사과하는 부분은 쉽사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강)
“쉽사리 결정을 안 하면, 쉽사리 빨리 진상규명을 해야지 2년여 넘는 동안에 뭐 하시는 건가요?”(이)
“예?”(강)
“그에 대한 책임은 해당 공직자뿐 아니라 그 지휘 감독 라인에 있는 장관님까지 포함해서….”(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분명히 책임을 지겠습니다만….”(강)
“국민께 공개사과까지 했잖습니까.”(이)
“국민께 사과하는 것은 분명히 국민을 불편하게 해 드렸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이구요. 나라 간의 관계에서 상대국에 사과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강)
“장관님, 제 말씀을 들어보세요. 나하고 논쟁하자는 겁니까?”(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답변을 드리는 상황입니다.”(강)
(긴 시간 서로를 응시)
“국민께 공개 사과를 할 정도의 사안이고, 대통령이 정상 통화하는 동안에 나온 의제면 그게 가벼운 사안입니까.”(이)
“가볍게 생각지 않고 있구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 부분입니다만.”(강)
“국민에게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정부나 그 피해자들에 대해서.”(이)
“그거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강)
“어떤 문제입니까, 그러면….”(이)
“예. 양국 간의 관계의 기본 틀이 있고요. 그 틀이 의제가 되지 않아야 될 게 의제가 되면서 틀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감안을 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강)
“아니 그런 거 감안하는 과정이 뮙니까.”(이)
“나라가 외교부 장관이 다른 나라에게…”(강)
“아니 대통령이 정상 통화하는데 그 얘기가 나와가지고 국제적 망신을 당했는데…. 결과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장관?”(이)
“그렇다고, 국내적으로는, 대통령께 대해서는…. 뉴질랜드에 대해서 과연 책임을 져야 할지 안 져야 할지.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사과는 못 드립니다.”(강)
(긴 시간 서로를 응시)
“아니 장관이 지금 뭘 잘했다고. 장관!(언성 높아짐) 장관이 지금. 대통령이 지금 뉴질랜드 정상하고 통화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했는데 얼굴 들고 다닐 수 있는 상황입니까.”(이)
“의제가 되지 않아야 할 게 의제가 된 데 대해서는 뉴질랜드의 책임이 큽니다.”(강)
“장관, 책임 지세요.”(이)
“책임지겠습니다. 책임지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외교부 장관이 다른 나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강)
“그게, 챙피한 건지 아시오?”(이)
먼저, 두 사람 모두 동의하는 부분부터 정리해 봅니다. 강 장관과 이 의원 모두 뉴질랜드에 근무하던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이 정상 간의 전화회담에서 거론될 만큼 중대한 사안(강 장관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이 됐다는 것과, 이 문제에 대해 2년 넘게 속 시원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엔 동의하고 있습니다. 강 장관은 이 사실을 인정하며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강 장관은 앞선 24일 화상으로 열린 외교부 실국장회의에서 “2017년 말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발생한 성비위 사건이 지난달 28일 두 나라 정상통화 과정에서 제기돼 우리 정부의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며 ”청와대로부터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정상간 통화에 이르기까지 외교부의 대응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전달 받았고 이를 검토해 신속히 적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외교부는 지난달 말 뉴질랜드 현지 언론들 통해 이 문제가 불거진 뒤, 한달 가까이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조사와 징계 절차가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이처럼 외교부가 지난 한 달 간 성추행 사건 처리에 잘못이 없었다고 항변해 온 점에 대해선 여러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강경화 장관과 이상민 의원의 설전 광경을 전하는 유튜브 방송 영상.
그렇다면 동의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 할 사안”이냐는 것입니다. 강 장관은 사과를 거부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상대국인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가 저지른 외교 결례입니다. 애초 지난달 말 정상 간 전화 회담 의제가 아닌 외교관 성추행 문제를 아던 총리가 갑자기 꺼내 “의제가 되지 않아야 될 게 의제가 되면서 틀어진 부분”이 있는만큼 “그런 것을 다 감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던 총리의 갑작스런 언급에 외교부가 크게 감정이 상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외교부 장관이 다른 나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국격’을 거론했습니다.
강 장관의 태도는 옳은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문제가 한 나라가 다른 국가의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할 사안이라 보지 않습니다.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문제는 한국 정부가 주도하거나 개입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국가 범죄’가 아닙니다. 게다가, 해당 외교관이 뉴질랜드에서 다음 임지로 이동한 것은 2018년 2월로 피해자가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기 전이었습니다. 즉,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범죄 혐의가 짙은 해당 외교관을 ‘면책 특권’을 이용해 빼돌린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해당 외교관에게 ‘감봉 1개월’의 경징계를 내렸다는 점에 대해선 여러 비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교부가 내부 규정에 따라 내린 조처에 대해 상대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일입니다.
뉴질랜드 정부가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뉴질랜드의 일관된 주장은 해당 외교관이 뉴질랜드에 입국해 자국 형사 절차에 따라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교부는 지난 3일 해당 외교관을 귀임 발령내면서도 뉴질랜드 정부가 요구하는 ‘입국 조사’에 대해선 선을 그었습니다. 해당 외교관이 형사처벌이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나가서 조사받으라”고 등을 떠밀 순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해당 외교관도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한국 국민입니다. 그렇기에 외교부는 두 나라 사이에 체결된 ‘범죄인 인도조약’ 등 강제력이 있는 법적 절차에 따라 이 문제가 처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이 같은 외교적 처사는 한 국가가 취할 수 있는 ‘합리적 대응’이라 봅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강 장관의 태도라고 봅니다. 저는 강 장관이 제기한 ‘외교 결례’나 ‘국격’이 사과를 거부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 정부의 어떤 행위로 인해 외국 국민에게 피해를 입었다면, 상대국 정상이 ‘외교 결례’를 했더라도 외교부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과감하고 분명한 언어로 허심탄회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강 장관이 외교 결례나 국격을 논하기 전에 이번 문제는 한국 정부가 뉴질랜드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사안이 아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나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2016년 5월 오키나와에서 미군 군속이 현지 여성을 성폭행한 뒤 주검을 유기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주검은 여행 가방에 버려진 채 3주나 방치돼 있었습니다. 이 천인공노할 범죄를 확인한 일본 정부는 그날 밤 10시45분 캐롤라인 케네디 당시 주일 미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캐롤라인 대사는 “(이 사건은) 비참한 비극이며 피해자의 친구와 가족을 생각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경찰과 정부와 전면적으로 협력해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런 비열한 범행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방방 뜨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오키나와의 비극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일본법에 의해 제대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케네디 대사과 오바마 대통령이 한 것은 분명 사과가 아닙니다. 이들은 상대국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는 ‘유감 표명’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강 장관도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요.
“해당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에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늦었지만, 피해자가 납득할만한 합리적 후속조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인과는 달리 국가는 사과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만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선 강경화 장관과 의견이 같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성의 있는 유감 표명을 해볼 순 없었을까요? 한국 정부가 이런 허심탄회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강 장관이 언급한 대한민국 ‘국격’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