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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삼성 게이트라고 불러야”

등록 2020-09-02 14:52수정 2020-12-25 20:0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40
경제민주화 김종인 위원장이 증언하는 삼성 이야기
90년대 이건희 회장 자동차 사업 진출 로비 비화도
이재용 회장 기소된 날 경제민주화 정강·정책 의결
박용진-정의당 환영 논평…민주당-통합당은 ‘침묵’
삼성 불법 승계 진상은 재판으로 철저히 규명해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한 혐의로 2020년 9월 1일 검찰에 의해 기소됐습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미래통합당은 바로 이날 상임전국위원회를 소집해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정강·정책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전혀 별개의 사안인 것처럼 보이는 두 사건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사실은 이렇습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 의혹 등을 덮기 위해 정권 최고위층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은밀히 접근해 로비했습니다. 이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의 여파로 새누리당은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당명을 계속 바꿔가며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최후의 수단은 경제민주화 원조 김종인 위원장을 다시 불러 당을 개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지금 수술대 위에 올라 배를 가른 중환자 신세입니다.

검찰의 이재용 부회장 기소는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치가 살아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앞으로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입니다.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이 “우리 사회에서 불법적인 방식과 편법 특혜로 상장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장악하거나 세금 없이 부를 상속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원칙이 분명하게 세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논평했습니다.

정의당의 김종철 선임대변인은 “검찰의 용단을 평가하고 환영한다”며 “법원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주기 바란다”고 논평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정당은 매일 벌어지는 중요한 사건에 대해 대변인이나 부대변인 이름으로 수많은 성명이나 논평을 내놓습니다.

9월 1일 하루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개회,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 두기, 의사 집단휴진, 방탄소년단 빌보드 차트 1위, 민경욱 전 의원 자가격리 무단이탈에 대해 논평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부동산 가격, 김홍걸 의원 남북경협 관련 주식 소유, 민주당 의원들의 공직자 위협, 검찰 인사에 대해 논평했습니다.

하지만 두 정당 모두 검찰의 이재용 부회장 기소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일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낙연 대표는 물론이고 다른 최고위원들도 검찰의 이재용 부회장 기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삼성과 재계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김종인 위원장과 미래통합당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미래통합당은 1일 상임전국위원회와 2일 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당명 개정안과 함께 정강·정책 개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했습니다.

‘국민의 힘’의 새로운 정강·정책에는 경제민주화가 포함됐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강령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회복한다.

10대 기본정책

<3-2. 경제민주화 구현 >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경제 질서를 수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한다.”

#1.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주체 간 불공정 행위 엄중 처벌

#2. 조세정의 확립 위한 세금운용 현황 투명 공개 및 탈세 탈루 근절 강화

#3. 상시 지출구조조정 및 페이고 원칙 확립

김종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그중에서도 재벌개혁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2012년에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에서 재벌개혁의 필요성과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특정 재벌이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언론에는 광고를 무기로 기사 보도와 사설의 논조를 좌우한다.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등 여러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재벌로 하여금 사회가 요구하는 룰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결코 만능이 아니다. 일정 범위 내의 규제 없이는 시장경제 자체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극도로 찬양한 막스 웨버도 시장의 문화는 절제의 문화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타고난 탐욕 때문에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 시장경제 원리가 지속적으로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 틀을 잡아 주어야만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 시장경제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

“재벌의 탐욕을 억제하는 데 과거 정부에서 시도했던 출자총액제한이나 순환출자 금지 등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재벌 그룹 계열의 상장회사 이사회가 민주적이고 투명한 감시 체제를 갖추도록 이사회 운영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른바 황제경영에 의한 폐단을 없애기 위한 체제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가 경제민주화 ‘총론’에 해당한다면, 2020년 출판한 ‘영원한 권력은 없다’라는 김종인 위원장의 회고록은 경제민주화 ‘각론’에 해당합니다.

자신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직접 겪은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의 충돌, 재벌과의 힘겨루기 등 구체적인 사례를 자세히 기록한 책입니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나오는 삼성 관련 대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꼼꼼하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동차 사업 진출 로비, 이건희-이재용 경영권 승계와 비선실세 최순실 사건의 관계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분석했습니다.

빗나간 자동차 사랑

기성세대로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재벌 구조조정이 왜 실패했는지, 아니 시도조차 제대로 해볼 수 없었는지, 어느 재벌 기업의 예를 들어 소개하겠다.

1990년에는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도록 조치했고, 뒤이어 1991년에는 기업이 여러 업종에 진출하지 말고 잘할 수 있는 업종 3가지에만 주력하도록 방침을 정해 발표했다. 대통령이 직접 그런 정책을 발표했는데, 바로 그즈음 신규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나선 재벌이 있었다. 정부의 정책쯤이야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일까. 게다가 전자 산업이 주력인 재벌이었는데 느닷없이 자동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무작정 자동차 사업을 한다고 하면 정부에서 허가해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상용차만 만들겠다’고 했다. 트럭이나 버스 같은 차량만 생산하겠다고 말이다. 세상에 상용차만 만드는 자동차 사업이 어디 있을까. 일단 상용차만 하겠다고 신청해놓고 허가를 받고 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승용차도 만들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내가 경제수석으로 있는 동안에는 자동차 사업을 허가해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다. 그랬더니 전직 총리, 장관, 대통령 측근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해 엄청나게 로비를 해댔다.

한번은 그 재벌 회장을 만났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통령이랑 형님 동생 하는 사이란 말이야. 어젯밤에도 대통령 안방에서 대통령 부부랑 우리 부부가 함께 식사를 했어.”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회장님께서 대통령을 만나 저녁을 드신 것이 저랑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그래도 허가를 안 해주겠나?”하고 묻더라. 그때 우리나라에 자동차 회사가 벌써 4개(현대, 대우, 기아, 쌍용)나 있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보아도 승용차 생산이 포화 상태에 있는데 그런 사업을 해서 이익을 낼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으니 “”5,000억 원씩 10년 동안 적자를 내도 괜찮다“라고 대답하는 것 아닌가. 깜짝 놀랐다. 그것이 설령 오롯이 자기 돈이라 하여도, 5,000억씩 10년간 적자를 내도 된다는 말을 어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을까? 기업의 자산을 개인의 쌈짓돈 정도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배어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생각이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재벌 기업이, 그렇게 자원을 소각하듯 하늘에 날려버려도 되는 것인가.

게다가 그 회장이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기 자신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 회장은 세계 유명 브랜드 고급 차량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다. 나중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여 아이엠에프 관계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 재벌이 자동차 사업까지 진출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너가 자동차에 개인적인 애정이 있으면 자동차 박물관을 만들어 후원하면 되는 일이지 왜 자동차 공장을 만드느냐”고 비판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 회장은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를 종종 했다. 한번은 “나는 한번 하려고 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다”고 말했다. 자기 자존심을 걸고 자동차 사업을 꼭 시작할 테니까 어디 두고 보라고도 했다. 나중에는 지역 상공회의소까지 동원해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 허가해 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하도 많이 로비를 벌이니까 대통령이 “그냥 그거 해주면 안 될까?”하고 조심히 물어볼 정도였다.

한번은 상공부 장관이 대통령 결재를 받으러 청와대에 왔다가 나랑 우연히 마주쳤다. 무슨 결재인가 하고 봤더니 그 기업의 자동차 사업을 승인하는 내용이었다. 사전 협의도 없이 이런 결재를 올리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더니 그냥 되돌아갔다. 대통령에게 ‘차라리 나를 내보내고 그것을 승인하라’고, 그것만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공부는 그 서류를 취소하지 않고 그냥 보류만 시켜놨다. 내가 경제수석 자리에서 물러나니까 2개월 만에 그 재벌의 자동차 사업은 승인이 떨어졌다. 역시 상용차뿐 아니라 승용차까지 생산하기 시작했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상용차 부문이 먼저 날아갔고, 승용차도 문제가 생겨 결국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 그렇게 5조원가량을 허공에 날렸다. 한 사람의 소원을 위해 5조 원을 소각한 셈이다. 국가 경제의 합리성이란 개념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다.

기어이 자동차 사업을 하겠다며 “나는 한번 하려고 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다”라고 말했던 그 재벌 총수의 회사는 30년 후에 큰일을 저질렀다. 대통령 최측근에 있는 이른바 ‘비선실세’에게 접근해 재벌의 부자 승계 문제를 잘 협조해달라고 청탁했던 일이 드러났다. 그런 사건 등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총수의 아들도 수갑을 차고 감옥엘 갔다. 그때 내가 놀랐던 것은 정권의 비선실세가 과연 누구인지, 누구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그 재벌이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재벌들이 엉뚱한 사람을 비선실세로 잘못 알고 허튼 로비를 시도하고 있을 때에도, 모든 언론이 비선실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시절에도, 오직 그 재벌만은 누가 비선실세이며 그가 무엇을 필요로하는지 취향과 요구까지 정확히 알고 접근했다. 과연 그들은 ‘하려고 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영악함과 집요함을 지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을 무기로 온갖 정보와 인맥을 사들이고 있을 것이다.

국정원 뺨치는 정보력

박근혜 탄핵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고리에 대한 탄핵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중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는 삼성 재벌과의 결탁이다. 삼성이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후계자를 물려주는 과정에 정부와 모종의 결탁이 필요하게 되자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최측근을 찾아내 로비를 시도한 것이다. 당시에 언론은 그 사건을 흔히 ‘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렀지만 나는 ‘삼성 게이트’라고 불러야 본질을 정확히 표현했다고 본다.

많은 국민들이 그 사건을 알고 분노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내가 정작 놀란 것은 삼성이 대통령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대통령의 최측근 ‘최순실’이라는 여인을 삼성이 과연 어떻게 찾아냈을까?”하는 부분이다.

박근혜 탄핵 사건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언론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나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박근혜를 바로 옆에서 도왔지만,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박근혜의 오랜 보좌관이었던 정윤회라는 인물이 상당 기간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가 이른바 ‘십상시’를 거느리고 박근혜 정부를 쥐락펴락한다는 의혹이었다. 모든 언론이 오로지 정윤회에게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윤회가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라고 착각했다. 그런 시기에도 삼성은 진정한 비선실세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원포인트 뇌물’을 최순실에게 갖다 주었다. 최순실의 허영심이 어느 정도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딸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딱 맞춰서 로비를 전개한 것이다. 스포츠재단을 설립하는데 돈을 내고 비싼 승마용 말을 선물하는 등 오랜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노련한 로비 방법을 총동원했다. 삼성의 정보력과 로비 능력이 과연 이 정도다. 우리나라가 괜히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겠나. 어떤 언론도, 다른 어떤 재벌도, 세상 어떤 정보기관과 정치세력도 알지 못하던 것을 삼성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서민정부, 참여정부를 지향했던 노무현 정부도 종국에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생산하는 자료에나 의존하며 정책을 만들었던 것이다.

앞에서 ‘전자 산업만으로 욕심이 차지 않아 자동차 분야까지 진출하려던 기업’을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다. 독자들이 익히 눈치를 챘겠지만, 그 기업이 바로 삼성이다. 어떻게든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보려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거듭하던 삼성은 25년 후에는 어떻게든 2세에게 기업을 공짜로 넘겨주려고 꼼수를 부리다 대통령 탄핵되게 만들고 그들의 2세도 감옥에 가는 곤욕을 치렀다. 지독한 탐욕의 결과다.

그렇다면 그 뒤로 삼성은 달라졌을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절대 달라질 리 없다. 그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자기들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건을 겪으면서 오히려 ‘권력이란 것도 별 것 없네’하고 시시하게 여기게 되었을 것이다. 전임 대통령이 탄핵된 후에 당선된 후임 대통령 문재인마저 경제가 어렵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자 곧장 삼성에 허겁지겁 달려가 “우리 삼성에 감사한다”는 말씀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청와대는 “대통령이 삼성을 ‘격려’해줬다”고 표현했지만 삼성은 결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과 악수하고 포옹한 그 날 밤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웃었을까?

어떻습니까? 김종인 위원장이 책에 쓴 내용을 너무 길게 인용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김종인 위원장의 설명대로 삼성 문제는 ‘박근혜 탄핵’으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김종인 위원장이 검찰의 이재용 부회장 기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참 궁금합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직접 물어볼 생각입니다.

아무튼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경영권 승계에 어떤 불법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재판을 통해 철저히 가려내야 할 것입니다. ‘삼성 게이트’ 진상 규명은 이제 시작입니다.

검찰의 이재용 회장 기소에 대해 언론은 예상했던 대로 반응했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사설로 삼성을 감싸거나 검찰을 비판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검찰의 기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재판으로 불법승계의 진상을 철저히 가져야 한다고 사설을 썼습니다.

삼성에 대한 언론의 태도가 이처럼 확연히 다른 이유는 뭘까요? 혹시 김종인 위원장이 책에 쓴 것처럼 “특정 재벌이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언론에는 광고를 무기로 기사 보도와 사설의 논조를 좌우”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끝으로 9월 1일 검찰의 수사 발표 전문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쉬운 문체로 핵심적인 내용을 잘 정리한 것 같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금일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실장 등 미래전략실의 핵심 관련자들, 구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대표와 임원 등 총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위증 등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공소사실 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➀ 이재용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은,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에 유리한 시점에 삼성물산 흡수합병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였습니다.

➁ 이를 위해 각종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불리한 중요 정보는 은폐하였으며, 주주 매수, 불법 로비, 시세조종 등 다양한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직적으로 자행하였습니다.

➂ 삼성물산 경영진들은 이재용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의 승계계획안에 따라,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 합병을 실행함으로써,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야기하였습니다.

➃ 합병 성사 이후에는,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이었다는 불공정 논란을 회피하고 자본잠식을 모면하기 위하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산을 4조원 이상 부풀리는 분식회계에 이르렀습니다.

➄ 또한, 미래전략실 전략팀장과 삼성물산 대표가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합병 실체에 관하여 허위 증언을 한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 이 사건과 관련하여,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에 수사팀은 위원회의 권고 취지를 존중하여 지난 두 달 동안 수사 내용과 법리 등을 심층 재검토하였습니다.

○ 전문가 의견 청취의 대상과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 다양한 고견을 편견 없이 청취하였고, 수사전문가인 부장검사 회의도 개최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 결과,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한 사안의 중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금일 사건 처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수사팀은 향후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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