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뉴스통신사 교류협력체 ‘아태뉴스통신사기구’(OANA)의 의장사인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와 서면인터뷰를 한 후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아태뉴스통신사기구 합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윤 후보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치 중립을 내세워 현안에 말을 아끼던 문 대통령이 직접 야당 후보를 정면 비판하면서,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선거 구도가 문 대통령과 윤 후보의 ‘전면전’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을 언급하며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이냐.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라며 이렇게 밝혔다고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윤 후보는 전날 공개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수사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거듭 강조하고,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금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느냐”고 했다.
청와대는 전날 윤 후보의 발언에 “매우 부적절하고 불쾌하다”는 입장을 내놨으나, 문 대통령이 직접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는 등 선거에 직접 ‘등판’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여야 모두 이번 사안이 대선에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이례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거론하기도 했다. 지지층의 ‘노무현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윤 후보의 발언이 ‘보복 정치’를 떠올리게 한다며 총력전에 나섰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많은 대선 과정을 봤지만, 후보가 정치보복을 사실상 공언하는 건 본 적이 없다”며 “우리가 통합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데 보복 또는 증오·갈등·분열이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복이 아닌 통합의 길로 가시길 진심으로 건의 드린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개인적인 정치보복 선언이며 역대 대선에서 유례가 없던 초유의 사건”이라며 “염치도 없고 신의도 없고 상식도 없는 망발이자 오만함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권을 막론하고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공정하게 진행했던 우리 후보가 문재인 정부도 잘못한 일이 있다면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청와대가 발끈했다”며 “원칙론에 대해 급발진하면서 야당 후보를 흠집 내려는 행위는 명백한 선거 개입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윤 후보 발언 취지를 곡해해 정치보복 프레임을 씌우려 들더니 이제 대통령과 청와대가 가세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윤 후보는 이날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사전에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며 “우리 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없는 사정을 늘 강조해오셨다. 저 역시도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늘 법과 원칙,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려왔다. 그런 면에서 우리 문 대통령과 저와 똑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만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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