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1일 경남 창원시 마산어시장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로부터 제안을 하나 받았습니다.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 공약의 부작용을 없앨 방법을 개인적으로 귀띔해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런 제안을 받기 몇 시간 전인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선 인수위 간사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은 “주식 양도세 폐지 공약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인수위원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인수위 경제 1분과 간사인 최상목 기재부 전 1차관은 “아직 최종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고요. 인수위원을 겸직하고 있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이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자에게 ‘묘안’을 구해야 할 정도로 인수위 내부에서도 고민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인수위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주식 양도세 폐지 공약을 정책에 그대로 반영하길 주저하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원칙을 허물고 부자 감세라는 논란이 뜨겁기 때문입니다.
코스피·코스닥 등 국내 상장주식을 거래할 땐 두 가지 세금을 냅니다. 주식을 팔 때 손익과 관계없이 누구나 매도 금액의 0.23%를 납부하는 게 증권거래세입니다. 특정 종목 지분율이나 보유액이 일정 기준을 넘는 ‘대주주’는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얻은 양도차익의 일정액을 양도소득세로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양도세가 사라지면 당연히 세금 납부 의무가 사라지는 대주주가 혜택을 보게 되겠죠.
지금까지 국내 주식 관련 세금 정책은 ‘거래세를 축소하고 양도세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해왔습니다. 거래세가 과거 소득 파악 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 양도세를 대신할 목적으로 도입한 한시적 성격의 세금인 만큼, 제도와 시장이 성숙한 지금은 거래세를 양도세로 대체하는 게 조세 원칙에도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내년부터 상장주식 거래로 번 돈이 연 5천만원을 넘는 소액주주(개미)에게도 양도세를 매기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거래세를 유지하고 양도세는 폐지’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공약은 이런 흐름과 정반대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캠프는 같은 ‘유혹’에 빠졌다고 합니다. 개별 투자자 입장에서 몇 푼 안 되는 주식 거래세가 아니라 통 크게 양도세를 없애주겠다고 하면 표를 확 끌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도세가 사라지면 큰 손(대주주)들의 주식 투자가 늘어나 주가가 오르고 결과적으로 개미도 함께 이익을 볼 것”이라는 논리지요.
민주당에서는 부작용을 알기에 논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국민의힘은 앞뒤 가리지 않고 공약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 캠프에서 양도세 폐지도 검토했으나 너무 무리하다고 판단해 거래세 폐지를 공약으로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국민의힘 쪽은 “양도세 폐지 공약이 2030 청년들에게 먹힐 거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마침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 개인 투자자 수가 급증했고, 정작 주가는 지지부진한 탓에 이 공약은 표심을 제대로 파고들었습니다.
이런 포퓰리즘이 득세한 데는 과거 정부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세수 펑크’(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는 것) 사태를 겪으며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의 범위를 기존 종목당 주식 보유액 50억원에서 10억원 이상인 사람까지 대폭 확대하고 세율도 끌어올렸습니다. 시장에 미칠 영향을 꼼꼼히 헤아리기보다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주주를 가리는 기준일인 연말마다 주식 매도 물량이 쏟아져 시장 변동성을 키운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주먹구구식 과세에 불신이 생긴 겁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애초 낮은 세율로 시작해 양도세를 순차적으로 매기지 않고 대주주 범위를 확 넓히는 식으로 과세를 확대한 건 잘못된 방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주식 양도세 전면 과세 시행 시기를 2023년으로 넘기며 정책이 180도 뒤집힐 계기를 마련한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윤 당선자 공약대로 주식 양도세가 사라지면 국내 증시도 ‘박스피’(주가 상승·하락 폭이 일정한 코스피)를 탈출해 큰손과 개미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물론 투자자에겐 양도세든 거래세든 세금이 없을수록 좋겠지요. 하지만 새 정부처럼 양도세를 없애는 대신 거래세를 유지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거래세도 양도세 못지않게 투자금 유입과 증시 활성화를 가로막는 비용으로 여겨지는 데다, 주식 거래로 돈을 잃어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개미들에게 세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영국·이탈리아 등도 거래세를 부과하지만 실효세율(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을 따져보면 한국의 투자자들만큼 많은 거래세를 내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윤 당선자 공약에 겉으론 난색을 표하는 기획재정부도 내심 미소 짓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시황에 따라 세수가 들쭉날쭉해지는 양도세보다 주식을 한 주 사고팔 때마다 세금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간접세인 거래세를 ‘곳간지기’로서는 훨씬 선호하기 때문이죠.
포퓰리즘 공약의 ‘청구서’를 받아든 인수위는 이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만만찮은 누진세를 부담하는 ‘유리지갑’ 근로 소득자들의 박탈감은 어떻게 할 건지요. 양도세를 부담하고 있는 다른 자산 보유자들이 제기할 형평성 논란은 어떻게 돌파할 생각인지요. 조세정의를 훼손하지 않으며 주식 양도세를 폐지할 복안이 과연 있는지요.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