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로 출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코로나 100일 로드맵’과 소상공인 손실보상책을 잇따라 발표한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위원장이 방역 전문가들과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의사·과학자 출신인 안 위원장이 코로나비상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까지 겸직하며 ‘과학 방역’과 ‘과학적 손실 추계’ 등을 강조했지만, 소상공인들은 “공약 후퇴”라고 비판하고 나섰고 방역 전문가들도 과학 방역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젓고 있다.
안 위원장은 2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오해가 있었던 부분을 바로잡고 싶다”며 “전날 말씀드린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은 지난 2년간 전체 손실을 추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전날 소상공인 손실보상책을 발표하면서 코로나19 누적 손실액을 54조원으로 추산하고 피해 정도에 따라 ‘차등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새 정부는 과학적 손실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온전한 손실보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이 추산한 손실액 54조원은 사업자당 600만원씩 50조원을 약속했던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보단 규모가 크지만, 구체적인 피해 지원금 액수, 재원 방안이 불분명해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참여연대 등 9개 중소상인‧자영업자, 시민사회단체는 2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온전한 손실보상’을 요구했다. 성수빈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국장은 “최대 지급액을 600만원으로 한정하고, 금액을 차등하는 것은 기존 지원대상과 신규 지원대상 모두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차등지원으로 전체 지원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안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정부의 방역지원금 일괄지급을 비판하며 “어느 정도 형편이 괜찮으신 분은 돈을 받으면 소고기를 사서 드셨다”고 발언한 것도 소상공인들의 분노를 샀다. 인수위 누리집에 올라온 비판글에는 “소고기 안 먹을 테니 온전한 손실보상 지원 바란다”, “방역지원금으로 소고기 안 먹고 세금 냈다”, “소상공인 주제에 소고기 절대 안 먹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강해지자 결국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멘토’인 김소영 경제1분과 인수위원(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 ‘최대 지원액수가 1천만원 이상이 될 수 있다’며 수습에 나섰다. 김 인수위원은 이날 <한겨레>에 “대선 전에 소상공인에게 민주당 정부가 일괄 지급하기로 한 300만원보다 더 많은 액수를 피해에 따라 차등해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한 대로 취임 즉시 모든 소상공인에게 민주당 정부가 지급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지급할 계획”이라며 “일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는 1000만원을 초과하는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소상공인들과의 약속 그대로 당선인께서는 (올해 정부가 추경을 통해 이미 지원을 하기로 한 16조9천억원을 제외한) 33조1천억원 이상을 취임 즉시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한 긴급 지원에 사용할 것”이라며 “지속해서 지원 방안을 모색하여 단순히 피해 보상 차원을 넘어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완전한 회생과 희망찬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실보상 600만원 일괄 지급이 ‘차등 지급’으로 바뀌고 안 위원장이 구체적인 액수도 제시하지 않아 불만이 컸는데 결국 윤 당선자의 측근이 나서서 소상공인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안 위원장이 지난 27일 발표한 ‘코로나 100일 로드맵’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안 위원장은 이날 “현 정부는 국민 여론을 보고 정무적 판단에 의해 결정을 해오다 보니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했다”며 “과학 방역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외 마스크 해제에 대한 판단을 “5월 하순에 하겠다”면서도 과학적 근거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뒤 코로나19가 재유행되면 새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 방역 책임을 피하려는 정치적 이유로 실외 마스크 해제를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는 “실외 마스크 해제를 5월 하순에 결정한다는 것에는 무슨 과학적인 근거가 있느냐. 자가당착”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이 발표한 ‘대통령 직속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기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 담기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의 과학자문그룹인 ‘인디펜던트 세이지그룹’이나 미국의 ‘백악관 산하 코로나 대응 티에프(TF)’처럼 자료를 직접 생성해 방역정책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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