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9일 오전 10시에 열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자정을 넘겨 이튿날 새벽 3시까지, 17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딸 스펙 의혹’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났다. 한 후보자는 딸의 대필, 표절 의혹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피했으며 “딸의 교육에 개입하지 않아 잘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혜택은 인정하면서도 반칙은 없었다고 주장을 하다가 결국 10일 새벽에야 “송구하다”는 말로 사과를 대신했다.
먼저
<한겨레>가 지난 8일 딸의 글을 케냐 출신 ‘대필 작가(ghostwriter)’가 작성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것과 관련해서 한 후보자는 “솔직히 딸의 교육과정에 관여하지 못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벤슨(Benson)이 대필했는지를 확인했느냐”고 구체적으로 묻자 “학습 과정에서 온라인 튜터(Tutor)로 도움을 받은 적은 있지만 벤슨과 접촉하거나 도움을 받은 적은 전혀 없다고 한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추가 질문으로 “파일(문서 정보)에 누구라고 돼 있나”라고 다시 지적하자 “벤슨이라고 돼 있다”고 답했는데, “컴퓨터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가”라는 말엔 “상황은 잘 모른다. 가족한테 물었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 후보자는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 중 ‘취재 윤리 논란이 생길 것 등을 고려해 사례금을 지급하지 않고 취재를 중단했다’는 부분을 들며 “(벤슨은) 돈까지 요구한 사람”이라고 논점을 흐리기도 했지만, 문서 정보에 벤슨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말미에 “가족에게 (물었을 때) 벤슨이 한 게 맞다고 하면 부적절했다고 말하는데 벤슨이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 없다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며 “보시기에 불편한 점에 대해선 전체 내용은 모르지만 송구하다”고 했다.
<한겨레>가 지난 4일 보도했던 ‘노트북 50대 기부 의혹’에 대해서도
<오마이뉴스> 보도로 딸이 소속된 동아리 이름이 기증팻말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9일 알려졌지만, 한 후보자는 “본질은 회사 명의로 기부했는지, 딸 명의로 기부했는지”라며 말을 돌렸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딸이 속한 봉사단체 이름으로 한 것이란 (기증식) 기념사진이 실려 있다. 후보자 해명처럼 기업 명의로만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느냐”고 지적하자 한 후보자는 “이 자리에 딸이나 봉사단체가 참여하지 않았다. 제 딸 명의로 기부한 것도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또 “용도를 영어 봉사활동에 쓰라는 취지만 적혀 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사진의 기증팻말에 적힌 것은 ‘교육봉사: Piece of Talent 봉사단’이라는 한 후보자 딸이 대표로 있는 단체명뿐이었다. ‘영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 기부 활동을 딸이 주도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김종민 의원이 “(노트북을 기부한 업체에) 딸이 연락했나”라고 묻자 한 후보자는 “딸이 (회사) 사회공헌팀에 있는 분과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라고 했다. 김 의원이 다시 “어머니와 관계없이 딸이 연락해서 기부해달라고 했더니 승인한 것이냐, 전적으로 (딸이) 업체를 설득한 것이냐”라고 되묻자, 한 후보자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그 얘기를 어떤 식으로든 (회사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가 개입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상세히는 모른다.” <한겨레>는 앞선 보도에서 딸이 어머니의 지인이 임원인 회사에서 노트북을 기증받은 것이 ‘엄마 찬스’가 아니냐는 점을 짚은 바 있다. 한 후보자는 해당 기사로 <한겨레> 기자 3명을 고소했는데, 정작 자신은 어떤 과정을 거쳐 노트북 기증이 이뤄졌는지 상세히 모른다고 주장한 것이다.
딸이 노트북 기부를 홍보하는 인터뷰 형식의 광고성 기사를 미국 매체에 게재한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 지역 홍보지 인터넷 가로수” 같은 것이라며, “딸(의 봉사활동)은 영어 가능한 사람들이 취약계층 아이들을 1대1로 강의하는 것인데, 해외 교포들이 많이 가입해서 튜터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또 “단순하게 봉사가 아니라 스펙쌓기라고 폄훼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자 딸은 미국 <뉴욕헤드라인>의 인터뷰 기사에서 ‘교육 격차를 좁히며 한국의 소외된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인재’로 소개됐는데, 이는 약 4만원(건당) 정도를 지불하고 게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한 후보자 딸 인터뷰 기사는 <한겨레>의 ‘한동훈 딸도 부모 찬스로 대학진학용 기부 스펙 의혹’ 보도 이후 모두 삭제된 상태다.
한 후보자는 딸이 출판한 영어 전자책의 표절 논란에 대해선 “원저작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닌 정황이 나왔다. 박주민 의원이 재차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실제로 원저작자가 딸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고, (딸이) 사과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관련 메일을 공개했다. 한 후보자는 “저는 처음 본다. 경위는 모르는데 수학 문제라 저분들도 완전히 창작한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딸은 비영리라는 걸 명시해서 (책을) 올렸기 때문에 저작권 위반이라는 것에 동의 못한다”며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최근 딸의 전자책을 삭제한 것에 대해선 “공저로 된 미성년자 본인들이 ‘신상털기’ 때문에 내린 것이다. (여러 의혹에 대해선) 딸의 교육에 관여를 안 하고 최근 몇 년간 격랑의 세월을 살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이처럼 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내내 “딸 교육이라 잘 몰랐다”, “미성년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로 가혹하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한 후보자의 답변을 종합하면, 딸의 교육이라 잘 모르지만 반칙·위법은 없었고, 혜택 받은 것은 인정하지만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달라는 것이었다.
학계에서는 저널에 출판한 이상 해당 글은 논문이며, 그 책임을 저자가 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한 후보자는 청문회 내내 딸의 논문을 ‘습작’, ‘에세이’, ‘연습용 글’이라고 불렀다. 한 후보자는 딸이 ‘약탈적 학술지’에 글을 올린 것에 대해 “고등학생의 저 정도 습작을 놓고 학계의 구조적 문제인 ‘약탈적 학술지’에 올린 게 잘못이라고 하면 좀 과하다”라고 했고, “딸의 봉사활동은 (대학 입시에) 경력으로 들어갈 수 있겠지만 논문이라고 말하는 에세이는 전혀 안 쓸 것이다. 입시에 쓰이지 않고 입시에 쓸 수 없는 습작 수준의 글 갖고 수사까지 말하는 건 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법이나 위조, 반칙이 아닌 건 분명한데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기회라는 것을 뼈아프게 새기고 있다. (국민) 눈높이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가족 모두 그런 점을 고려해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남국 의원이 “죄송하다, 유감이다, 부족했다고는 말을 못 하느냐”고 했을 땐 “그 뜻으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 후보자는 모두발언부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언급해, 민주당 의원들이 사과를 요구하며 정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최근 소위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어 국민적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 법안은 부패한 정치인과 공직자의 처벌을 어렵게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이 보게 될 피해는 너무나 명확하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의 “검수완박 법안이 내용상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지”라고 묻자 “전문가적 양식으로 확신한다”고 밝히며,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했다.
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선 민주당 의원들의 실수도 눈에 띄었다. 김남국 의원은 딸의 사촌이 숙모 이아무개 의대 교수와 함께 쓴 논문을, 딸이 ‘이모’와 같이 썼다고 지적했다가 뒤늦게 정정했다. 또 최강욱 의원이 노트북을 기증받은 보육원의 기부 내역에 ‘한○○’이라고 적힌 점을 들어 딸 명의로 기부한 것이 아니냐고 따졌는데, 한 후보자는 “(기부를 한 업체인) 한국○○○ 같다. (옆에) 영리법인이라고 돼있다. 딸 이름이 영리법인일 수 없다”라고 답변했다.
이날 한 후보자는 <한겨레>의 노트북 기부 ‘엄마 찬스’ 의혹 보도를 한 것과 관련해 “저는 언론 자유를 대단히 중시한다. 제 지론이자 생각이다. 다만 이건 악의적이고, 이번 보도는 (윤석열) 별장 성접대와 유사한 보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겨레>는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검찰, 윤중천 진술 덮었다’ 제목으로 기사를 썼으나 그 기사에 ‘성접대’라는 표현은 없었다. 한겨레는 언론활동의 기준으로 삼는 취재보도준칙에 비춰, 이 기사가 사실 확인이 불충분하고, 과장된 표현을 담은 보도라 판단돼 독자께 사과한 바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