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내내 “국민 뜻을 받들겠다” “저부터 분골쇄신하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인사 실패와 추락하는 지지율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이나 사과 메시지는 없었고, 쇄신 방안 제시 또한 추후로 미뤘다. 특히 윤 대통령 본인의 “내부 총질하는 당대표” 텔레그램 메시지 파동과 집권여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그로 인한 이준석 전 대표의 자동 해임 등 국민의힘 대혼돈 사태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스스로 어떻게 분석하는지 세 가지 말해달라’는 첫 질문부터 “세 가지를 말하긴 어려울 것 같고, 지지율 자체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지적된 문제에 대해 국민 관점에서 세밀하고 꼼꼼하게 따져보겠다”고 대답했다. 이어 ‘국정운영 부정평가의 이유로 인사 문제가 꼽힌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거듭 이어지자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 다시 되돌아 보면서 철저하게 다시 챙기고 검증하겠다”며 “인사 쇄신은 정치적 국면 전환이라든지 지지율 반등이라고 하는 정치적 목적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현 상황의 원인을 연거푸 묻는데도 “꼼꼼하게 따져보겠다”며 즉답을 피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인적 쇄신에)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대통령실부터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짚어보고 있다”고 했다.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인적 쇄신 요구가 각계에서 분출하고 있지만, ‘천천히 하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윤 대통령의 ‘모르쇠’ 화법의 하이라이트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관련한 문답이다. 윤 대통령은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직접 지적하고 있고, 여당 내 집안싸움이 이어진다면 국정운영에 상당히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질문에 “대통령으로서 민생 안정과 국민의 안정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들께서 어떠한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제가 제대로 챙길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지금까지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어떠한 논평이나 제 입장을 표시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 주기를 바라겠다”고 했다.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향해 연일 “나에 대해 이 XX, 저 XX하는 사람”, “국정운영 성적은 25점” 등 공격을 이어가는 데 대해 무대응 기조를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대표가 바뀌니 (국민의힘이) 달라졌습니다”라고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노출된 바 있다.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당 상황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바빠서 모르겠다’는 식으로 피해간 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의 쇄신 의지가 안 보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이 현 상황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걸 바꿀 각오가 되어 있는지, 오늘 기자회견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한겨레>에 윤 대통령의 이준석 전 대표 관련 발언에 “비겁하다. 국민이 바보냐. 거짓말인지 뻔히 아는 얘기를 그렇게 하냐”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인적 쇄신 방안까지 언급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의원은 “대통령에게 인사 풀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인적 쇄신 관련) 적극적인 답변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이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며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대해 “제가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대통령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불경스럽게도”라고 말했다. “민생 안정에 매진하느라 정치인들 발언을 챙기지 못했다”는 윤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맞받아친 것이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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