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윤석열 정부를 향한 ‘국민항쟁’을 선언하고 무기한 단식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 앉아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가자, 야당 안팎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전쟁’ 등 겹겹이 놓인 전선을 두고 친 ‘배수진’이지만, 이 대표 본인의 ‘사법 리스크’가 고조되는 시점에 던진 카드여서 ‘명분도 실리도 약하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이날 당대표 취임 1년을 맞아 연 기자간담회에서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고 밝힌 뒤 곧바로 국회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2016년 성남시장 시절에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흘간 단식 농성을 벌인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7일 당 고위전략회의에서 단식투쟁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30일 지도부 회의에서 결심을 전했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부분 만류했지만 이 대표의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 등을 보면서 심각한 우경화와 민생 피해를 막아야 한단 이 대표의 생각이 확고했다”고 말했다.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엄중한 시국에 야당이 무기력하다’는 질책을 넘어서야 한다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31일 윤석열 정부를 향한 ‘국민항쟁’을 선언하고 무기한 단식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 앉아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하지만 당내에서는 검찰 수사에 따른 체포동의안 처리 전망을 비롯한 자신의 거취에 대해 함구한 채 전개하는 이 대표의 단식투쟁의 정치적 효과를 두고 회의론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당내 일각의 사퇴 주장에 “절대왕정에서도 당연히 왕이 물러났으면 하는 게 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침소봉대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민주당 지지자들, 또 당원들이 압도적으로 현 당 지도체제를 지지하지 않느냐.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거취 등) 걸어야 할 걸 안 걸고 애먼 단식으로 맞서면 얼마나 효과를 거두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이 ‘승부수’가 되려면 임박한 ‘체포동의안 정국’에 책임 있는 입장부터 밝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이 대표는 검찰이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이 대표가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 가결을 촉구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이게 구속할 사유에 해당된다고 보시나. 합리적으로 판단해보시라”고 일축했다.
제1야당 대표의 단식투쟁이라는 큰 비용에 견줘 얻을 실익은 적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구체적인 단식의 목표와 ‘출구전략’이 없는데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시점과 맞물려 ‘방탄 단식’이라는 공격을 피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당이 치르는 비용에 견줘 여론은 비정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식에 들어간 이 대표의 요구는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등 세 가지인데, 전선이 두루뭉술하고 실현 가능성이 낮아 출구전략을 세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당내에서도 열흘이면 전선이 흐트러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처리 등 ‘사법 일정’을 고려해 단식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눈길도 있다. 이 대표는 “단식을 한다고 해서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 수사 역시 전혀 지장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