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16일(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방문해 전투기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크네비치 군 비행장과 태평양함대 기지 등을 방문해 북러 군사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극동지역 군사 시설 시찰에 나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7일 전용열차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 역대 가장 긴 국외 체류였던 5박6일간의 방러를 마친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4년5개월만의 두번째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무기 거래와 러시아 첨단기술 지원을 논의하며 ‘전략적 협력관계’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이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일정을 마친 김 위원장의 전용 장갑열차가 연해주 아르툠1 기차역에서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고 보도했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과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 등이 환송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을 밟고 군 경례로 작별 인사를 했다.
지난 12일 러시아에 진입해 13일 러시아의 우주산업 핵심기지인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16일까지 이어진 김 위원장의 방러는 군사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정상회담에서는 특히 인공위성 개발 등 북한이 필요로 하는 러시아의 첨단기술 지원과, 그 대가로 북한의 포탄·탄약 등 무기 거래를 약속하는 합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식량과 에너지, 건설, 노동자 송출 등 경제 협력 안건도 폭넓게 논의됐다.
회담 뒤 김 위원장은 극동 지역을 돌며 러시아의 전략무기 체계를 시찰하는 등 양국 군사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하바롭스크주에서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Su)-57 등을 생산하는 ‘유리 가가린’ 공장을 방문하고, 16일 블라디보스크에서는 크네비치 군 비행장을 방문해 극초음속 미사일인 킨잘(kh-47) 미사일 시스템을 살폈다. 킨잘은 2018년 3월 푸틴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할 때 소개한 전략무기로, 북한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관찰했고, 태평양함대 기지도 방문해 공·해군 관련 북한의 관심 사안을 살폈다.
김 위원장의 방러는 한·미·일의 결속 강화에 대항해 북-러 밀착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 위원장과,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서로를 더 가까이 우군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김 위원장은 방러를 통해 세계 정세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끌어올리며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기조 또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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