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방문진 사무실로 향하기 전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권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상대로 낸 해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1일 권 이사장에 대한 방통위의 해임처분은 1심 본안 사건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연합뉴스
국민권익위원회가 21일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권태선 이사장과 김석환 이사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위반한 소지와 배임의 소지를 확인하고,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야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고 비판했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지난 9월21일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및 (김석환) 이사가 청탁금지법을 위반하고 예산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며 “그간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안들이 확인됐을 뿐만 아니라, 방문진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고 볼 소지가 있는 사안 역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9월 문화방송 내 보수 성향 노조인 엠비시 노동조합(제3노조)이 “권태선 이사장과 김석환 이사가 업무추진비로 각각 492만원, 115만원을 사용하는 등 김영란법을 위반한 정황이 있다”며 두 사람을 권익위에 신고한 것을 가리킨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및 이사의 청탁금지법 등 위반 의혹 신고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승윤 부위원장은 “수사가 필요한 사항은 수사기관인 경찰청에, 조사 및 행정처분이 필요한 사항은 감독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이첩하기로 의결했다”며 “관련 자료 일체를 경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에 보냈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및 배임 소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권 이사장과 김 이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두 사람은 반박 자료를 내어 “법인카드를 정당하게 사용했고,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며 “권익위의 조사 결과 발표는 성립하지 않는 해임 사유로 방문진 이사들을 해임하고, 그것이 (법원에 의해) 저지되자 추가 해임 사유를 억지로 발굴해 진행 중인 소송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권 이사장을 해임하고 방문진 이사진을 교체하려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자 권익위가 김영란법을 들어 압박에 나섰다는 것이다. 권 이사장과 김 이사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 8월21일 문화방송 및 관계사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 소홀과 문화방송 부당노동행위 방치, 사장 선임 과정에 대한 부실 검증 등 사유를 들어 권 이사장을 해임했다. 방통위는 당시 권 이사장 등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섰으나, 해임 사유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권익위는 당시 방통위 조사와 이번 조사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월11일 권 이사장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지난달 31일에는 방통위가 “권 이사장 해임처분 집행정지는 잘못됐다”며 낸 항고 신청을 서울고등법원이 기각했다. 당시 서울고법은 “(방통위의) 해임 사유가 대부분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고, 그 자체로 타당성이 의심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모두 9명인 방문진 이사회는 여권 성향 3명과 야권 성향 6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현 정부는 권 이사장과 김 이사를 새 인물로 교체해 여야 구도를 5 대 4로 재편하려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더불어민주당 언론자유대책특별위원회는 “법원에 의해 방통위의 부당한 해임 결정 효력이 정지됐음에도 (권 이사장이) 잘려나갈 때까지 칼질을 멈추지 않겠다는 정권의 폭압 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