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참회 기다리는 주요 의혹 사건
12·12 5·18 ‘칼858기’폭파 공안사건들…
‘가해자’들 침묵 일관…진실 품고 세상 뜨기도
역사학자들 “한국사회 ‘고백 문화’ 부족 탓”
‘가해자’들 침묵 일관…진실 품고 세상 뜨기도
역사학자들 “한국사회 ‘고백 문화’ 부족 탓”
별세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의 정권 장악 과정 등을 생전에 밝히지 않은 데 대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현존 인물 가운데도 역사적 진실을 감춘 채 살아가는 전직 고위층 인사가 한둘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은 우리 사회에 아직 ‘고백의 문화’가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의 조작 의혹 사건과 인권 유린에 대해 당시 권력층 인사들은 하나같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재임 중 일어난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최종길 서울대 교수 의문사 등의 진실을 아직 밝히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아래서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지낸 장세동씨는 국회 5공비리 청문회에서 “내가 입을 열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며 외려 ‘협박’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내가 입 열면 나라가 위태? 기억나지 않는다?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고백이나 참회를 한 일이 없다. 물론 회고록도 나오지 않았다.
전직 국가원수가 회고록을 낸 일도 있지만 내용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한국사)는 “장면 전 총리나 윤보선 전 대통령 등은 회고록을 남겼지만 대부분 구체적이지 않거나 자신에 대한 해명 위주”라며 “회고록은 많아도 지금 세대와 정보를 공유하기보다는 후세의 평가를 의식해 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위직이 아닌 사건 당사자들도 자신의 치부에 입을 다물기는 마찬가지다. 1987년 115명의 한국인을 태운 대한항공 858기를 공중에서 폭파시켰다고 자백한 김현희씨는 정부의 특별사면을 받고 잠적한 상태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속시원히 밝히라고 김씨에게 요구하지만,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조차 김씨 면담에 실패했다.
광복 뒤 일어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 중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이명춘 3국장은 “지금까지 가해자로 추정되는 100여명 가량을 조사했으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고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족대표 33인이었다가 변절한 최린이나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 등은 광복 뒤 자신의 친일 행적을 고백했다. 최근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한겨레21〉을 통해 증언한 퇴역 장교 김기태씨가 있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는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반성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아직 집단의 이해가 걸려 있다 보니 지난 일이라도 쉽게 고백하지 못한다”며 “이런 현상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처벌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역사적 진실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속속 세상을 뜨고 있다. 1996년 사망한 안두희씨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과 관련한 의혹을 끝내 무덤까지 지고 갔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967년 동백림 사건과 이듬해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의 진실과 함께 영구 실종됐다. 전종휘 유신재 기자 symbio@hani.co.kr
최규하 전대통령 회고록 남겼을까 비서실장 “일기 쓰셨을 것” 12·12당시 상황 기록 가능성 최규하 전 대통령 별세 뒤 그가 과연 회고록을 남겼는지가 연일 관심을 끌고 있다. 마지막까지 고인의 곁에 있었던 최흥순 비서실장은 24일 “최근 여섯달 가량은 노환으로 전혀 글을 못 썼다”면서도 “그전까지는 일기 같은 것을 쓰셨을 것”이라고 말해, 회고록이나 비망록이 있을 가능성을 여전히 내비쳤다. 12·12와 5·18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출신의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수사 당시 최 전 대통령의 진술서를 대신 제출받기 위해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을 여러 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최 실장한테서 ‘그분이 기록을 하셔서 역사에 밝히지 않겠습니까’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1980년을 전후해 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광수 전 비서실장은 아직 언론에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종합해 보면, 최 전 대통령이 회고록 형식의 글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메모로라도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6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뒤 유족들이 고인의 서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련 기록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는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반성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아직 집단의 이해가 걸려 있다 보니 지난 일이라도 쉽게 고백하지 못한다”며 “이런 현상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처벌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역사적 진실을 가슴에 품은 이들이 속속 세상을 뜨고 있다. 1996년 사망한 안두희씨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과 관련한 의혹을 끝내 무덤까지 지고 갔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967년 동백림 사건과 이듬해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의 진실과 함께 영구 실종됐다. 전종휘 유신재 기자 symbio@hani.co.kr
최규하 전대통령 회고록 남겼을까 비서실장 “일기 쓰셨을 것” 12·12당시 상황 기록 가능성 최규하 전 대통령 별세 뒤 그가 과연 회고록을 남겼는지가 연일 관심을 끌고 있다. 마지막까지 고인의 곁에 있었던 최흥순 비서실장은 24일 “최근 여섯달 가량은 노환으로 전혀 글을 못 썼다”면서도 “그전까지는 일기 같은 것을 쓰셨을 것”이라고 말해, 회고록이나 비망록이 있을 가능성을 여전히 내비쳤다. 12·12와 5·18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출신의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수사 당시 최 전 대통령의 진술서를 대신 제출받기 위해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을 여러 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최 실장한테서 ‘그분이 기록을 하셔서 역사에 밝히지 않겠습니까’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1980년을 전후해 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광수 전 비서실장은 아직 언론에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종합해 보면, 최 전 대통령이 회고록 형식의 글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메모로라도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6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된 뒤 유족들이 고인의 서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관련 기록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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