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김명인 교수
6월항쟁 20돌 ‘시대정신’을 찾는다
박명림-김명인 교수 대담
2007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국민의 마음은 밝지만은 않다. 1987년 6월항쟁 이래 더디지만 꾸준히 진척돼온 한국 민주주의는 중대한 기로에 봉착했다. 노무현 정부와 민주주의 세력의 지리멸렬과 좌충우돌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믿음에 상처를 입혔다. 희망보다는 불안이 큰 시기다. 그러나 전망이 어둡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더구나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어떤 사람을 다음 5년 대한민국호 선장으로 뽑느냐, 어떤 세력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기느냐에 온 국민의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다. 눈앞의 안개를 걷어내고 길을 여는 시대정신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견 학자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모처럼 맞주앉아 오늘 한국사회에 절실한 시대정신을 찾는 일에 지혜를 모았다. 대담은 지난 25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렸고, 사회는 한승동 문화부문 책·지성 팀장이 맡았다.
사회= 2007년은 특별한 해다.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지만, 6월항쟁 20돌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20년이면 한국 민주주의가 풍성한 수확을 얻을 만한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를 냉정히 진단해볼 필요가 있겠다.
박명림=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부터 짚어보고 싶다. 2007년은 6월항쟁 20돌이기도 하지만, 김대중 정부 이래 민주정부가 지속된 지 1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10년 동안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 문제가 불거졌다. 둘째, 민주주의 실천의 내용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이느냐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셋째, 한·미 에프티에이(FTA)와 북핵문제를 포함한 국제적인 현안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가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민주주의 10년, 6월항쟁 20년을 맞은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노무현 정권 사회통합 의제 손놔
김명인= 대통령 선거를 생각해보면, ‘노무현 이후’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끌 것이냐는 게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딱히 답할 만한 것이 없다.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떠안고 가야 할 과제로서의 ‘공안’(公案)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김영삼 정권 이래 공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세계화’밖에 없었다. 하다 못해 박정희 정권 때는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라도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 오늘 이 자리가 그런 공안을 찾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노무현 정부의 지난 4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결국 실패한 것인가.
김=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불안과 희망 없음이 우리 사회의 주조가 됐다. 노무현 정권 이후 불안이 더 확산됐다. 박탈감, 절망감이 더 번졌다. 민주 정권이 2기에 들어섰는데, 민주주의가 정착하기는커녕 오히려 삶의 활력을 빼앗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감이 위태로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악마적 시장경쟁이 사람들을 완벽하게 포박해 실존적 궁지로 몰아넣었다. 국가는 그런 상황을 방치했다. 사회를 통합할 어떤 의제도 제시하지 못한 채 손놓고 있다. 노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그만큼 큰 것 같다. 박명림 “신자유주의적 경쟁 휘둘려 삶의 집합적 안정성 흔들
반독재투쟁 열정으로 민주사회 대안에 지혜 모아야”
박=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정부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성공적이지 못한 건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한국적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다. 국가경영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준비도 연구도 부족했다. 과거 반독재 투쟁의 열정에 비해 민주주의적 대안을 찾는 지혜는 현저히 부족했다. 그 결과 개인이 시장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삶의 집합적 안정성이 흔들렸다. 민주주의가 실현될수록 삶이 예측 가능한 것이 돼야 하는데 오리혀 그 예측 가능성이 크게 파괴됐다. 이 점에 관해서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로 책임을 다 돌려서는 안 되고, 한국사회 진보세력 전체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엄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사회= 과거와 비교해 삶의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 줄었다고 했는데, 외환위기 사태와 무한경쟁으로 내몬 신자유주의 물결이라는 불가피한 흐름에 떠밀린 탓도 있지 않을까.
김= 신자유주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면을 강조하고 싶다. 6월항쟁 이후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지만, 소극적 차원에 머물렀고 적극적인 내용을 창출하지 못했다. 우리가 상상한 민주화는 구성원의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사회 공동체가 자기 운명의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이었는데, 신자유주의가 들이치면서 과거보다 더 강력한 구속상태로 떨어졌고 공동체적 자기 결정권은 더 약해지고 형해화했다. 개인의 자유, 의지, 희망을 보호해주는 장치가 사라져버리고 외적 강제에 내맡겨진 상황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타율성을 강화하는 역설이 빚어졌다.
사회=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시민의 실패, 국민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국민 몫으로 돌릴 잘못은 없는가.
박=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두 가치의 결합이다. 자유주의는 경쟁을 보장하는 것인 반면에, 공화주의는 박애와 연대와 평등으로 자유의 빈 곳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급경한 좌우 이념논쟁에 휘말리면서 자유주의 원칙만 남고 공화주의 원칙은 실종되고 말았다. 경쟁의 원칙에 연대의 원칙이 짝으로 서야 하는데, 연대의 원칙이 무너진 것이다. 여기에 위기의 원인이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임과 동시에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실천은 훨씬 정교한 디자인과 비전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 제도만 성립시키면 된다고 자만하다보니,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다. 실패는 실천의 영역에서 벌어졌다. 그런데 국민은 그걸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김= 노무현 정권 실패는 이른바 진보개혁 세력 자체의 실패라고 보아야 한다. 진보개혁 세력이 정권에 무책임하게 자유를 의탁했고 수수방관했던 측면이 있다. 민주 정부는 민주주의의 조건을 확보한 것일 뿐인데, 그 내용을 채우는 일에 진보개혁 세력이 방관했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신자유주의 개혁이 훨씬 더 급격하게 진행됐는데, 거기에 편승하는 게 마치 민주화의 성과를 다지는 일인양 생각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견제장치라도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는 그런 장치마저 포기했다.
유럽, 우파가 집권해도 ‘사회국가’ 유지
사회=‘국가의 역할’이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인 듯하다.
박= 신자유주의에 따른 문제는 정부의 실패이자 시장의 실패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건 정부밖에 없는데, 정부가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 유럽의 상황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유럽에서는 우파가 집권하더라도 헌법에 명문화된 ‘사회국가’ 원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시장의 실패나 정부의 실패를 보완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국가’ 모델을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권위주의 국가 모델 아니면 시장국가 모델 두 가지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사회=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좀더 논의해보자.
박= 민주주의는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싸지 않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386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386세대가 너무 사회과학적 상상력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회과학은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일종의 오만이다. 사회과학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을 목적으로 보는 인문적이고 사회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경쟁과 연대가 공존하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명인 “87년 이후 ‘민주’에서 ‘민중’ 떼내고선 버렸단 사실조차 망각
실종된 민중적 상상력 다시 작동…새로운 변혁 역량 찾아야”
김= 나는 70년대에 학생운동을 한 사람인데, 그 시절엔 사회과학적 상상력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마틴 부버의 <나와 너>,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등을 먼저 읽었다. 내면적인 가치를 중시했다고 할 수 있는데, 386세대는 사회공학적 측면이 훨씬 더 강한 것 같다.
386세대 정치적 실패 겪은적 없어 성찰 부족
박= 70년대와 80년대 학생운동의 독서행태를 조사해본 적 있는데, 정말 달랐다. 70년대 세대는 인문적 상상력을 소중히 여겼고, 소설을 많이 읽었다. 80년대엔 강령이나 지침으로서의 독서가 주종을 이뤘다. 게다가 이 세대는 정치적 실패를 겪어본 적이 없다. 6월항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민주정부를 성립시켰고, 또 386이 정권을 장악하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정권 집행세력이 전혀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성찰의 시간이 없었다. 이들이 주도한 한국 민주주의는 탈지성화, 탈인문화와 같이 갔다. 인문적 지성 없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를 만들어낼 수 없다.
김= 지식 담론이 김대중 정부 때 좀 나왔다가 ‘신지식인’으로 변질돼버렸다. ‘인문학적 지식’을 사회적 의제에서 빼버렸다. 특히 대학이 그 대열에 앞장섰다. 그러다 보니 낭만적 상상력,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고갈돼 버렸다. 속도·경쟁·양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고방식에 일대 전환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이런 인문학적 상상력이 복원돼야 한다.
사회= 이야기를 정치 쪽으로 돌려보자.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민주노동당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박= 87년 이후 ‘시민담론’과 ‘민중담론’이 분리됐는데, 그래서는 보수세력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분열돼서는 개혁을 집행할 힘이 생기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노동자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연대해 ‘노동-자유연합’을 만들고 그 힘으로 현재의 사회국가를 이루었다. 우리는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두 진영이 분화돼버렸다. 민주주의는 타협·대화·소통을 요구한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는 제도다. 노무현 정부는 그런 문제에 대처하지 못했다. 민주세력의 분열이 희망의 소멸에 큰 책임이 있다.
김= 그러다 보니 보수기득권층한테 헤게모니를 빼앗겨버렸다. 관료조직에 대한 어떤 통제도 하지 못했다. 보수적 지배구조가 민주적 절차라는 방식으로 옷만 갈아입은 꼴이 되고 말았다. 집권한 민주세력은 그걸 성공이라고 오인했다. 민중적 가치를 민주적 가치와 분리한 뒤 민중적 가치를 다 내버렸고, 그걸 내버렸다는 사실조차 망각했다.
사회=그렇다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뤄야 하나.
김= 민주주의 사회는 구성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그런 확신이 넓게 공유돼야 한다. 기층민중과 소수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러려면 이제껏 실종된 민중적 상상력이 다시 작동해야 하며, 새로운 변혁 역량을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양산은 연대와 배려 없는 집단광기
박=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경쟁사회에서 연대사회로’ 가는 것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영혼이 부박해졌고 삶이 강퍅해졌고 핏발선 사회가 됐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니고 과정이며 수단이다. ‘좋은 삶’이라는 집합적 가치를 이루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김= 최근 우리은행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이건 자본에게 여력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의 얘기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일 뿐이지, 자본주의적 합리화와는 별 관련이 없다. 연대와 배려를 부인하게 만드는 집단적 광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정신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자.
박= ‘경쟁에서 연대로’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사회적 영혼을 돌보고 사회의 인간화를 이끄는 것은 연대밖에 없다. 또하나 이야기한다면, ‘격물치지’의 가치를 들 수 있겠다. 우리 사회의 역할에 합당한 품격이 사라져버렸다. 대통령의 대통령다움이 없고, 언론의 언론다움이 없고, 지식인의 지식인다움이 없다. 말하자면 품격이 없다. ‘다움’이 없다보니 배려도 관용도 따뜻함도 없다. 이 가운데 지식인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좋은 시민을 길러내는 데 지식인의 역할이 크다.
김=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으로 ‘성찰적 행동주의’를 제시할 수 있겠다. 한 사회 전체가 성숙하려면 성찰과 배려가 행동 속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가치를 사회 속에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사회 한승동 선임기자
정리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jinsoo@hani.co.kr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문학)·계간 <황해문화> 편집주간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김=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불안과 희망 없음이 우리 사회의 주조가 됐다. 노무현 정권 이후 불안이 더 확산됐다. 박탈감, 절망감이 더 번졌다. 민주 정권이 2기에 들어섰는데, 민주주의가 정착하기는커녕 오히려 삶의 활력을 빼앗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감이 위태로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악마적 시장경쟁이 사람들을 완벽하게 포박해 실존적 궁지로 몰아넣었다. 국가는 그런 상황을 방치했다. 사회를 통합할 어떤 의제도 제시하지 못한 채 손놓고 있다. 노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그만큼 큰 것 같다. 박명림 “신자유주의적 경쟁 휘둘려 삶의 집합적 안정성 흔들
반독재투쟁 열정으로 민주사회 대안에 지혜 모아야”
박명림 교수
실종된 민중적 상상력 다시 작동…새로운 변혁 역량 찾아야”
김명인 교수
정리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jinsoo@hani.co.kr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문학)·계간 <황해문화> 편집주간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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