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가 19~20일 충청권을 찾았다. 지난주에 이은 연속 1박2일 충청 민심 탐방이며, 취임 뒤 네번째다. 방송대담, 주민·시민사회단체장 간담회 등 판박이 일정에다 싸늘한 주민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단골처럼 등장하던 달걀 세례는 없었지만 지역 시민단체 등의 비판 세례가 이어졌다.
행정도시 혁신도시 무산저지 충북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시민 등 100여명은 19일 오전 10시 정 총리가 대담 녹화를 하기로 한 <청주방송>앞에서 총리 사퇴 촉구 집회를 열어 세종시 수정 중단을 요구했다. 방송에 출연한 정 총리는 “행정부처 이전에 따른 비효율 때문에 차라리 수도를 다 옮기면 옮겼지 일부를 옮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기업 등을 옮겨 자족 기능을 보강하면 세종시가 대한민국 발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담 뒤 이어진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장 간담회에서 정 총리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강태재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대표는 “세종시는 어떤 수정안도 원안을 당할 수 없는 데 정부가 행정부처만 오면 유령도시 된다는 거짓말로 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며 “대통령을 설득하다 안되면 총리직을 버려라. 아니면 총리 퇴진운동을 하고, 안물러나면 정권 퇴진운동도 벌이겠다”고 쏘아붙였다. 박연석 행정도시 혁신도시 무산저지 충북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충북도민들은 국가 권력에서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을 심하게 갖고 있다”며 “이번 만큼은 목숨 내놓고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충남 연기군을 다시 찾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날씨보다 차가웠다. 임장철 연기군의회 의원은 “600년간 대를 이어 살던 곳을 내주고서 법대로, 원안대로 해달라는 것인데 정부가 어떻게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고 쏘아 붙였다. 간담회를 하기로 한 마을 이장들은 불참했다. 정 총리는 연기군 대평리의 재래시장을 찾아 한 주민의 큰절을 받았지만, 이 주민은 “제발 원안대로 세종시를 건설해 달라”고 부탁해 당황하기도 했다.
20일 오전에는 대전 유성호텔에서 대전지역 경제인 및 사회단체장 등과 비공개 조찬간담회를 열었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충청도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나서 나라를 구했는 데 여러분들이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세종시 원안 추진을 요구하는 충청권을 겨냥해 “우리나라에서는 떼법과 배째라법이 제일 먼저”라고 비난한 권태신 실장에 대해 심대평 의원은 1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몰상식한 발언을 한 권 실장을 해임하고 총리는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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