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둘째)가 31일 오후 국회 사무실에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와 관련해 비공개 협상을 벌이던 중 손학규 대표와 상의하려고 방을 나서고 있다.(왼쪽 사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남경필 한나라당 최고위원(왼쪽)과 황우여 원내대표가 31일 오후 국회 대표실에서 지도부 및 외통위원들과 간담회를 한 뒤 방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FTA 처리와 분리 요구
민주 마지노선 제시해
민주 마지노선 제시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수용 여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의 유일한 쟁점으로 남게 됐다. 여야는 31일 원내대표 회담과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합의를 시도했지만 불발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협정 비준안에서 제외하는 데에 모든 당력을 집중해 한-미 자유무역협정 통과를 저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른바 ‘원 포인트 재재협상안’ 요구다. 이 제도 무력화에 집중하는 게 국민에게 ‘명분 있는 반대’로 비칠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 야당,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빼라”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된 의원총회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이번 협정비준안에서 제외한다면,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뺄 것을 요구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미국 투자자가 한국 법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판단되면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당 의원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끝까지 문제 삼는 이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전반은 거부할 수 없지만, 이렇게 후유증이 우려되는 부분은 끝까지 반대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먼 미래에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지금 현재 분명한 것은 협정 비준안 동의 결과는 역사에 남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사실상의 재재협상 요구라고 보며 난색을 나타낸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민주당이 정부가 지금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폐지를 위한 양국 간 협의를 시작한다면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겠다는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다”며 “여당은 승복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정부가 통상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정부와 의회, 즉 조야가 함께 협상을 진행한다. 따라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제외하려면 미국과 사실상의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
여야의 대치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의 기싸움 성격도 섞여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청와대와 여당이 협정 비준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이유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강경책으로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강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당이 강행하면 몸으로 막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뜻이다.
■ 농수산, 중소기업 보호 충분하지 않아 여야의 황우여,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문제와는 별도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른 농축산업 및 중소기업, 중소상인들에 대한 피해대책에 합의했다. 농축산업 부문에는 △밭농업직불제와 수산직불제 신설 △농어업면세유 10년 지속 유지 △축산발전기금 2조5000억원 조성 △친환경직불금 50% 인상 등 민주당과 농어민들이 요구해 온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 특별법’도 개정해 피해보전직불금(피해보상금)을 법인은 5000만원, 개인은 3500만원까지 늘렸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대부분이 자유무역협정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통상적인 농어민 대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이날 성명을 내어, “축산발전기금 조성을 제외한 나머지 대책들은 예산을 어떻게 순증하겠다는 계획이 없다”며 “결국 기존 농어업 예산을 축소해 새 예산을 충당하겠다는 뜻일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상인 대책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원 특별법을 제정해 대기업이 적합업종에는 진출하지 못하게 하고 △대형 유통시설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한-미 에프티에이 범국민대책본부(범국본)는 여야 합의로 마련한 대책 자체가 무역협정 위반이 되는 상황이라고 따졌다. 범국본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이 발의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가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고 정부가 답변한 바 있다”며 “대형 유통 시설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는 것도 협정 12장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태희 황예랑 기자, 김현대 선임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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