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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댓글로 삽질한 ‘진짜 사나이’들은 누구냐고요?

등록 2013-10-18 19:39수정 2013-10-21 10:22

하어영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하어영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정치부 하어영입니다. 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의혹, 쓰고 있어요. <한겨레>의 첫 의혹 보도 뒤 “어라, 그 트위터 계정에 가보니 일상적인 글이 대부분인데요?”라는 항의성 질문이 넘쳐납니다. 그래서인가요.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는 삭제되지 않은 계정의 글을 보며 “댓글 몇 개 달았다고 그게 무슨 대수야”라고 말하는 분도 계시나 봐요.

맞습니다. 발칙한 <한겨레>가 ‘대선개입’이라며 단독보도한 직후 그분들의 블로그, 트위터에는 성지순례 올 누리꾼들을 배려한 듯 팍팍한 정치 얘기들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의미에서의 치열한 현실인식은 어디로 가고 그저 사람 냄새만 남았죠. 이 글을 보시는 지금도 클릭 몇 번으로 쉽게 들여다볼 수 있어요. 클릭, 클릭. 피식, ‘차라리 여자이고 싶다’는 뜻 모를 글에 웃음이 나오고, ‘피곤한 일상이 시작되었다’는 댓글에는 출근길의 고단함을 함께 느낍니다. 밤 11시52분의 ‘피곤피곤’이나 새벽 2시47분의 ‘피곤함이 몰려온다’는 글에서는 야간노동의 애잔함마저 묻어납니다.

기자가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은 자정을 넘긴 12시12분, 여자이고 싶다는 4차원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그래”라는 말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옵니다. 그분들은 원치 않으실지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공감해봅니다. 느낌 아니까. 게다가. 야박하게 죄다 삭제한 것도 아닙니다. 눈이 침침할 정도의 거북이목 노동에 선물이라도 주겠다는 듯 검색사이트에 뜬 민주당 폄훼의 글, 초등학교 때 보물찾기 쪽지의 추억 돋습니다. 팔만대장경을 합천 해인사에 모시듯 두 손 모아 캡처해 로컬 디스크에 모십니다.

총 대신 자판으로, 총알 대신 댓글로 사이버 전장을 사수하는 국가공인 키보드 워리어, 사이버 전사들. 그들은 왜 자신의 계정에 일상적인 글로 도배했을까요. 이 질문에는 ‘만나면 좋은 친구’의 간판 예능 ‘진짜 사나이’로 답을 대신합니다. 콧물도 얼려버리는 혹한의 철책선 앞 오뚝 선 콧날의 병사만 보던 시청자들 앞에, 하루 종일 삽질만 하고, 전투화를 닦고, 배식받은 빵과 밥을 어떻게 하면 맛깔스럽게 먹을지 고민하는 그런 병사들이 등장했죠. 그걸 보면서 다들 한마디씩 하셨을 법한데요. 저게 군대지, 저게 군대구나. 그러다 훈련이라도 갈라치면 대책 없이 진지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몰입하는 그들의 모습, 진정성으로 화면은 터져나올 듯하죠.

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주어진 업무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분들이니까요. 일상적인 글 뒤로 지워진 글이 수없이 많지만 되짚어 수를 헤아리면 올린 글의 개수가 일정하고 내용도 야당후보 비방, 여당후보 옹호, 정부정책 홍보(제주해군기지 등), 종북, 그리고 김정은, 일본 등으로 쉽게 서랍을 나눌 수 있죠. 하지만 살짝 비틀어 이들을 바라보면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출근하자마자 점심은 뭐 먹을지 고민하고, 류현진이 승수를 하나라도 더 쌓기를 응원하고, 직장상사의 한마디에 웃고 우는 소시민으로서의 글과 국방부에서 ‘작전상 비밀’이라고 했던 글로 갈리게 됩니다. ‘군데리아’와 실탄 장전 가능한 소총이 공존하는 진짜 사나이처럼요.

요원이라는 거창함 뒤에 내일모레면 은퇴를 앞두고 계신 분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유명해진 국정원 김아무개씨보다 어린 20대도 있습니다.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했던 분들, 그 임무의 성격만 덜어낸다면, 말이 좋아 기자지 야간노동을 해야 하는 저나, 말이 좋아 요원이지 자판을 두드리며 피곤피곤을 외쳐야 하는 그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성과(또는 기사) 보고를 위해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잦은 야근에 화난 아내와 아침밥을 바라는 용감한 남편을 달래고 꾸짖을 방법을 궁리하는 심약한 소시민입니다.

그래서 “개인 소행”이라는 국방부의 말에는 화가 치밉니다. 그 책임이 십수년 동안 해오던 일처럼 기계적으로 글을 퍼날랐던 분들의 것인지,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이른바 ‘작전’을 세웠던 분들의 것인지, 최소한의 진실을 앞에 두고 답을 찾기 그리 어려운가요.

여기까지 오다 보니, 마감은 코앞이고 친절한 기자가 아니라 넋두리하는 기자가 돼 버렸습니다. (이병헌의 목소리로) 단언컨대, 제 글의 미욱함에도 배후가 있습니다. 원래부터 친절하지 않은데다 쓸거리도 마땅치 않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더 내밀하게, 개그 버전으로 써”라는 지시를 내린 토요판 에디터가 바로 윗선입니다.(문자 캡처했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건 사건의 내밀함은 간데없고, 제 마음의 내밀함으로 채워져 버린 기사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원들처럼 삭제할 수도 없게 됐어요. “지금 교체 불가능”이라는 에디터의 지시 하나가 떡하니 문자함에 있거든요.(이 또한 증거로 남겨둡니다.) 물론 독자들께는 죄송하단 말씀을(자세를 고쳐 앉아). 다음 기회에(그 기회가 온다면) 친절한 기자로 돌아오겠습니다.

하어영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haha@hani.co.kr

[시사게이트 #15] ‘국정원 게이트’ 닮아가는 ‘군인 댓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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