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자해한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아무개(61)씨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청와대·국정원·검찰, 누가 책임질지 조율 끝났을수도
‘윗선’ 규명이 관건…남재준, 문서 위조 알았는지도 밝혀야
‘윗선’ 규명이 관건…남재준, 문서 위조 알았는지도 밝혀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10일 국가정보원 압수수색에 나선 건 박근혜 대통령이 “철저한 검찰 수사와 국정원의 협조”를 지시하며 유감을 표명한 직후다. 앞서 국정원은 일요일인 9일 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는 발표문을 내놨다. 그런 뒤 이날 오전 10시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검찰은 7시간 뒤에 국정원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이 사전 교감을 한 뒤 압수수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 조율이 끝났을 수도 있다.
지난달 14일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졌지만 검찰은 국정원에 대한 강제수사를 머뭇거렸다. 검찰은 “섣부른 압수수색은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정원 스스로 문을 열 수밖에 없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왔다.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사건에서 수사 초기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가 국정원과 충돌하면서 이후 사사건건 국정원의 방해를 받았던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장이 형사소송법 관련 조항을 빌미로 압수수색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 소속 이인철 영사(국정원 출신)를 시작으로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관, 국정원 협력자 등을 여러 차례 불러 조사했다. 국정원 관계자들이 검찰에서 한 진술은 외교부 등 다른 기관 인사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검증했다. 물밑에선 통화기록 조회, 계좌추적 등을 진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아무 물증도 손에 쥔 게 없어서 관련자들이 검찰에 와서 많은 말을 하게 내버려뒀다. 이렇게 모아둔 진술이 국정원을 꺾을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국면을 바꾼 계기는 우연치 않게 왔다. 지난 5일 중국 삼합변방검사참(세관) 명의의 공문서 위조에 관여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61)씨가 위조 사실을 털어놓고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후 분위기는 검찰에 유리하게 바뀌었고, 검찰은 이틀 뒤 진상조사팀을 수사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앞으로 검찰은 국정원이 중국 공문서 위조를 알고 있었는지를 밝히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국정원에 들어오는 모든 문서와 정보는 교차 체크를 한다. 이번에 조작된 문서도 국정원에서 내부 감별을 거쳤을 것이다. 해당 문서가 믿을 만한 것인지를 평가한 국정원 내부 평가 보고서가 있을 것이다. 국정원이 신뢰성이 낮다고 판단했는데도 검찰에 문서를 제출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검찰은 증거조작의 ‘윗선’을 밝혀야 한다. 국정원 윗선 연루 정황은 국정원 협력자 김씨가 자살 시도를 하며 남긴 유서에 언급된 국정원과의 돈거래에서 감지된다. 이 유서에는 ‘2개월 봉급 300×2=600만원, 가짜서류 제작비 1000만원. 그리고 수고비’란 대목이 있다. ‘봉급’을 비롯해 거액의 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김씨가 국정원이 고정적으로 관리한 비중 있는 인물이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서 자금이 지원됐음을 시사한다. ‘윗선’이 알았을 개연성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한 전직 국정원 인사는 “김씨처럼 봉급 개념으로 300만원 정도를 줬다면 에이(A)급 협조원이다. 보통 한건당 정보 가치를 매겨 대가를 주는데, 봉급을 줬다는 것은 상시적으로 관리한 요원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누가 증거조작을 지시하고, 증거조작이 누구한테까지 보고됐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증거조작에 연루된 대공수사팀은 물론 대공수사를 지휘하는 국정원 2차장과 남재준 원장이 문서 위조를 알았는지, 이후에 보고받지는 않았는지도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김원철 김정필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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