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치고 발언대를 내려와 새누리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개헌 추진을 공론화하는 이유로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자신의 임기 내 개헌을 완수하겠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시기와 새 헌법 적용 시점은 차기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 축소’ 문제 등과도 얽혀 있어 여야 대선 주자들의 셈법이 저마다 다르다. 이때문에 ‘시기’의 문제가 향후 개헌 논의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이 이날 개헌 제안을 하며 ‘향후 정치일정’을 언급한 것은 내년 12월 대선 때까지 개헌을 마무리짓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이른 개헌 시기는 내년 4월 재보선 때 개헌 찬반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다. 개헌안 발의부터 국민투표까지는 최장 약 110일이 소요되는데, 만약 내년 1월 초·중순까지 개헌안을 발의하면 4월12일 재보궐선거 때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대표적 개헌론자인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이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의원 등이 ‘내년 4월 국민투표론’을 주장해온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투표 시기를 더 늦춰 12월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야권에선 이처럼 국민투표 시기를 못박아놓고 논의할 경우, 개헌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반발한다. 더욱이 ‘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한 각종 권력형 비리로 이미 권력누수(레임덕)를 겪고 있는 정부가 국민투표 시기까지 못박아 놓고 개헌을 주도할 명분 또한 없다고 보고 있다. 이때문에 대선 때 후보들이 개헌 공약을 내걸고 다음 정부 때 추진하는 방안도 나온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다음 대선 때 공약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은 뒤 차기 정부 초반에 (국민투표 등을) 추진하는 것이 정당한 절차”라고 밝힌 바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페이스북에 “내년 4월까지 개헌을 시도해보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각 후보자가 대선 공약으로 권력구조를 제시하고, 다음 대통령 임기 초에 그 제안된 형태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개헌 적용 시점은 훨씬 더 계산이 복잡하다. 만약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나 ‘순수 의원내각제’가 도입된다면, 새로 의원들을 선출해 총리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국회는 해산돼야 한다. 차기(19대) 대통령부터 개헌을 적용하려면, 300명의 20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절반가량 단축하거나, 내년 12월에 뽑히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2018년 2월~)를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 종료 시점(2020년 5월)에 맞춰 2년3개월로 단축하는 방안밖에 없다. 개헌론자인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임기 내 개헌을 한다 해도 개정 헌법 발효 시기는 21대 국회 시작과 함께 하지 않겠냐. 그렇지 않으면 현직 의원들이 거기에 찬성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 단축에 무게를 실었다. 이런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방안은 현재 상태로는 정권재창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여권 주자들이나, ‘문재인 대세론’에 가린 야권 후보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방안일 수 있다.
하지만 지지율이 높은 유력 대선주자 입장에선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이를 고려해 “내년에 개헌을 하되 10년 후인 2027년에 발효되게 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10년 뒤인 2027~2028년엔 대선과 총선이 5개월 차로 거의 동시에 치러지는 데다, 그때 누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등장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음모의 결과물로서 개헌이 아닌,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개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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