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20일 최근 화재가 발생한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을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춘재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cjlee@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누가 최종 결정할까. ‘김수남 검찰총장’은 정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데 지금은 대통령이 없으니 결국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최종 결정 권한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법무부 장관이 모든 사건에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건 아니다.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닌 경우 대부분 검찰에 맡긴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은 박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는데다, 과거 수사지휘권으로 재미를 본 경우가 있어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황 권한대행은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서 노골적인 ‘봐주기’ 수사 지휘로 악명을 떨쳤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구속 수사를 주장하는 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하고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당시 상황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댓글 삭제를 지시하는 등 증거 인멸 개연성이 충분히 있었다. 또 대선에 개입할 의도가 명백하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은 구속영장 청구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모두 반대했고, 결국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포기하고 선거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그는 수사지휘권 파동의 빌미를 제공해 상관인 검찰총장을 옷 벗게 만든 적도 있다. 2005년 ‘강정구 교수 사건’에서다. 강 교수가 인터넷 매체에 ‘6·25는 북한의 통일전쟁’이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강 교수에 대한 경찰 수사를 지휘하면서 구속 수사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에게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고, 김 총장은 불구속 기소를 받아들이는 대신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해야 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던 황 권한대행은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공안1부를 움직여 구속 수사 의견을 대검에 올렸다.
황 권한대행이 검찰의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결정에 개입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선 그가 이창재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에게 불구속 수사 지휘를 지시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대권주자를 포기한 마당에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끝까지 ‘박근혜 호위무사’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의 ‘후일 도모’에 유리할 수도 있다.
만약 황 권한대행이 수사지휘권 카드를 꺼낸다면 그 파장은 만만찮을 것이다. 당장 박 전 대통령 구속 찬성이 70%에 육박하는 여론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검찰의 반발이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법에 보장돼 있긴 하지만, 지금은 검찰이 순순히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혐의를 증언한 측근들과 각종 증거에도 불구하고 1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를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사상누각’, ‘상상에 근거해 지은 환상의 집’ 등 검찰로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지난 21일 2기 특별수사본부의 소환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공범과 뇌물공여자가 모두 구속된 마당에 ‘수괴’에 해당하는 피의자를 불구속하는 것은 수사 논리에도 안 맞는다.
김수남 총장이 수사팀의 구속 의견을 무릅쓰고 황 권한대행의 수사지휘권 카드를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김 총장은 최근 출근길에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는) 오로지 법과 원칙, 그리고 수사상황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구속 수사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들린다. 불구속 수사 지휘에 김 총장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사퇴밖에 없어 보인다. 장관의 수사지휘를 법적으로 거부할 수가 없으니 스스로 물러나는 식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황 권한대행은 어떤 선택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