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강원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춘천지검 청사 앞에서 대규모 부정청탁·채용 비리 의혹이 일고 있는 강원랜드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랜드 ‘대규모 부정청탁 게이트’로 현재 기소(불구속)되어 재판 중인 이는 단 2명이다. 외부 청탁을 받고 조직에 지시하며 수백명의 신입사원을 부정채용한 최흥집 당시 사장과 권아무개 인사팀장. 검찰이 적시한 죄명은 업무방해다.
하지만 두 피고인 쪽은 승소(무죄)를 꽤 자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계(僞計)에 의한 업무방해의 ‘기묘한’ 범죄구성 요건 때문이다.
형법은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314조)와 “그러한 방법으로 사람의 신용을 훼손한 자”(313조)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간추리자면, 최흥집 사장과 같은 이가 채용업무 담당자들을 오인·착각하게 하거나 그들을 속여 점수조작 등에 가담하게 했다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채용 실무자들이 알아서 사장의 지시를 이행하거나 양해했다면 처벌하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더 끔찍한 범죄가 더 처벌하기 어렵단 말이기도 하다.
대법원의 주류적 판례가 그러하다.
1999년 서울시농수산물공사(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김영진 당시 민주당 의원이 채용 청탁한 한 응시자의 필기성적을 위조해 합격시킨다. 응시자는 일반상식에서 70점(24위)을 받아 합격권(13위) 밖이었으나 76점이 되며 10위로 오른다. ‘구원’받은 이는 김 의원의 후원회 회장 아들이었다. 이듬해 사서직 공채 때 한 여성 응시자는 지원제한 연령을 넘겼지만 해당 조건을 ‘맞춤형’으로 변경하면서 합격한다.
이들의 채용을 지시한 당시 허신행 사장(김영삼 정부 때 농림수산부 장관)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되었다. 사장의 부당채용 지시, 이행 모두 재판부는 사실로 인정했다. 하지만 허 사장은 무죄였다.
대법원은 허 사장 지시로 점수조작, 지원자격 변경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면서 실무자들도 양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사실상의 ‘공모’라는 것이다. 2007년 대법원은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이런 취지의 무죄 판결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당시 안대희 대법관(주심)과 이후 청탁금지법의 산파가 된 김영란 대법관, 총리가 된 김황식 대법관 등이 처리했다.
대법원 판례에 의거하여, 강원랜드 부정채용 사건의 피고인들이 꿈꾸는 ‘내일’은 이미 수차례 현시되어 있다.
지난 8일 ‘2016고단1575 업무방해’ 사건을 놓고 열린 대전지법 항소심 첫 공판 법정. 2016년 대전도시철도공사 공채에서 차준일 사장이 지역언론사 부회장, 대전시장 선거캠프 고문 등의 채용 청탁을 받아 특정 응시자들 면접점수 등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부정합격시켰다가 기소되었다.
이날 검찰은 항소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채용비리는 극심한 취업난 현실에서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고 뿌리 뽑아야 할 고질적 부패로, (당시) 공직자로서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을 해야 할 막중한 책임의 피고인이 특정인의 채용 청탁을 받고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키고 누군가를 탈락시켜 피해를 준 것에 막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사장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게 올 초 1심의 판단이었다. 앞선 대법원 판례 요지대로다. 면접위원들이나 중간 실무자들이 부정 사실을 인지했기에, 부정이 있을지언정 사장이 그들 업무를 위계로 방해하진 않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2012~13년 518명 신입사원 가운데 493명(95%)이 내·외부 청탁·지시로 별도관리·선발(내부 감사결과)되었다는 강원랜드도 ‘대전도시철도공사’가 될 수 있을까. 실제 최흥집 사장 쪽은 ‘모두가 알고 한 부정행위’라는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면접위원(인사팀장, 카지노관리·호텔관리실장)들이 (짠 듯) 각각 청탁 대상자의 74% 이상한테 합격점을 줬다”(지난 8월29일 공판)며 최종합격 결과가 사전모의 없이 나올 수 없었다는 점을 내세운다. 부정은 있었더라도, 사장 지시에 따라 직원 모두가 ‘부정채용’을 양해 내지 공모한 것으로 어느 직원도 제 업무를 방해받진 않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주류적 판례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의 바람대로 될지 전망하긴 이르다. “특정 응시자들 대상의 채용 지시 사실을 몰랐고 소신대로 평가했다”고 주장하는 면접위원이 있으며, 서류평가 점수조작에 반대했던 인사팀원도 있었다는 게 당시 핵심 관계자들 설명이다.
2013년 부정채용 사건으로 기소(업무방해 혐의)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박철규 전 이사장은 지난 5월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일부 외부 면접위원들의 업무가 이사장 때문에 방해받았다는 사실이 입증된 덕분이다. 2011년 안산도시공사 역시 시의원, 안산시장 친척 등의 청탁으로 특정인이 부정채용된 사실이 드러나 서아무개 경영본부장 등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되어 1·2심에서 모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면접업무 방해였다.
면접위원들도 사전모의했다면 ‘해당사항 없음’인가. 꼭 그렇진 않다. 대법원은 2010년 수협의 한 부정채용 사건을 다루며, 애초 서류탈락자가 점수조작으로 면접에 올라온 자체로 면접위원들 업무가 방해받았다며 2심(업무방해죄 무죄)을 파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업무 수행 자체가 아니라, 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된 경우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대전/조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