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사법농단 사건을 전담할 특별재판부 구성에 합의했습니다. 신속한 국회 입법을 위해 자유한국당에 동참을 요청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국회가 판사 지명에 나선다’, ‘인민재판이 생각난다’며 반대하고 있는데요. 정말 국회 지명으로 특별재판부가 구성되고 인민재판 같은 형식의 사법절차가 진행되는 걸까요. 특별재판부 구상은 지난 8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특별법)’을 통해 구체화됐는데요. 그 내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국회가 특별재판부 판사를 지명한다?
특별재판부 구성은 법원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를 포함한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공정하게 담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출발했습니다.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공언과 달리 대법원은 사법농단 자료 제공에 소극적이었고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은 90%에 이르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재판입니다. 사법농단의 핵심 피의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기소가 임박했는데, 사건이 배당될 서울중앙지법 부패 사건 전담 합의부 8곳 중 5개 재판부에 사법농단 피의자이거나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단계에서 조사를 받은 판사들이 포함돼있습니다. 또 다른 재판부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블랙리스트’에 오른 판사가 있다고 합니다. 사법농단 피의자가 기소되면 재판부가 무작위로 배당되는데 사법농단 관련자들이 이를 단죄할 재판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특별재판부 구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이유입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이라는 것이죠.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 의원 수를 합치면 178석의 넉넉한 과반의석입니다. 그러나 교섭단체인 자유한국당이 법안 상정에 반대하면 본회의 처리는 불가능합니다. 다수당의 횡포와 이에 따른 몸싸움으로 점철됐던 ‘동물국회’를 없애겠다며 교섭단체간 합의가 반드시 있어야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 한 ‘개정 국회법(국회선진화법)’ 때문인데요. 그래서 특별재판부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자유한국당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페이스북에 ‘특별재판부 추진, 이 정도에서 멈추는게 옳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국회가 나서서 판사까지 지명해야 할까요”라며 특별재판부 구성에 국회가 개입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는데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도 “특별재판부 건은 근본적인 헌법정신, 국가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관한 문제로서 어쩌면 판문점선언 비준 건보다도 더 중차대한 문제다. 재판부를 국회가 지명하겠다니요? 제정신이냐”며 특별재판부 구성에 합의한 당 지도부를 비판했습니다.
박주민 의원의 법안에서는 특별재판부 선임 절차를 자세하게 적어놨습니다. 법안을 보면, 특별재판부는 사법농단 사건 1심인 서울중앙지법과 2심인 서울고법에 각각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영장 심사를 담당할 특별영장전담법관도 서울중앙지법에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특별재판부와 특별영장전담법관 인선을 위해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원회)’가 구성됩니다. 추천위원회는 대한변호사협회와 판사회의(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대법원장이 3명씩 위촉해 모두 9명으로 꾸려집니다. 특히 대법원장 위촉 위원은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변호사 자격을 갖지 않은 사람 3명이며 이중 1명 이상은 여성이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대한변협에서 변호사를, 판사회의에서 판사를 추천위원으로 위촉할 가능성이 크므로 비법조인과 여성을 위원으로 안배하겠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위원회는 현직 판사 중에서 1·2심 특별재판부와 특별영장전담법관 후보자를 2배수(각 6명)로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들 중에서 각 3명씩을 임명합니다. 물론 추천 대상자는 현직판사입니다. 특검법의 경우 국회가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한 적은 있지만 이번 특별법에서는 국회가 특별재판부 구성에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박주민 의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치인들이 법안도 제대로 안 보고 비난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 시민단체가 특별재판부를 추천한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시민단체가 추천하도록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 좀 걱정들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여야 4당 원내대표가 특별재판부 설치에 합의하면서도 바른미래당은 추천 방식의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는데요. “시민단체가 특별재판부를 추천한다“는 주장은, 박주민 의원이 낸 특별법 가운데 “개인·법인 또는 단체가 추천위원회 위원장에게 서면으로 특별영장전담법관 후보자 및 특별재판부후보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공개로 추천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추천위원회는 “추천받은 사람 가운데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서 적격 여부를 심사한 뒤 적격으로 판정된 사람을 특별재판부 후보자로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특별재판부에 적합한 판사를 추천해보라는 국민공모 통로를 개설한 것입니다. 법안 발의자인 박주민 의원은 “(개인·단체가)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지만 외부 추천자 중에서 뽑아야 하는 기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시민단체’가 특별재판부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자신들이 임명한 대법원장을 놔두고 특별재판부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6·25 전쟁 때 완장을 차고 벌였던 인민재판이 자꾸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의 1심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한다는 조항도 비판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바른미래당은 특별재판부 추천 방식 수정과 국민참여재판 배제를 제안했고 민주당도 이를 적극 수용할 계획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반영해 특별법 세부 내용을 수정해서라도 특별재판부 구성이란 목표를 이뤄내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지금의 법안으로는 자유한국당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논의의 장으로 끌고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왜 특검이 생겼나. 국민이 믿지 못할 수사를 검찰이 했기 때문에 초법적으로 국회에서 특검법을 제정해 이뤄진 것이다. 국민 70% 이상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초법적인 특별재판부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의 음험한 재판거래를 단죄할 특별재판부 도입에 뜻을 모을 수 있을까요?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