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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고건 “이념의 굴레 빠진 정치 포용·통합 리더십 가져야”

등록 2006-01-15 19:41수정 2006-01-17 14:21

대선 예비후보 연쇄 인터뷰 ① 고건 전 총리

1·2 개각 파동과 2·18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등으로 연초부터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5·31 지방선거 뒤에는 정계개편과 개헌이 기다리고 있다. 2006년 정치의 해를 맞아, ‘대선 예비주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견해와 정국 전망을 듣는 연쇄 인터뷰를 마련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의 지지율은 불가사의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5월 각료제청권을 거부하고 물러난 뒤 지금까지 줄곧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2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 처음엔 ‘거품’이라고 깔보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정당에 소속하지 않은 정치인으로서 2년 가까이 그 정도 지지율을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건물 안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했다. 5평 남짓한 좁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두툼한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읽어보고 있었다. 자료의 여백에는 직접 메모한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사진기자의 요청에 따라 배경을 잡기 위해 잠시 소파로 옮겨 앉았는데, 긴장을 푸는 차원에서 가벼운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현정부 평가?
권위주의 타파 등 해냈지만 소통·협력 얻는 노력 미흠

#정당 가입 의사?
국민 목소리 듣고 판단할 것…새 당 만들기도 배제 안해

#꾸준한 지지도 비결?
탄핵때도 안정적 국가관리…국민의 신뢰표시 아닐까?


-요즘 어떤 분들을 만나십니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요. 우선 공직 있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난 사람들을 만나고요. 요즘은 경제 전문가들을 자주 만나요.

-(지지 모임인) ‘고사모 우민회’ 분들은요?

=그분들은 자연발생적인 온라인 카페 모임이라서요. 저는 사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서 그분들을 만나지요. 오프라인 상에서 자주 만나진 않아요.

-정팅(정기 미팅) 같은 것은?

=그걸 하죠.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호프 미팅을 합니다.

-최근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등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많이 하시는데요, 일반인 강연과 다른 의미가 있나요?

=그쪽에서 요청이 먼저 와서 만납니다. 예를 들면 부산 국제신문사에서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을 상대로 문화교실을 했고, 전국 고교 학생회장들을 대상으로 성균관대에서 리더십 세미나를 했어요. 그쪽에서 초청을 받고 간 거죠. 고교생이나 젊은 대학생 강연에 가면 대화하는 데 중점을 둬요. 젊은 사람들 생각도 알아보고요. 대화도 잘 통해요.


-최근에 어떤 책을 읽으셨나요?

=<2010 대한민국 트렌드>라고 엘지 경제연구소에서 나온 걸 읽었고요. 오세훈 변호사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쓴 <실패에서 배운다>란 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요즘은 <싱가폴 스토리>라고, 리콴유 수상 이야기인데, 우리 번역으로는 뭐더라?

-오세훈 변호사가 쓴 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아일랜드가 국가 경제에 실패 했는데요.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서 영국 본토보다 국민소득이 높게 됐지요. 그러한 나라의 사례를 분석한, 사회 전체와 국가 발전에 대해 쓴 책입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매일 새벽 동네 대중탕에서 반신욕과 요가를 하죠. 그리고 주말엔 테니스를 치고요.

-젊은이들이 보기엔 젊지 않으신데, 본인은 어떻게 느끼나요?

=대학로에서 오래 사는데 매일 젊은이들과 부딪히고, 호프집에서도 만나고 이야기하면 잘 통해요. 젊은이들과 강연에서 대화해 보면 큰 간극 없이 대화가 잘 통하던데요.

-테니스는 누구하고 치나요?

=테니스 클럽이 20년 된 게 있어요. 약속 없이 주말에 가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죠.

-어떤 분들인가요? 저희도 알만한 분들입니까?

=나종일 대사가 멤버였는데 지금 일본에 가 있고, 국찬표 서강대 교수, 또 최홍건 산업기술대 총장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올해가 벌써 2006년입니다. 21세기 초반에 대한민국과 정부가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지난해 제가 6차례 해외시찰을 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역동적으로 변화·발전하고 있는지, 세계 속에서 한국의 미래 전략이 뭔지’, 이런 것을 자연히 고민하게 되는데요. 저는 한국은 아직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비용의 중국, 효율의 일본’ 사이에 끼여서 협공을 당하고 있는 형상이에요. 이에 대한 대응전략이 분명치 않아요. 그리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지난해 우리 서민 살림살이가 어려웠고, 청년 실업을 비롯해 경제 동력이 떨어지고 사회 양극화는 심해지고, 또 지역·계층·세대간 갈등도 커지고요. 그런데 이런 시대적인 과제들을 정치가 해결해 줘야 하는데, 지금 ‘이념의 굴레’가 있다고 할까요, 이념대립의 정치 리더십이 이런 과제 해결에 별로 도움을 못 줘요. 그래서 지도자들이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국민을 위한 실사구시 관점에서 민생을 돌보고 경제 회생에 최선을 다하는 실용주의 리더십을 실천해주길 바라는 거죠.

-노무현 정부의 지난 3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리고 남은 2년 동안 어떤 일에 치중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참여정부가 3년 동안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지방 분권화를 촉진한 점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21세기의 새로운 리더십을, 한국을 끌고 갈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는 미흡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국가 정책을 수립·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의사소통을 하고, 협력을 얻는 노력이 미흡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는 우리 정부가 서민들이 느끼고 있는 경제난에 대한 체감 온도를 똑같이 느끼고, 국민과 함께 힘을 모아 뛰자고 호소를 해야죠. 그게 저는 제일 급하다고 생각해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군 출신 대통령 시기에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졌습니다. 노무현 정부 뒤는 어떤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대 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였거든요. 그래서 21세기 새로운 한국의 장기발전을 지향하는, 말하자면 앞으로 10년이 아주 중요해요. 왜냐하면 2015년이면 인구 구조가 달라집니다. 생산 인구가 비생산 인구보다 적어집니다. 그 때까지가 선진국에 진입할 유일한 시기에요. 지금부터 10년의 역사적 과제는 어찌하면 2015년까지 선진국에 진입하느냐에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평균 5.4%의 성장을 하면, 2015년엔 3만4천~3만5천달러가 된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지요. 이를 위한 장기 전략과 비전을 수립해서 국민 에너지를 결집시켜 나가는 것이 다음 정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많이 분열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대립과 분열을 넘어, 포용·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와 관련해서 말씀하셨는데, 성장이냐 복지 가운데 어느 쪽이 중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성장을 하는 복안이 있나요?

=성장과 분배는 대립적으로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닙니다. 상호 보완으로 접근해야죠. 양극화 해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사회 양극화를 극복해 낸 선진국들의 성공사례를 밴치마킹해야 합니다. 대체로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성장이에요. 그래서 극복했어요. 즉 양극화 극복의 필요조건이 고성장이에요. 물론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두번째는 교육입니다. 고용, 복지, 교육 이 세 가지를 생산적으로 연결시키는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죠. 이를 ‘생산적 사회안전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생산적 복지’라고 할 수도 있을 거에요. 교육을 통해 고용을, 즉 1차 실업자를 교육 훈련을 통해 고용시켜야죠. 고용이 복지니까. 이를 삼각 사회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크게 보면 이 두 개의 기둥을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미 관계, 북핵 문제 등은 어떻습니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포함해서, 남북관계,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대북정책은 우리 정부가 북한을 인도적 지원을 해서 경제교류 협력을 확대하고,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안착시키는 방향으로 하고 있는데, 그 기본 방향은 옳아요. 그런 점에서 진전을 가져 왔습니다. 다만, 지난번 현대아산 문제로 인해 북쪽이 일방적으로 폐기 선언을 했는데 앞으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요. 남북경협이 좀더 제도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자 보장이 확실하게 확보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북쪽을 지원하는 정책 목표가 인도적 지원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데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부터는 북쪽의 개혁·개방을 도와주는 지원과 정책으로 가져가야 해요. 북쪽도 개혁·개방을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북쪽이 중국식으로 그렇게 가도록 지원 정책을 분야별로 목표 의식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막했으니까요. 이제는 일종의 변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써야지요.

셋째는, 그 계획을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럴려면 국민적 합의를 얻는 그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국민적 합의를 불러일으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죠. 대개 이렇게 생각이 드네요.

또 한반도 안전을 위해서는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6자 회담의 모멘텀을 지속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잘 되면 6자 회담을 동북아의 안보협력 질서 체제로까지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6자 회담 해결 이후겠지요.

-한-미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지난 3년 동안 참여정부 아래서 한-미 정부간 공식적인 관계를 보면,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기지 이전, 주한 미대사관 토지 문제 같은 현안에서는 원만히 해결이 됐어요. 지난 경주 정상회담에서도 한걸음 나아간 포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천명했죠. 그런데, 한-미 동맹으로서의 긴밀한 의사소통, 그러니까 실질적인 소통에 좀 갭(거리)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맹이라는 끈끈한 유대가 희석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제 생각이에요. 양국민 간에 노력해야 할 문제겠죠. 정부 뿐 아니라….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를 하면 고건 전 총리께서 굉장히 유력한 후보로 나옵니다. 국민들도 고 전 총리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다음 대선에 출마할 의사가 있나요?

=저에게 많은 기대와 신뢰를 보낸 국민 여러분에게 고마운 생각을 하고,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대가 저에게 요구하는 정치적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시점에서는 출마 여부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또 지방선거가 있어서 정치 과잉이 염려되는데, 따라서 지금은 그럴 시점이 아니에요.

그러나 말씀드린 것처럼 지난 10년 동안 국민소득이 1만불에서 맴돌고 있잖습니까? 또 중·일 사이에 끼여서 협공 당하고 있고요. 2015년까지 선진국 ‘지텐’(G-10)에 진입한다는 장기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이 시대의 국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제를 추진 하는 데 저의 역할에 대해 확신이 서면 그 때는 국민의 부름에 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정당에 입당할 의사는 있나요?

=제 정치적 역할에 대해 아직 결단을 안 내려서 그 문제도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여러 사람으로부터 의견을 경청하고 있고,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경청해서 판단할 예정입니다. 새 당을 만드는 것도 포함해서요.

-지방선거의 의미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사실 지방자치란 것은 지역 주민들이 그 지역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주민의 복지나 지방의 발전 등을 지역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하는 지자체 정신에 충실한 선거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너무 중앙정치가 정치적인 개입을 해서 정치과잉이 되면 본래 취지에 반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는 지방선거가 정치권 변화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데요?

=언론에서도 전망을 대체로 그렇게 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창조적 실용주의’를 말씀하신 일이 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실사구시 관점에서, 무엇이 실질적으로 국민을 위해 필요한가’, 이걸 찾아 국민과 함께 추진하는 것이 실용주의입니다. 이념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면에서 실용주의이고요, 리더십으로 현실 안주가 아닌 실용적인 혁신을 통해 미래를 연다는 점에서 창조적 실용주의입니다.

-그 내용물은 뭔가요?

=지향하는 것은 소통과 연대를 통한 통합의 리더십입니다. 지금은 통치의 시대가 아니거든요. 협치, 거버넌스의 시대입니다. 사회 구성원과 의사소통이 중요해요. 같이 연대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야 일이 추진되는 거에요. 일방적으로 끌고 가선 안돼요. 소통과 연대를 통한 통합의 리더십이죠.

또 하나는 실용적인 혁신이에요. 국민이 필요로 하는 지속적인 개혁을, 이념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입각한 지속적인 개혁과 혁신의 추구가 창조적 실용주의입니다.

그리고 상생의, ‘윈-윈’하는 그런 리더십이 실용주의 리더십입니다. 예를 들면 이분법적으로, 이쪽이다, 저쪽이다라는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니고요, 그 양쪽을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상생의 리더십, 또 세계와 협력·경쟁하는 열린 리더십이죠.

-고 전 총리 본인의 이념 성향은 보수와 진보 중 어디에 가깝다고 보십니까?

=저는 개혁적인 실용주의자입니다. 보수라하면 개혁적인 보수고, 진보라 하면 합리적인 진보죠. 결국은 ‘개혁적 실용주의자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시장의 원리는 존중하되 여기에 공정성을 더해야 한다는 거죠.

-여론조사에서 이미지는 보수에 가까운데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죠, 허허~.

-지지율이 예상보다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데,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글쎄요. 제가 대답할 성질의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다만 오랫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국정을 수행한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의 표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기라기 보다는요.

제가 탄핵 정국 때,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 의결되었을 때, 이게 국가의 위기 상황인데요. 갑자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서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나 선례도 없었어요. 단지 자연인인 나의 판단에 따라 언제, 어떻게 하는지가 모두 걸려 있는 거에요. 뭐가 제일 급하고 중요한가 생각했는데, 국가안보다라고 판단했죠. 전군 지휘 경계령을 내리는 것을 시작으로 안보 태세를 강화하고, 대외관계를 점검하고, 특히 중요한 우리 경제의 해외 신인도를 유지했어요. 국내적으로는 사회·경제의 안정 순서로 위기관리를 해 갔는데 그때 국민들이 제 말을 믿고 전폭적으로 협력했습니다. 그래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어요. 지금도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게 생각해요. 권한대행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협력해 주신 것 아니었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때의 일을 국민들이 지금도 평가를 해주고 있나고 봐도 되나요?

=글쎄요, 허허.

-다음 대선은 2007년인데요, 지난 대선까지 지역, 이념, 세대 등이 큰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다음 대선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디서 여론조사를 한 것이 있던데요. (자료를 찾아서 보여주며)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2005년 12월 조사를 했는데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보니 국민들은 ‘국가 운영능력’-‘국민통합’-‘안정감’-‘도덕성’-‘개혁성’ 순으로 대답했어요. 그래서 다음 시대정신이랄까요, 중요한 것은 역시 대립과 분열을 넘어선 통합이 시대정신이 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개혁성이 5번째네요?

=개혁도 국민 통합이 바탕이 되어야 이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어떤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하느냐도 중요한데요. 같이 일할 인재풀을 어떻게 만들고 조달하는 것이 옳을까요?

=국가 사회 전체를 인재풀로 보고, 시스템 인사를 해야죠. 민주화 투쟁을 할 때는 서로의 의리가 중요했어요. 투쟁을 해야 하니,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보스와 가신이 생겼어요. 지금 21세기에서 보스와 가신이 생길 수 있습니까? 그럼 구식 정치지요.

-정권의 정체성이란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인선의 기준을 만들면 되지요. 인재풀은 국가와 사회 전체에서 형성하되, 방향에 맞는 성향의 사람들을 찾아서 쓰면 됩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그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동의하십니까?

=글쎄요. 참여정부 초대 총리로 있을 때 대통령이 아주 좋은 인사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가령 복지부 장관 같으면, 보건복지부에서 해야 할 국정과제가 있지 않습니까? 국민연금 개혁이라든지 저출산 대책, 고령 사회 대책, 양극화 대책, 이런 막중한 국정 과제를 수행하는 데, 능력 있고 적합한 인사를 3명 내외로 인선해서 위원회에서 복수 후보자를 놓고 비교 심사를 했습니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내정하는 거에요. 그게 정상적인데, 이번에는 그 시스템대로 안 한것 같습니다.

-총리가 계실 때는 잘 됐는데 지금은 왜 그렇죠?

=글쎄요. 논의가 됐는지 모르지만 신문 보도를 보면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국민이 통합적인 리더십을 가장 바라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인사는 통합적 리더십과는 맞지 않는 인사 같아요.

-사립학교법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원외투쟁을 하고 있는데요. 사학법 개정안 자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는 우선,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요. 아쉽게 생각해요. 이번 개정 내용은 사립학교 재단 투명성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에 못지않게 자율성도 존중돼야 해요. 투명성과 자율성은 양자택일을 하고, 하나는 버리는 것이 아니거든요. 두 가지가 상호 조화 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협의가 필요해요. 이 법이 1년 반이 넘었는데 당국과 사학재단, 여야 간에 진지하게 대안을 찾는, 진지한 협의를 했다는 보도를 본 일이 없어요. 그런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법을 통과시켜 문제의 발단이 된 거죠. 지금이라도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진지한 대화와 협의를 해야합니다.

-한나라당의 원외투쟁은 어찌 보시나요?

=대화와 협의를 해야죠.

-등원해야 한다는 것인가요?

=대화라는 것은…, 좌우간 지금은 대화 자체가 안 되고 있잖아요?

-황우석 교수 사건은 어떻게 보십니까?

=과학 연구와 정부의 검증 시스템 모두가 대중 인기영합에 빠져서 나온 안타까운 결과입니다. 사실 정부가 국가예산을 막대히 투입할 때는 실현 가능성과 효율성을 검증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번은 이것 없이 저질러진 실수에요. 국가가 엄청난 타격을 받았어요. 개인 기업이 이런 실수하면 생존할 수 없지요. 우선 왜 기왕에 있는 검증 시스템이 작동이 안 됐나, 앞으로 재발을 막으려면 어떤 시스템이 더 필요한가 분석을 하고 개선해 가야겠지요.

과학계는 전화위복으로 삼고 새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밤새워 고생하는 연구자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따뜻하게 성원해야 합니다. 다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큰 신뢰의 위기가 표출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신뢰성을 회복하는 조용한 물결들, 실천 운동들이 펼쳐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시장을 지내셨는데, 열린우리당은 이계안, 민병두 의원이 서울시장에 나서고, 한나라당은 맹형규, 홍준표, 박계동, 박진 의원 등이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정치인이 시장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정치인들이 서울시장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시는지요.

=서울시장은 1천만 시민의 생활을 관리하는 대도시의 행정가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는 1천만 대도시 관리 능력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장기적으로 10~20년 후의 서울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그랜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게 도시계획으로 이뤄집니다. 이런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이 시장을 할 수 있다, 아니다, 이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인이라도 앞에서 말한 그런 자질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만, 정치인이 시장이 됐을 때는 그 직책이 정치적으로 매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서울시장에 나서는 의원을 보면, 대선주자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업그레이드’ 용도로 서울시장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잠시 생각) 좌우간 저는 민선시장으로 입후보 했을 때 그런 질문을 받았는데요. 그 때에 착수했던 일, 즉, 2기 지하철 5·6·7·8호선을 마치면 제 할 일을 하는거다 라고 말했어요. 또 2002 월드컵을 준비하는데 쓰레기터 105만평을 시민 휴식처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죠. 서울시가 복마전이란 오명을 씻겠다고 했어요. 이 세 가지를 약속했는데, 임기 동안 마칠 수 있었어요. 저는 제가 시장으로서 할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러났고, 다른 뜻을 두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나왔습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인기가 좋은데요. 청계천 개발과 교통체계 개편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시장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서 서울시에 경영을 접목시키고 강한 추진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만나시나요?

=만날 기회가 뭐 별로 없죠.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신가요?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또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어요.

-요가를 하신다고 하는데요?

=선친도 요가를 했습니다. 저는 한때 요가책을 보고서 필요한 요가를 개발했습니다. 매일 20~30분 정도 합니다.

-젊은이들은 총리님을 성공한 지도자이자, 어른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부산에서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 500명에게 강연을 하는데, ‘어떻게 국무총리가 되셨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하하~. 그래서 이건 비결이 없다고 했죠. 다만 공직생활을 통해 일관되게 지켜온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내가 맡은 일은 온 정성과 지성을 다해서, 국민에게 봉사한다고 하는 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는데 감천은 못해도 감민, 즉 시민과 국민이 감동할 때 까지는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첫 좌우명이 ‘지성감민’입니다. 둘째는 청렴을 하겠다는 것이죠. 제가 야당 국회의원의 아들로 공직자 생활을 출발해서 그런지 청렴은 제게 생존법칙이었습니다. 그게 제 브랜드가 됐습니다. 그리고 나만 청렴한게 아니라, 복마전이라는 서울시의 오명을 깨는 ‘오픈 시스템’(온라인 민원처리 시스템)을 통해서 투명한 행정으로 부패를 원천적으로 뿌리뽑았습니다. 지금은 서울시를 복마전이라 부르는 사람이 없지요. 세번째는 ‘일신’(日新)입니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나날이 변합니다. 국정도 나날이 변하죠. 그러면 나도 변해야 한다. 일일신을 해야한다는 거죠.

-혹시 최근 본 영화가 있습니까?

=뭐. <웰컴투 동막골>요.

-젊은이들이 보는 영화는 안보시나요?

=동막골도 가보니 관객이 다 대학생이던데요. 요즘 새로 나온 거 있어서 보려고 하는데 잊어버렸네요. 제목이 길던데….

-오랫동안 편안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 전 총리는 인터뷰를 마치고, 테이블 위에 있던 <빌딩 굿 거버넌스>란 책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마크 홀저란 사람이 미국 행정학회 회장입니다. 그런데 미국 생산성본부에서 서울시정 개혁 사례를 책으로 발간했어요. 서울시정 개혁이 외국에선 상당히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시스템 혁신을 했습니다. 그러니 소리가 안 나죠. 국제투명성협회에서 상도 주고 그랬습니다.”

글/성한용 선임기자, 성연철 기자 shy99@hani.co.kr 사진/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총리·서울시장만 2차례씩…요가·테니스로 건강 다져

고건 전 국무총리는 2006년 새해 각 언론이 발표한 대선 예비후보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오차범위 안에서 1, 2위를 다퉜다. 일부에선 ‘거품론’이라고 하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1960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지금의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7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내내 고위 공직을 맡으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37살이던 75년 최연소 도지사로 전남도지사를 지냈고, 81∼82년에는 교통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12대 국회에선 군산·옥구에서 민정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관선(88∼90년)과 민선(98∼2002년)으로 두 차례 서울시장을 역임했다. 국무총리도 두 번이나 했다. 97∼98년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지냈고,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총리로 다시 임명됐다. 2004년 3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두 달여 동안 대통령 직무대행을 했다. 2004년 5월에는 노 대통령의 각료제청 요청을 거부하고 퇴임했다.

고 전 총리는 매일 새벽 대중 목욕탕에서 반신욕과 요가로 건강을 관리한다. 주말엔 지인들 모임인 ‘상록회’ 회원들과 테니스를 치기도 한다. 가족은 동갑인 부인 조현숙씨와 세 아들이 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고건 전 총리 주요 약력

△서울(68)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 △전남지사 △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서울시장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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