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시스템과학공학센터(CSSE)가 제공하는 전세계 코로나19 감염현황(29일 낮 12시 현재). 정보기술 발달은 세계적 전염병 확산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각국의 감염상태를 공유하며 지구적 차원의 공동대응을 모색하게 한다. CSSE 제공
#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이 상세하게 공개되면서 공중보건과 무관한 사생활 침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감염 뒤 이용한 교통수단과 방문한 장소를 공개해 접촉자를 찾아내기 위한 목적인데, 확진자의 성별과 나이, 성씨, 직업, 거주지까지 공개되면서 일어난 피해다. 이동경로가 일부 겹치는 남녀를 놓고 불륜 의혹이 나오는가 하면, 노래방이나 역술원을 방문한 확진자를 놓고 비난이 쏟아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14일 확진자 정보공개 지침을 마련해, 거주지 주소와 직장 이름 등을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
# 나치 치하의 네덜란드 유대인은 가장 가혹한 학살 피해를 입었다. 네덜란드 유대인 인구의 73%가 학살과 국외 강제추방됐는데, 이웃나라인 벨기에(40%)나 프랑스(25%)는 물론 유럽 어떤 나라보다 높은 비율이다. 네덜란드에서 치밀한 유대인 학살이 저질러진 배경엔 복지 효율화 정책이 있었다. 1930년대 네덜란드 정부는 모든 국민에 대해 이름, 생년월일, 주소, 종교를 비롯해 다양한 개인정보를 포함하는 인구등록부를 만들었다. 2차대전 때 네덜란드가 나치 치하에 들어가면서 독일 손에 들어갔다. 보건복지 데이터베이스가 나치에 의해 학살용 데이터로 쓰인 것이다. 나치를 겪은 유럽 각국이 개인정보 수집과 프라이버시 침해에 민감한 태도를 갖는 역사적 배경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세계적 대유행 전염병(팬데믹)으로 지정한 코로나19는 1918년 스페인독감 이후 가장 광범하게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위험한 전염병으로 평가된다.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친 광범한 전염병이라는 점에서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라는 것은 공통되지만 다른 점도 많다. 무엇보다 현대 의학과 보건정책, 과학기술 수준은 1세기 전 전염병 대응 수준과 비교할 수 없다. 최소 5000만명에서 최대 1억명의 사망자로 추정되는 스페인독감의 높은 치사율이 코로나19에서 재연될 가능성은 없다.
의료적 차원만 달라진 게 아니다. 정보적 관점에서 전염병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관리도구가 생겼다.
정보 이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질병명에서도 드러난다. 스페인독감이란 말이 증거다. 스페인독감은 독감의 발생과 피해가 스페인에서 발생해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당시 1차대전을 치르고 있던 참전국들은 여론 악화를 우려해 언론을 엄격히 통제·검열하며 독감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스페인독감’이란 이름은 중립국이던 스페인 언론이 당시 독감에 대해 검열 없이 자유롭게 보도했기 때문에 생겨난 아이러니다. 코로나19(Covid19)는 세계보건기구에서 감염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 정한 공식명칭이다. 질병의 진행과 확산속도 또한 날마다 국가별 상세 정보가 공개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바이러스의 유전자정보 또한 국제적으로 공유되면 인류 차원의 공동대응이 이뤄지고 있다.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경로를 보여주는 다양한 앱이 개발돼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지만 사생활이 침해되는 피해도 발생했다. 코로나맵 캡처
그중에서도 질병의 확산 방지와 통제를 위해 감염자 개인에 대한 추적감시는 과거에 없던 능력이다. 스마트폰과 통신 기지국 정보, 와이파이 접속, 위치정보, 신용카드 사용내역, 폐회로티브이(CCTV) 등의 정보기술을 활용해 감염자와 밀접접촉자를 가려내고 동선을 세밀하게 관리하고 있다.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확산속도가 빠른 전염병의 확산을 늦추고 통제하는 데 정보기술을 이용한 추적감시는 효율성 높은 방법이라는 게 드러났다. 특히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모범적 방역정책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데는 적극적인 검사와 더불어 정보기술을 이용해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를 빠르게 식별해 격리와 치료에 나선 보건당국의 노력이 있다. 대구 집회 참석을 부인하던 신천지 확진자나 자가격리를 어기고 제주도를 여행한 유학생 등 많은 거짓말과 일탈을 밝혀냈으며 국민들의 협조를 이끌어냈다.
한국의 적극적인 추적감시 정책은 2015년 메르스 대응 실패에서 비롯했다. 당시 감염자 동선 파악에 실패한 것을 계기로 관련 법령이 개정돼 보건당국이 감염 차단에 필요한 경우 본인 동의없이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제주 여행 유학생 모녀에 대한 비난에서 드러나듯 자가격리 대상자가 지침을 어겼을 때 쏟아진 비난은 만인에 의한 감시체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의 대응방법은 1100만의 거대도시 우한을 전면봉쇄하고 스마트폰과 얼굴인식 등 각종 감시기술을 통해 강압적 통제 정책을 펼친 중국과 대비되며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주로 전체주의정권의 시민통제 방법으로 악용되어온 감시기술이 민주적 방법으로 공동체의 보건과 안전을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게 확인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는 네덜란드의 나치 학살 경험을 비롯해 냉전시기 동독의 슈타지, 소련의 케이지비(KGB) 등 비밀경찰에 의한 시민권 감시와 제약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형성돼 있다.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는 지난 20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에서 공동체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동안 감시기술을 거부해온 나라들에서도 대량 감시 도구가 일상화할 상황을 경고했다. 위기상황에서는 사람들 태도가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코로나19 이후엔 많은 나라에서 감시기술이 적극 수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스노든 폭로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감시기술에 대한 경종을 울렸지만 울림이 사라질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사생활 보호와 건강 보장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본다. 하라리가 감시기술의 인도적 사용으로 예로 든 나라가 한국, 대만, 싱가포르다. 적극적 검사와 투명한 정보공개를 바탕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을 끌어냈다는 점에서다.
하라리가 감시기술의 자발적 수용을 위해 제시하는 조건은 새로운 게 아니다. 강압적 감시체제 대신 공권력과 과학, 언론에 대한 시민의 신뢰 구축이다. 하지만 하라리의 조언은 구현이 쉽지 않다. 과학기술 발달에 불구하고 허위왜곡 정보가 난무하며 언론과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감시기술의 민주적 사용과 시민적 통제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