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이 개발하고 있는 오픈소스 기반의 저가형 인공호흡기 MIT E-Vent Unit. MIT 제공.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면서 인공호흡기 수요가 크게 늘었다. 30일 오후 현재 전세계 확진자 72만명, 사망자 3만여명이 넘는 세계적 대유행 감염병(팬데믹)으로 각국 의료시설이 포화상태를 넘어 마비상태를 보이고 있다. 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시설은 병상과 인공호흡기가 필수다.
확진자가 폭증한 미국 뉴욕에서도 인공호흡기가 크게 부족한 상태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지난 27일 “인공호흡기 3만개가 필요한데, 보유 수량이 4천개이고 연방정부가 4천개를 지원했으며 7천개를 구매했으나 계속 구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인공호흡기도 마스크처럼 생산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수준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 1대와 2명의 중환자를 연결하는 등 변칙적 사용법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쿠오모 주지사는 “코로나19는 많은 경우 호흡기 질환으로, 코로나19 환자가 아닌 환자는 통상 3~4일 정도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반면, 코로나19 환자는 11~21일 정도 호흡기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인공호흡기는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생존율을 높이는 결정적 장비다. 독일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지만 사망률이 1% 미만인 비결은 인공호흡기를 갖춘 의료시설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다.
전세계 다양한 기업들이 업종을 따지지 않고 인공호흡기 긴급개발과 생산에 들어간 상태다. 영국의 진공청소기 업체 다이슨은 지난 26일 영국 정부로부터 인공호흡기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지 열흘 만에 새로운 형태의 인공호흡기 코벤트(CoVent) 설계를 완성하고 생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1만5000대의 인공호흡기를 생산해 1만대를 정부에 납품하고 5000대를 국제기구와 병원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다이슨이 정부요청을 받은 지 10일 만에 설계를 완성하고 제작에 들어간 인공호흡기 코벤트(CoVent). 다이슨 제공.
미국에서는 자동차회사 포드와 GM, 테슬라가 인공호흡기 생산에 뛰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내 상황이 급속히 악화돼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서 세계 최대의 감염국이 되자 업체들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7일 1950년대 한국전쟁 때 만들어진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하며 GM과 포드 등 자동차 기업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명령할 수 있게 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청소기업체와 자동차업체가 보유한 공기 흡배기, 정화시스템은 인공호흡기에 응용이 가능한 기술이다.
국가와 대기업들의 노력과 별개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인공호흡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 28일 미국의 정보기술 언론 ‘원제로(OneZero)’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으로 연결된 여러 국가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이 ‘200달러(약 25만원) 미만의, 전력소모 적은 인공호흡기’ 100만대를 개발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다.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 연구진이 개발하고 있는 오픈소스 기반의 저가형 인공호흡기 MIT E-Vent Unit. MIT 제공.
이 ‘인공호흡기 1백만대 프로젝트(1 Million Ventilators project)’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구글 문서에 자신의 전문분야와 연락정보 등을 가입하고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30일 현재 참여자는 260명을 넘어섰다. 과학자, 의료인, 기술자들을 망라한 이 목록에는 런던의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전문가, 스위스의 생물학자, 페루의 기계공학자, 캐나다의 공급망 관리 전문가들도 이름을 올렸다. 인공호흡기 연구개발과 제조에 필요한 각 분야별로 워킹그룹이 만들어져, 그룹별로 온라인 회의와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지구적 차원의 긴급한 인도적 과제를 위한 크라우드소싱이다. “인류를 돕자”는 뜻 아래 모인 전세계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