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의 전자현미경 촬영 사진. 멜버른대 제공
지난해 11월 초 남아프리카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전례없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1일 새해 첫주에만 유럽에서 700만명이 감염된 점을 들어, 앞으로 6~7주 안에 유럽인구의 절반 이상이 오미크론에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오미크론은 전염 속도는 델타보다 몇배나 빠르지만 증상은 크게 약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 국립전염병연구소의 초기 분석에 따르면 오미크론은 이전 변이보다 입원치료 확률이 80% 적다.
한국에선 국립의료원 입원 환자 오미크론 환자 40명을 분석한 결과 48%가 무증상이었고, 증상이 있는 사람들도 모두 치료나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경증이었다.
오미크론에 감염된 기관지 조직의 전자현미경 사진.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이 바이러스 입자다. 홍콩대 의대 제공
오미크론이 일으키는 증상은 왜 델타보다 약할까?
가장 큰 이유는 폐 세포에는 잘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흡곤란 같은 심각한 증상은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해야 일어난다. 폐 세포가 감염되면 염증성 면역반응으로 정상세포까지 망가지면서 장기가 손상되고 산소 결핍을 부르기 때문이다. 폐까지 온 바이러스는 혈관을 통해 다른 장기로도 쉽게 퍼져나갈 수 있다.
그러나 오미크론은 일반 감기를 유발하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코, 목 등 상기도에서 주로 증식한다. 따라서 콧물이나 기침이 가장 흔한 증상이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오명돈 서울대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지난 12일 오미크론 임상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존 바이러스는 하기도 감염을 일으키지만, 오미크론은 상기도 감염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앞서 미 워싱턴대 연구진은 햄스터와 생쥐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출판전 플랫폼 ‘리서치 스퀘어’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햄스터와 생쥐를 각각 오미크론과 이전 변이에 감염시킨 뒤, 이후 질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봤다. 4일 후 확인한 결과, 오미크론 감염 동물의 폐에 있는 바이러스 수치는 다른 변이에 감염된 것의 10분1 이하였다. 특히 오미크론 감염 동물은 체중에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 다른 동물은 체중이 크게 줄었다.
홍콩대 의대 연구에선 오미크론 변이가 기관지에선 델타보다 70배 빨리 증식하지만 폐에선 증식 속도가 변이 전 바이러스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나타났다.
폐에는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세포의 수용체 단백질 가운데 템프리스2((TMPRSS2=막관통 세린 프로테아제2)가 많이 분포해 있다. 케임브리지대 등 영국 연구진은 이 템프리스2 단백질이 오미크론 변이와는 잘 결합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해 사전출판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영국 글래스고대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세포 표면의 템프리스2 대신 세포막의 카텝신 단백질과 결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역시 사전출판논문집 ‘메드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 방식을 쓰면 감염 속도가 매우 느려진다.
오미크론이 상기도에서 활발하게 증식한다는 건 바이러스가 더 쉽게 밖으로 배출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이는 오미크론의 전염력이 더 강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오미크론 감염 증상이 약한 또 하나의 이유는 면역 체계의 핵심 요소인 티(T)세포가 오미크론을 잘 막아낸다는 점이다. 티세포란 이름은 가슴뼈 바로 뒤 앞가슴 한가운데에 있는 흉선(Thymus)에서 생성되는 세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미크론이 발견된 이후 전문가들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오미크론이 면역 체계를 피해간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오미크론은 인체 내 형성돼 있는 항체에 잘 잡히지 않았다. 항체의 표적인 바이러스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의 세포 결합 영역(RBD)에 변이가 일어난 탓이다.
따라서 오미크론을 잡으려면 항체를 더 많이 배치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추가접종(부스터샷)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해전술을 펴듯 항체를 많이 만들어 오미크론을 잡는 전략이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와 홍콩과학기술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바이러스’(Viruses)에 발표한 예비 연구에 따르면 ‘에피토프’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단백질 조각 1500개를 분석한 결과, 오미크론은 항체는 피해도 2차 방어벽인 티세포는 잘 피하지 못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진은 “티세포가 표적으로 하는 돌기 단백질의 에피토프를 분석한 결과 20%만이 돌연변이를 보였으며, 이마저도 절반 이상을 티세포가 감지했다”며 이는 오미크론이 티세포를 벗어날 가능성을 크게 줄여준다고 밝혔다.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바이러스 껍질 안쪽의 유전물질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고 침투 도구로 쓰였던 돌기 단백질은 세포 표면에 남는다. 이 돌기 단백질 잔해는 세포가 감염됐다는 일종의 신호 깃발 역할을 한다. 티세포의 표면에는 이 깃발을 인식하는 일종의 센서가 있다. 이 센서가 돌기 단백질 잔해를 감지하면 티세포가 그 센서의 신호를 따라 감염된 세포에 달라붙어 세포를 제거한다. 감염된 세포가 죽으면 그 속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도 일망타진된다. 바이러스가 더는 증식하지 못하니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게 된다.
지난해 12월 사전출판 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오미크론은 티세포가 표적으로 삼는 영역에서는 변이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바이러스 구조와 돌기(스파이크) 단백질의 세포 결합 부위(RBD).
백신 접종이나 감염을 통해 형성된 티세포의 표적은 원래 이전 변이 바이러스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 결과들을 보면 새로운 변이에도 잘 작동한다. 깃발에 비유해 설명하면, 여러 변이로 인해 세포 표면의 깃발(돌기 단백질 잔해) 모양이 다소 바뀌더라도 깃발 자체를 인식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아일랜드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의 루크 오닐 교수(생화학)는 과학자미디어 ‘더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항체가 바이러스의 세포 진입을 막는 ‘플랜 A’라면, 티세포는 플랜A 전략이 먹히지 않아 바이러스에 뚫린 경우 그 세포 자체를 죽이는 ‘플랜B’”라고 말했다.
오미크론 변이는 세포 침투를 돕는 ‘퓨린 절단 부위’에도 변이가 일어났다. 타르투대 제공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력에 관여하는 돌기 단백질 내의 ‘퓨린 절단 부위’(furin cleavage site)에 여러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 오미크론의 힘을 약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폴 헌터 이스트앵글리아대 의대 교수는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이 변이가 오미크론의 병원성을 약화시켰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방역의 고삐를 늦출 일은 아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오미크론이 델타에 비해, 특히 백신 접종자들에게 증상이 덜 심각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오미크론을 얌전한 것으로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 오명돈 위원장은 “오미크론은 확산 속도가 너무 빨라서 기존의 방역과 의료 대응 방법으로 감당할 수 없다”며 “엄격한 방역을 유연한 방역으로 전환해 모든 의료 기관이 환자 진료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