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양성자가 충돌하면서 생긴 힉스 입자의 붕괴를 그린 가상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제공
2020을 보는 열 가지 시선 ⑥ 우주와 물질에 관한 물음 얼마나 풀릴까
우주를 누비는 첨단의 관측위성들 덕분에
우리는 전례없는 정밀도로 우주를 바라본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정체 규명은 중요 과제다 기초과학, 특히 물리학은 만물의 기원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우주는 어떻게 언제 만들어졌을까 하는 질문들은 인류가 이 땅에 나면서부터 가졌던 궁금증이며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철학과 과학이 발전했다.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인류의 현재 모범답안은 소립자들에 대한 ‘표준모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계를 이루는 기본 물질과 힘을 설명해주는 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중력을 제외하고 자연계의 세 가지 알려진 힘인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약력), 강한 핵력(강력)을 설명하는 표준적 이론이다. 표준모형의 눈부신 성공, 그러나 표준모형은 다양한 실험과 정밀검증을 거치며 가장 성공적인 이론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을 이뤘지만 적잖은 난점들도 안고 있다. 첫째, 표준모형에서 소립자들이 질량을 지니려면 ‘힉스’(Higgs)라 불리는 입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힉스 입자는 그 존재가 예견된 지 5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검출되지 않고 있다. 둘째, 표준모형으로는 우주의 암흑물질을 설명할 길이 없다. 암흑물질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로서 우주 전체 에너지 밀도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암흑물질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셋째, 표준모형은 극도의 미세조정을 필요로 하는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원리로 볼 때 힉스 입자는 순간적으로 다른 입자들을 만들고 이 입자들이 다시 힉스 입자로 합쳐지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힉스 입자의 질량에 직접 영향을 준다. 실제 힉스 입자의 질량은 양성자 질량의 100배를 크게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론상 힉스 질량에 대한 양자보정은 한없이 커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양성자 질량의 100배에 가까운 힉스 질량을 측정한다면 이 값은 무한히 큰 양자보정 값들을 매우 정밀하게 더하고 빼서 조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물리이론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 척도까지만 생각해 보더라도 이 정밀도는 10³² 정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에서 과연 이런 초정밀 미세조정이 일어나는 것일까? 넷째, 표준모형에는 중력이 빠졌다. 표준모형은 한마디로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에 대한 상대론적 양자이론이다. 거시세계의 중력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잘 설명하고 있지만, 중력을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08년 9월 제네바에 있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는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가동했다. 가동 직후에 사고를 겪어 멈춰서는 우여곡절 끝에 이 가속기는 지난해 11월 재가동에 들어갔다. LHC는 27㎞의 둘레와 양성자 질량의 1만4000배에 달하는 충돌에너지가 말해주듯 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가장 거대한 실험장치다. 향후 물리학의 10년은 ‘LHC의 10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LHC의 기대, 긴장…몇 가지 시나리오 LHC의 실험 결과는 물리학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LHC가 힉스 입자만 발견하고 만다면 무척 실망스러울 것이다. 표준모형을 약 50년 만에 확증하는 것 자체가 큰 성과이겠으나, 표준모형의 여러 난점들은 여전히 미결과제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적어도 LHC가 힉스 입자는 물론,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의 징표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HC가 힉스 입자를 포함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스티븐 호킹은 LHC가 가동할 즈음에 이 마지막 시나리오에 100달러의 내기를 걸었다. 힉스 입자가 없으면 지금까지의 물리학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힉스 입자조차 발견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반세기 동안 헛다리를 짚었다는 뜻이니까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첨단 관측위성들 활약…“극적 발견 나올 것”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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