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위도 밤하늘에 ‘자줏빛 띠’ 흐름
시민들 사진 촬영해 SNS로 퍼져
NASA 등 연구참여, 위성 관측 나서
태양풍이 만든 “또다른 오로라” 규명
시민이 붙인 이름 “스티브”로 명명
시민참여로 ‘중성자별 발견’ 성과도
극지방 주변 고위도가 아닌 낮은 위도 지역의 밤하늘에서도 볼 수 있는 오로라 스티브(Steve)의 모습. 주로 띠 모양으로 나타나는 스티브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 11장의 사진을 합성해서 만들어진 영상이다. 출처: 미국항공우주국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춤추는 밤하늘 빛의 향연’. 극지방에 가까운 고위도 지대의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의 장관을 두고서 하는 흔한 묘사이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색과 빛의 흐름, 그 장관이 빚어내는 자연의 원리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설명했다.
“춤추는 오로라 빛은 지상에서 볼 때 멋진 경관을 연출하며 또한 태양에서 날아오는 에너지와 입자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오로라는 ‘태양풍’이라 불리는 지속적인 흐름과 ‘코로나질량방출’(CME)이라 불리는 거대한 태양분출로 인해, 태양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에너지 입자들이 빚어내는 효과다. 2~3일 동안 지구로 날아온 뒤에, 태양 입자와 자기장은 지구 근처에 이미 포획된 입자들의 방출을 일으키고, 이어 지구 상층 대기에서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거기에 있는 산소와 질소 분자들이 빛의 광자들을 방출한다. 그것이 오로라 빛이다.” (나사 사이트에 실린 ‘오로라’ 설명)
극지방 주변의 고위도 지역에서 관측되는 이 정도의 장관은 아니지만, 신비한 자줏빛 띠 모양의 오로라 흐름이 더 낮은 위도 지역의 밤하늘에서도 관측돼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새로운 오로라’ 현상을 규명한 논문이 실렸다.
"시민과학자들이 상층 대기에서 광학 구조를 발견하다"라는 이색적인 제목도 눈길을 끌지만 논문 저자들의 구성도 흥미롭다. 논문 저자 16명 중에 시민 대표로 참여한 2명은 어린 시절부터 밤하늘에서 이런 자줏빛 띠 모양을 보아온 시민, 페이스북에 이 오로라의 현상을 추적하는 모임을 만든 이였다.
이 논문 연구의 후일담을 보면, 낮은 위도 지역의 색다른 오로라는 먼저 일반 시민들이 카메라로 촬영해 그 사진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공유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이런 밤하늘의 빛 현상에 ‘스티브(Stev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에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연구프로젝트가 구성되어 그 현상의 정체를 밝혔다. 이런 점에서 ‘시민 참여 과학 연구’의 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자줏빛 띠 모양의 흐름으로 사진에 포착된 밤하늘의 ‘스티브’. 출처: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오로라사우르스(Aurorasaurus)’로 명명된 연구 프로젝트에는 미국항공우주국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과학자들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시민과 과학자가 함께 참여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지상 각지에서 밤하늘을 관측하며, 인공위성이 지구 대기의 입자 흐름을 관측하고 측정하면서 색다른 오로라의 정체는 점차 밝혀졌다. 그 과정에 유럽우주국(ESA)의 스웜(SWARM) 위성도 지구 대기 관측에 동원됐다. 위성 관측을 통해 ‘스티브’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의 대기에 초속 5km 속도로 빠르게 하전입자들이 동-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로라 지대 이외의 지역에서도 이온 입자의 흐름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 그 모습이 시각적으로 포착되어 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시민들이 우연히 붙인 ‘스티브(Steve)’라는 이름을 존중해, 과학 연구를 통해 확인된 이 오로라 현상에다 ‘강한 열방출 속도증강(Strong Thermal Emission Velocity Enhancement)’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영문 첫 글자들을 따서 “스티브”(STEVE)라는 정식 이름을 붙였다.
연구진은 낮은 위도의 대기에서 관측되는 ‘스티브’ 오로라들의 관측 지도를 그리면 지구 자기장의 기능과 하전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세계 각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해 더 많은 ‘스티브’ 관측 사례들을 모으는 ‘오로라사우루스’ 프로젝트를 계속 벌여나가기로 했다.
다음은 나사가 기존의 오로라와, 이번에 발견된 ‘스티브’ 오로라의 원리를 풀어서 설명해주는 그림과 글이다.
오로라 현상을 설명해주는 개념도. 왼쪽에서 태양풍에 실려 날아온 하전입자들이 지구자기장, 그리고 상층 대기와 상호작용함으로써 오로라 빛이 만들어진다. 출처: 미국항공우주국
“오로라와 스티브(STEVE)가 생기는 과정은 태양풍으로 지구에 날아오는 대전입자들에서 시작한다. 이 태양풍은 지구의 자기장에 압력을 가한다. 이로 인해 자기장은 태양에서 온 대전입자들을 밤 시간대에 놓인 지구 반대쪽으로 멀리 보낸다. 이제 지구 반대쪽에서는 지구 자기장이 길게 늘어지며 뚜렷하게 꼬리 형상을 띠게 된다. 그 꼬리가 늘어지고 길쭉해질 때,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기장을 가깝게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폭발적인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이른바 ‘자기 재결합’이다. 마치 늘어나던 고무줄이 갑자기 끊어지듯이, 자기장의 자력선들은 빠르게 다시 지구 쪽으로 향한다. 이때에 대전입자들이 딸려온다. 이런 대전입자들이 지구 상층 대기를 마찰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빛이 생성된다. 우리는 그 빛을 오로라로 관측하며, 이제는 스티브(STEVE)로도 관측한다” (그림과 글 출처: 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시민 PC네크워크, 새 중성자별도 발견
한편, 같은 과학저널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는 또다른 시민 과학자들의 참여로 이뤄낸 천문학의 발견 소식이 전해졌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 각자의 개인 컴퓨터를 이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천체나 천문 현상을 찾아내려는, ‘아인슈타인 앳홈(Einstein@home)’이라는 다중참여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연구자들은 전파망원경으로도 쉽게 잡히지 않는 새로운 중성자별(밀리세컨드 펄사, MSP)들을 방대한 관측 데이터에서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듯이'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