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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꿀 점성의 300배…세포핵 안은 ‘끈적’

등록 2018-10-12 16:26수정 2018-10-12 20:53

[오철우 기자의 과학 읽기]
인간세포핵 내 핵소체 거동 첫 측정
끈적한 핵질 속에서 서서히 움직여
“점성은 분자와 소기관 움직임에 영향
질병 땐 세포핵 내 물적 특성 달라져”
살아 있는 인간세포의 세포핵 안(녹색)에서, RNA와 단백질로 구성된 핵소체들(붉은색)이 천천히 움직여 융합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촬영한 영상. 연구진은 핵소체들의 융합 과정을 추적, 측정함으로써 핵소체들을 둘러싼 세포핵 내의 물질 점성을 측정할 수 있었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 제공
살아 있는 인간세포의 세포핵 안(녹색)에서, RNA와 단백질로 구성된 핵소체들(붉은색)이 천천히 움직여 융합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촬영한 영상. 연구진은 핵소체들의 융합 과정을 추적, 측정함으로써 핵소체들을 둘러싼 세포핵 내의 물질 점성을 측정할 수 있었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 제공
생물의 기본단위인 세포 안에는 디엔에이(DNA) 유전물질을 간직한 세포핵이 있다. 그런데 세포핵 안은 바깥의 세포질과 달리 상당히 끈끈한 점성 상태임이 최근 연구에서 다시 확인됐다. 끈끈한 정도가 꿀의 점성보다 300배나 높은 것으로 계산됐다.

미국 뉴욕대학교의 물리학 연구진은 살아 있는 인간세포의 세포핵 안에서 물질 움직임을 관찰하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했으며, 이 기법을 이용해 세포핵 안이 상당히 높은 점성 상태임을 측정해냈다. 이런 생물물리학의 연구결과는 물리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최근 실렸다.

연구자들은 세포핵 안의 물적 특성을 관찰하는 연구를 왜 중요하게 여길까? 뉴욕대학교의 설명 자료를 보면, 세포핵과 그 구성물의 물적 특성은 DNA 정보에서 아르엔에이(RNA) 전사를 거쳐 단백질이 합성되는 과정과 같은 세포의 아주 기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세포핵 내의 점성, 즉 핵질의 끈끈한 정도는 세포핵 안에서 분자나 소기관이 이동하는 속도나 거리에 당장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포핵 내 물적 특성에 생기는 변화는 질병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이를 자연 상태에서 직접 관찰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세포핵의 점성이 상당히 높다는 특성은 이전에도 다른 실험들을 통해 알려져 왔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이전 연구들에서는 세포핵 안에 미세 입자를 집어넣고서 자기장으로 입자를 움직이며 세포핵 안 점성과 물질 특성을 측정하는 방식이 행해졌다. 하지만 외부 입자를 일부러 세포핵에 집어넣다 보니 상당수 세포들이 사멸할 정도로 세포에 영향을 끼치기에, 그렇게 해서 얻은 측정 결과가 살아 있는 세포의 자연 상태에 나타나는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지는 물음으로 남아 있었다.

세포를 이루는 여러 구성물들. 2번은 DNA 유전 물질을 지닌 세포핵이며 1번이 RNA와 단백질로 이뤄진 핵소체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세포를 이루는 여러 구성물들. 2번은 DNA 유전 물질을 지닌 세포핵이며 1번이 RNA와 단백질로 이뤄진 핵소체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연구진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은 세포핵에 외적 손상을 가하지 않으면서 살아 있는 세포의 세포핵 안에서 RNA와 단백질로 이뤄진 소기관인 ‘핵소체’의 움직임을 직접 살피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입자를 집어넣는 대신에 유전자변형 기술을 썼다. 세포핵 안 핵소체들은 붉은색 형광을 띠게 만들고 나머지는 녹색 형광을 띠게 만들었다. 색깔로 구분하니 녹색 세포핵 내에서 붉은색 핵소체들의 움직임을 식별해 추적할 수 있었다. 관찰에는 두 색을 구분하는 고해상도 공초점 현미경이 쓰였다.

살아 있는 세포핵의 관찰 방법을 마련함으로써, 연구진은 인간세포의 세포핵에서 핵소체와 그 표면의 움직임을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됐다. 핵소체의 표면에 일어나는 미세한 요동과 표면장력, 그리고 두 핵소체가 서서히 융합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관찰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체 거동을 계산해, 연구진은 핵소체들이 “액체 방울”과 비슷한 거동 특성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또한 핵소체들을 둘러싼 핵질의 끈끈한 점성 정도를 추산할 수 있었다.

연구진이 밝힌 결과를 보면, 세포핵 안 점성은 평균 3000 파스칼-초(Pa·s: Pascal-second, 액체 재료의 점성 단위)에 달했는데, 미국물리학회(APS)의 매체 <피직스(Physics)>의 보도를 보면, 이런 점성은 세포핵 안이 꿀보다 300배 더 끈끈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핵소체들이 융합하는 과정은 대략 15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났다. 이런 느린 과정은 어떤 의미일까? 다음은 뉴욕대학 설명 자료의 일부 대목이다.

“특히 핵질의 점성, 즉 세포핵 내 용액의 끈끈함 정도는 세포핵 안에서 분자나 소기관이 얼마나 빠르게, 멀리 이동하는지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점성 때문에] 건강한 세포에서 핵소체 방울의 융합 과정은 느리게 진행된다. 연구진은 ‘핵소체들이 DNA를 능동적으로 전사하는 세포소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느린 융합 덕분에 핵소체의 DNA 전사 과정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으며, 그래서 세포의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말한다.”

세포핵의 끈끈한 점성 덕분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전사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세포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설명은, 아직 입증된 것은 아니고 연구진이 유력하게 제시하는 ‘가설’이다. 끈끈한 점성이 건강한 세포핵 안에서 분자나 핵소체들의 움직임 속도를 늦춤으로써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필요한 생물학적 프로세스가 제때에 놓치지 않고 일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이런 설명에 의하면, 암이나 치매 같은 질환에 걸린 인간세포의 세포핵에선 점성 특성이 달라지고 그래서 세포체의 모양이나 크기도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진은 세포핵 내 핵소체의 거동을 자연 상태에서 직접 관찰하는 기법을 개발함으로써, 이런 기법이 여러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논문 초록 (우리말 번역)

핵소체(nucleolus)는 세포핵 내부의 염색질 용액에 담겨 있는 세포막 없는 세포소기관이다. 우리 연구진은 생체 인간세포 안 핵소체들의 표면 동역학과 융합 운동학을 분석함으로써, 핵소체 표면이 미묘하지만 측정 가능한 형태 변동을 나타낸다는 점, 그리고 융합하는 두 핵소체를 잇는 목(neck) 부위의 반경이 시간이 지나면서 r(t) ~t^1/2로 커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는 높은 점도 ~10^3 Pa-s의 외부 유체 내에서 융합하는, 낮은 표면장력 ~10^-6 Nm^-1을 지닌 액체 방울에 해당한다. 우리 연구는 세포와 그 구성물의 물적 특성을 조사하기 위해 자연적 탐침과 그 동역학을 이용하는 비침습적 접근방법을 제시한다.

[Physical Review Letters (2018),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121.148101]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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