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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장내미생물처럼 식물엔 뿌리미생물이 중요”

등록 2018-10-15 11:34수정 2018-10-15 14:00

뿌리 근처 미생물, 뿌리와 상호작용
식물에 해로움 주기도, 이로움 주기도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 찾기 과제
국내 연구진 ‘보디가드 유익균’ 발굴
토마토 풋마름병 막는 병저항성 지녀
생태균형 기반 미생물 농약비료가 목표
식물과 미생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식물과 미생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미생물, 특히 세균(박테리아)을 퇴치해야 하는 병원체 정도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지만, 근래에는 장내 미생물의 생태 균형은 우리 몸 건강의 요건으로 얘기된다. 젖산균 또는 유산균처럼 몸 건강에 이로운 세균을 뜻하는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관심도 높다. 장내뿐 아니라 입안이나 피부를 비롯해 몸 곳곳에서 몸에 병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하는 미생물들에 대한 연구가 한창 이뤄지고 있다.

뿌리에 무수히 난 뿌리털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뿌리에 무수히 난 뿌리털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공생 미생물의 세계가 동물 몸에서만 펼쳐질 리는 없다. 요즘에는 땅에 뿌리를 박고서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의 안과 밖에서 함께 살아가는 미생물의 생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식물 공생 미생물들이 몰려 사는 땅속 뿌리 주변은 ‘식물바이옴(phytobiome)’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특별한 곳이다.

“흔히 식물의 뿌리 근처는 동물의 장내와 유사하다는 개념이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장내에 가장 많은 미생물이 사는 것은 음식, 환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뿌리 근처는 식물에서 분비되는 다양한 유기물이 가장 풍부한 부위입니다. 게다가 식물 뿌리 표면에는 ‘뿌리털’이 매우 발달해 뿌리 표면적의 80%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식물의 분비물과 미생물의 상호작용이 활발한 곳이 뿌리이죠.”(이선우 동아대 교수, 응용생물공학과)

통상 뿌리 근처의 흙 1g에는 대략 수만 종의 미생물들이 수억, 수십억 마리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중엔 식물을 감염시켜 병을 일으키며 괴롭히는 것도 있고 병원균을 물리치거나 필요한 영양소를 모아주어 식물의 생장을 돕는 것들도 있다. 사람한테 장내 미생물군의 생태 균형이 중요하듯이 식물에게도 뿌리 근처 미생물군의 생태 균형은 중요하다.

뿌리 흙 1g에 미생물이 수억 마리

이렇게 보면, 식물 뿌리는 수많은 미생물과 식물이 갖가지 상호작용을 하며 한 몸과 같은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다. 김지현 연세대 교수(시스템생물학과)는 “뿌리는 물과 무기염류를 흡수하고 다당류 같은 유기물을 분비함으로써, 박테리아나 곰팡이는 물론이고 선충, 지렁이 등에게 좋은 서식처를 제공하는 셈”이면서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장내 환경처럼 뿌리 주변 미생물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식물의 생육과 건강에 유리한 쪽으로 조절되도록 할 필요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식물 뿌리 근처는 미생물과 식물 사이에서 이뤄지는 매우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상호작용과 신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분주하다.

이런 뿌리 주변을 연구자들은 ‘근권(rhizosphere)이라고 따로 부릴 정도로 특별한 곳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흙속 뿌리 근처의 수만 종 미생물을 어떻게 식별해낼 수 있을까? 특히나 흙속에 사는 미생물 종들을 실험실에서 배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이런 뿌리 근처 미생물 연구를 위해서 연구자들인 주로 쓰는 방법은 이른바 ‘메타게놈’ 분석 기법이다. 다행히 유전체(게놈)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흙 시료에 담긴 게놈 전체의 염기서열을 몽땅 분석할 수 있는 이른바 ‘메타게놈’ 분석기법이 발전하면서 뿌리 주변 미생물들의 종 분포와 복잡한 연결망에 관한 연구도 가능해지고 있다.

메타게놈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식물 뿌리 주변에는 식물 종마다 다른 독특한 미생물 군들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고, 식물 뿌리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갖가지 관계의 공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풋마름병에 강한 토마토 품종(왼쪽)과 이 병에 쉽게 걸리는 토마토 품종의 뿌리에 사는 미생물 종들이 서로 다름을 보여주는 그림. 식물 뿌리 근처에는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산다. 그중에는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도 있지만 병을 이겨내도록 도움을 주는 미생물도 있다. 실제로 풋마름병에 저항성을 지닌 토마토 품종의 뿌리에 사는 특정 박테리아 종이 식물에 이 병의 저항성을 높여주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 최근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서울여대 김이린 제공
풋마름병에 강한 토마토 품종(왼쪽)과 이 병에 쉽게 걸리는 토마토 품종의 뿌리에 사는 미생물 종들이 서로 다름을 보여주는 그림. 식물 뿌리 근처에는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산다. 그중에는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도 있지만 병을 이겨내도록 도움을 주는 미생물도 있다. 실제로 풋마름병에 저항성을 지닌 토마토 품종의 뿌리에 사는 특정 박테리아 종이 식물에 이 병의 저항성을 높여주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 최근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서울여대 김이린 제공
‘보디가드 미생물’ 식물질병 막아주다

최근에는 어떤 질병을 특히나 잘 견뎌내는 식물 품종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는 자신의 유전자뿐 아니라 뿌리 근처에 사는 미생물의 도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오랜 실험을 거쳐 확인됐다. 김지현 연세대 교수와 이선우 동아대 교수의 공동연구진은 병원성 미생물에 감염돼 걸리는 풋마름병에 강한 토마토 품종의 뿌리 주변에서 이 병에 저항성을 지닌 박테리아 종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7년만의 성과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2011년부터 풋마름병에 강한 토마토 품종(‘하와이 7996’)과 이 병에 잘 걸리는 토마토 품종(‘머니메이커’)을 기르며 그 뿌리 근처 흙속의 무수한 박테리아들을 비교, 분석했다. 이를 통해 풋마름병의 발생과 진행을 억제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하는 박테리아 종을 찾고자 했다.

연구진은 흙 시료에 담긴 미생물 전체의 유전체(게놈)를 분석하는 ‘메타게놈’ 기법을 써서, 병에 강한 품종의 뿌리 근처에 플라보박테리아과를 비롯해 특정 미생물들이 훨씬 많이 서식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어 수백 종의 후보 미생물들 가운데 병저항성을 갖춘 특정 종을 독자적인 게놈 분석 방법으로 찾아내 실험실에서 분리,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일종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이 박테리아 종에다 티아르엠1(TRM1, Tomato Rhizosphere Microbe 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진은 여러 실험 조건들에서 토마토의 뿌리 근처에
풋마름병을 잘 견디는 품종(하와이 7996)과 이 병에 잘 감염되는 품종(머니메이커)이 자란 토양을 서로 바꿔 심었을 때 하와이 7996 품종의 토양에서 풋마름병 발병이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른쪽 그래프는 각 경우에 나타난 질병 발생 지수를 보여준다. 김지현, 이선우 연구진 제공
풋마름병을 잘 견디는 품종(하와이 7996)과 이 병에 잘 감염되는 품종(머니메이커)이 자란 토양을 서로 바꿔 심었을 때 하와이 7996 품종의 토양에서 풋마름병 발병이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른쪽 그래프는 각 경우에 나타난 질병 발생 지수를 보여준다. 김지현, 이선우 연구진 제공
병저항성 미생물과 병원성 미생물을 접종해 그 군집의 변화를 관찰해, 이번에 찾아낸 미생물 종이 실제로 풋마름병을 억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논문에서 보고했다.

김지현 교수는 “식물의 병저항성에는 식물 유전자뿐 아니라 공생 미생물도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실증해내고 그 미생물 종을 실제로 찾아내 배양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의미”라고 말했다. 식물의 병저항성은 그동안 주로 식물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병원균의 침입을 탐지하고 각종 저항성 물질을 분비해 병원균을 물리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결과는 식물의 병저항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던져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식물 프로바이오틱스’를 찾아

연구자들은 이런 연구가 새로운 개념의 미생물 농약이나 비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선우 교수는 “인체의 건강한 장내 미생물들을 이식해 질환 치료에 쓰는 방법이 도입되고 있듯이, 식물과 주변의 환경과 생태에 어울리는 유용균들을 찾아내어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박테리아인 일종의 ‘식물 프로바이오틱스’를 찾자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식물들, 다양한 미생물들, 그리고 다양한 환경이 어우러지는 뿌리 근처 생태계가 복잡한 만큼, 이런 상호작용의 생태계에서 유익균을 찾는다 해도,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그 유익균의 역할이 어떠할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흙, 공기, 미생물, 곤충, 그리고 다른 경쟁자 식물들까지, 식물 생장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너무 많은데, 똘똘하고 야무진 유익균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김지현 교수는 네트워크 이론을 빗대어 ‘허브’가 되는 미생물, 동맹을 이룰 수 있는 미생물들을 찾는 게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식물 근권은 복잡계의 한 전형이므로 여기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미생물이나 핵심 종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미생물 군집 데이터나 메타게놈 데이터에서 이런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네트워크 분석 기술이 종종 동원됩니다. 유익균의 경우에도 이들을 유지하고 보호해줄 일종의 '동맹 미생물'을 찾아 연합군을 만들어준다면 좀 더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미생물 농약 또는 비료가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식물과 미생물을 따로 떼어내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숙주와 마이크로바이옴을 하나의 연합체 또는 공동체(holobiont)로 이해하는 시선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으며, 식물과 미생물을 한 몸처럼 인식하는 ‘식물바이옴(phytobiome)’이라는 개념도 앞으로 이 분야의 연구개발이 진전하면서 더 자주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풋마름병 논문 초록 (우리말 번역)

토마토 품종 '하와이 7996'은 토양 매개 병원균인 랄스토니아 솔라나세아룸(Ralstonia solanacearum)에 저항성을 가지지만 다른 품종 '머니메이커'는 병원균에 쉽게 감염된다. 식물과 연계된 미생물들이 병저항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우리 연구진은 야외재배실험(mesocosm)을 통해 두 품종의 뿌리 근처에 사는 모든 미생물들(microbiome,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조는 두 품종 간에 차이가 있었다. 내성 식물에서 얻은 뿌리 근처 마이크로바이옴(rhizosphere microbiota)을 이식했더니 병에 쉽게 걸리는 품종의 질병 증상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항성 식물과 감수성 식물의 뿌리 근처 시료에 대한 메타게놈 비교 분석을 통해, 감수성 식물의 뿌리 근처에 비해 저항성 식물의 뿌리 근처에서 훨씬 더 많이 존재하는 플레이보박테리움 게놈을 식별해내고 조립할 수 있었다. 우리는 TRM1이라고 명명한 플레이보박테리움 종을 배양해냈으며, 화분 실험을 통해 그것이 감수성 식물 내에서 풋마름병의 증세를 억제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우리의 연구결과는 미생물 병원체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데 토착 미생물이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내었으며, 우리의 연구방법은 식물 질병을 개선하는 '프로바이오틱스'의 개발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Nature Biotechnology (2018), https://www.nature.com/articles/nbt.4232]

*이 글은 <한겨레> 10월22일치에 보도된 ‘보디가드 박테리아, 식물 질병 막아주다’ 기사에 덧붙여 좀 더 자세히 풀어 쓴 것입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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