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 과학기술]
김정은 시대 들어 과학정책 강화
국제공동연구·논문 적지만 증가세
물리·수학·재료과학 등이 중심
지난해 해외출판논문 100편 근접
과학자거리는 평양 새 랜드마크로
“남북 ‘윈윈’ 교류 위해 먼저 알아야”
김정은 시대 들어 과학정책 강화
국제공동연구·논문 적지만 증가세
물리·수학·재료과학 등이 중심
지난해 해외출판논문 100편 근접
과학자거리는 평양 새 랜드마크로
“남북 ‘윈윈’ 교류 위해 먼저 알아야”
[이 글은 5월21일치 <한겨레> 미래&과학 섹션 지면에 실린 같은 제목의 기사를원고분량 제한이 없는 온라인용으로 풀어쓴 기사입니다]
평양의 과학기술전당(사진)은 미래과학자거리와 더불어 ‘과학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평양의 주요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북한 과학기술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엔케이테크(www.nktech.net)’ 사업단장인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정책기획본부장은 “북한 과학기술에 대해선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으니 수준이 대단할 것이라는 시각과 연구개발 투자를 못해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대조적인 시각이 있다”면서 “둘 다 맞기도 하지만 또한 틀리기도 하다”고 말한다. 군사 기술만이 발전했으리라고 생각했다가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알면 뜻밖이라 생각하기 쉽고, 전반적으로 폐쇄적이고 뒤쳐진 수준으로 여기다가도 일부 분야는 상당한 수준에 있음을 알고서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 과학기술의 동향을 살펴온 몇몇 전문가들을 통해 북한 과학기술에 관해 우리가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것들을 간추려본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 더욱 강화
북한 사회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은 2011년 말 이후 김정은 시대에 실질적으로 강화됐다.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의 강호제 소장은 2016년 제7차 당대회가 특히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사업총화보고를 하면서 과학기술을 군사와 사상 바로 뒤쪽에, 경제보다 앞서서 다룰 정도로 강조했다”며 이후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은 사실 김정일 시대에 시작돼 그 기본 정책들이 마련되었는데, 이후 김정은 시대에 실행되고 강조되면서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평양 시내 풍경도 ‘과학도시’의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평양 대동강 변에 독특한 원자 모형을 본따 건설된 ‘과학기술전당’이나 평양 시내에 고층 건물들로 이어진 ‘미래과학자거리’, 그리고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등은 과학도시의 면모를 드러내려는 평양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다.
최현규 본부장은 국제학술지에 발표되는 논문의 양과 질로 보면 북한과 남한은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지만 ”북한에서 발사체 기술이나 핵융합, 레이저 기술, 컴퓨터 수치제어(CNC) 공작기계 기술 등 분야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북한 과학기술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는 북한식의 특징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중 하나가 북한 연구자들에게 강조되는 ‘현지연구’와 ‘과학자기술자 돌격대’다.
강호제 소장은 “사업장에 어떤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과학자, 기술자들이 현지에 머물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데 지금도 남아 있는 오랜 전통”이라며, ‘문제해결형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보면 “차별적이고 경쟁력 있는 시스템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을 말했다. 2007년 북한 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은 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는 이공계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여학생이 늘 현지연구를 위해 공장 실험실에서 살다시피하는 아버지와 겪는 갈등과 화해를 다루었는데, 영화의 소재가 된 실화의 주인공은 국가과학원 소속 과학자였다. 인기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현지연구와 밀착한 과학자-기술자의 이미지는 북한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식’을 강조하며 북한의 자원과 인력을 이용하자는 ‘주체의 과학기술’은 북한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석탄화학’ 또는 ‘탄소하나(C1) 화학’이 그 사례다. 최현규 본부장은 “석유자원을 얻기 힘든 북한에선 석탄을 이용한 화학을 발전시켰는데, 이 때문에 남한에선 석유화학이 발전했지만 북한에선 석탄화학, 탄소하나화학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탄소하나 화학은 탄소가 하나인 일산화탄소나 메탄올 등으로부터 분자량을 높여가면서 필요한 원료를 만들어낸다. 북한 과학자들[은] 석탄의 지하가스화나 제철소 부생가스로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얻고, 이를 토대로 공업원료를 합성하는 연구에 매달려[왔다]. 최근에는 천연가스 메탄올을 이용하는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한겨레> 칼럼, 이춘근, 2004.11.30) 석탄화학을 통해 1960년대 이래 큰 성공을 이룬 비날론 화학공장은 지금도 북한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상징 중 하나로 통한다.
북한 평양의 미래과학자거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국제 협력연구가 드문 북한 과학기술에서도 최근 몇 년 새 국제 협력연구와 해외 논문 출판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가 최근 세계 논문 인용색인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WoS)’의 자료를 바탕으로 전한 보도를 보면, 10~20편에 불과하던 북한의 해외 출판 논문들은 2015년 무렵부터 늘기 시작해 지난해엔 100편 가까운 수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이 수치는 학술대회 발표 논문 등이 빠져 부정확하지만, 북한 과학기술의 국제 협력연구와 발표가 늘고 있는 추세는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집계에는 빠진 물리학술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arXiv.org)나 생물학술 데이터베이스 바이오카이브(bioRxiv.org)에서도 극히 소수이지만 북한 논문이 검색된다).
1988~2016년 국제 학술지에 실린 북한 과학기술 논문 318편을 분석해 지난해에 발표한 허선 한림대 의대 교수(기생충학교실,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부회장) 등의 논문을 보면, 북한 연구자들이 참여한 국제 학술지 논문들은 주로 물리학(66), 수학(61), 재료과학(42), 화학(31) 등 분야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허선 교수는 “한국의 해외 출판이 한해 5만 건 넘는 것과 비교하면 북한의 해외 출판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폐쇄된 사회라 알려진 북한에서도 해외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면서 “극히 소수의 슈퍼엘리트 집단은 인터넷을 비교적 자유롭게 이용해 해외 학술 정보를 접하며 해외 출판과 교류에도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현규 본부장은 “요즘에는 과학자들의 기초과학 연구나 해외 논문 발표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다”면서 “이런 소식은 북한 북한 매체들에도 보도되기에 레이저 분야의 한 과학자는 신문과 잡지 등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국제 교류는 닫혀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해외 활동에 상대적으로 활발하다는 것이다.
북한 연구자들의 협력연구에서는 중국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독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비중은 줄고 있다. <네이처>는 극히 적지만 북한과 유럽의 협력연구도 일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를 보면 화산 폭발 우려를 낳는 백두산에 대한 연구, 가뭄 저항성 토마토 개발을 위한 유전자변형 연구, 태양전지 연구 등이 이뤄지고 있다. 남북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해온 애런 월시 영국 런던임페리얼칼리지 교수는 <네이처> 뉴스에서“태양전지 연구자는 한국에도 많기에 앞으로 남북 연구자 간의 협력연구가 이 분야에서 활발해질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구기관으로는 대표적으로 국가과학원(1951년 설립)이 있으며 주요 대학으로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이 손꼽힌다. 북한 학술지들은 국내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엔케이테크 누리집에서는 북한 학술지로 <과학원보>,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등 24종을 유료로 볼 수 있다. <김책공대 학보> 등 많은 학술지들이 아직 비공개로 분류되어 있지만 공개 학술지는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과학교육과 관련해선, 최 본부장은 “북한 과학교육은 모든 이들에게 과학기술의 기본 지식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라 수학, 과학 수업이 남한에 비해 훨씬 많다”면서도 “수재 교육도 강조해 우리의 특목고에 해당하는 학교를 시도별로 ‘제1중학교’라는 이름으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자료그림
다니던 신문사를 나와 북한정보기술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강진규 전직 기자는 말레이사이에 세워진 북한 정보기술 기업을 통해 북한 과학기술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한다. 2016년 그는 북한 기업의 누리집을 보다가 주식거래 사이트나 비트코인 거래정보 서비스를 개발해준다는 홍보문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북한도 다양한 소프트웨어나 모바일 앱을 개발한다고는 들었지만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우리와 별다르지 않게 정보기술을 연구개발 한다는 걸 알고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1961년 북한 최초의 컴퓨터로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를 개발한 이래 북한은 지속적으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관심과 투자를 쏟아왔다. 강 전 기자는 “이미 김정일 시대부터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에 매진해 강점을 지니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면서 “일례로, 한 인도 기업이 주관하고 수천 명이 참여하는 국제코딩대회 ‘코드쉐프’의 사이트에 실린 지난 1월 경기 결과를 보면 1, 2위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대의 학생들”이라며 북한의 정보기술이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보았다.
북한 과학기술 전문 뉴스 사이트를 준비 중인 그는 북한 뉴스에선 인공지능, 나노기술 같은 첨단 분야도 곧잘 다뤄진다고 전했다. 북한의 바둑 프로그램 ‘은별’에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고 음성과 문자 인식, 다국어번역 등에 인공신경망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는 “김책공대에서 개발된 다국어인식 프로그램 ‘신동’은 문자 인식률이 99.7%나 된다는 소식도 보도된 바 있다”고 말했다.
나노기술 분야에도 최근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정부 조직으로 국가나노기술국이 창설됐으며 해마다 나노기술 전시회가 열린다. 강 전 기자는 “예컨대 3차원 프린터를 이용한 의료기술, 나노기술을 이용한 농업과학 연구처럼 실생활의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도 종종 소개된다”고 말했다.
시엔시(CNC)는 북한에서 첨단 기술혁신을 상징하는 용어다. 강호제 소장은 “본래 이 말은 컴퓨터로 제어해 정밀하게 기계를 만드는 기계(공작기계)의 핵심 기술을 가리키는데 북한은 시엔시 공작기계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올라 있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며 “시엔시는 혁신기술, 기술혁신을 상징하는 뜻으로도 널리 쓰인다”고 말했다. 우리말 번역이나 한글 표기를 강조하는 북한에서 요즘 시엔시는 번역어나 한글 표기 없이 영문 ‘CNC’를 그대로 쓸 정도로 북한 내에서 각별한 의미로 쓰이는 용어가 됐다.
남북 ‘윈윈’ 교류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만족할 만한 과학기술 교류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현규 본부장은 “이전 남북 협력에선 북한에 대한 정보가 원천적으로 부족하고 사전 준비도 충분하지 못해 ‘퍼주기’ 논란이 빚어졌다”면서 “이제는 북한이 교류를 통해 활용하길 바라는 인적자원, 광물자원, 생물자원의 강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서로 ‘윈윈’ 하는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진규 전 기자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과학기술을 전수한다고 접근하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며 “연구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연구를 하는 동등한 입장에서 교류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호제 소장은 “북한이 잘 할 수 있는 가성비 높고, 경쟁력 있는 기술과 인력을 가져와 함께 활용하는 교류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과학기술에 대해 먼저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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