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해상풍력발전시설. 한겨레 자료사진(허호준 기자, 2017)
5월 초, 제주도에 사람들이 전기자동차를 보러 모였다. 제주 중문단지 국제컨벤션센터를 지나던 몇몇 관광객들도 전기차 엑스포라는 문구를 보고 엑스포장을 기웃거렸다. 컨벤션센터 로비에는 외제 전기차들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운전석에 타보기도 했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따로 마련된 1층 전시관에는 국내 기업들이 각자의 전기차 기술을 선보였다.
스마트그리드와 연계할 수 있는 기술을 홍보하는 중소기업도 있었으며, 전기차를 제주 관광과 연결해서 홍보하는 대기업도 있었다. 삼성 홍보 담당자는 예전에는 전기차를 한번 충전해서 제주도를 한 바퀴 정도만 돌 수 있었지만(약 190km) 이제는 300km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방문객들에게 설명해주었다. 현대자동차 부스는 큰 화면에 전기차 광고를 상영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강산을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도록”, 가수 첸백시가 출연한 광고의 캐치프레이즈였다.[1]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왜 하필 제주도에서 열렸을까? 2018 전기차 엑스포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두 가지 이유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제주도가 ‘카본-프리 아일랜드(Carbon-Free Island) 2030’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계획은 2030년까지 제주도에 재생에너지,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인프라를 도입하여 실질적으로 제주도의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다.
2018년 제주 전기차 엑스포 로비 모습(필자 촬영, 2018년 5월 3일)
따라서 전기차 엑스포를 제주도에서 개최하는 데엔 제주 지방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들어갔다. 또 다른 이유는 제주도 지역 단체들이 전기차 도입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제주도 남쪽에 있는 섬인 가파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사모)과 제주 스마트그리드 기업협회가 특히 엑스포를 유치하는 데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제주도를 “탄소 없는 섬”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단지 정부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엑스포 홈페이지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2]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주의 자연환경과 특별자치도라는 행정적 독립성은 재생가능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유치하는 데 매력적인 요소다. 제주도는 바람의 질이 좋기로 알려져서 풍력발전에도 적합하고, 전기차를 한번 충전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점에서 시범 운영을 하기도 좋다는 것이다. 또, 특별자치도라는 특성을 이용해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 도전적인 인프라나 정책을 시도해보기 쉬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다양한 미래를 찾고 있다. 4.3과 강정마을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평화를 찾기도 하고, 더욱 청정한 삶의 모습을 찾기도 하며, 가수 이효리처럼 제주 자연과 하나가 된 행복한 삶을 찾기도 한다. 전기차를 타는 삶도 제주도에서 그리는 여러 가지 미래 중 하나이다.
바람으로 달리는 자동차, 기대와 우려
전기차는 훌륭한 기술 해결책(technological fix)이다. 모든 자동차가 깨끗한 전기로만 움직이고, 화석연료를 안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석유를 소비하는 자동차를 모두 전기차로 대체한다면 온실가스 배출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고, 기후변화 문제도 많은 부분 해결될 지도 모른다. “바람으로 달리는 자동차” 라는 문구가 정책 결정자, 전기차 이해당사자, 그리고 풍력발전 이해당사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이기도 하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도 전기차가 갈 수 있는데, 그 전기마저 깨끗한 풍력에너지로 공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기를 깨끗하게 생산하고 그 전기로 자동차가 달린다 ?적어도 화려한 전기차들이 전시되어 있는 엑스포장에서는 모든 일이 순탄할 것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 고민들이 있을까?
우선, 모든 자동차가 전기로 달리게 된다면 그만큼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평소보다 여름철이 에어컨 때문에 전력 수요가 많듯이, 가솔린 자동차가 아닌 전기차들이 도로 위를 다니려면 그것들을 충전해줄 전력도 그만큼 늘어야 한다. 전력거래소 제주 지사는, 2030년까지 제주 지역의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로 대체될 경우 전기차가 연간 총 전력 소비량의 34%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였다.[3]
이와 관련해 전기차 엑스포장에서 열린 컨퍼런스 중 하나인 풍력발전포럼에서는 풍력에너지 개발에 대한 의지와 현실적 우려가 동시에 드러났다. 풍력발전 사업자들은 앞으로 재생에너지가 양적으로 늘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기에,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제주에너지공사는 풍력발전에서 나온 이익을 도민들과 최대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에 대하여 주로 이야기했다. 한편, 전력거래소에서는 전력 계통 안으로 풍력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들여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풍력발전량을 늘리기만 한다면 전력이 과잉 공급될 수 있고, 풍력의 전력공급이 불안정할 때에는 정전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중심잡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풍력발전 컨퍼런스에서 우려했던 현실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람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제주도에서 달리는 전기자동차는 상당부분 풍력에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다. 제주도 전력원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기준 13.18%로, 육지보다는 훨씬 높다[4]. 육지에서 공급되는 원자력에너지와 석유를 이용한 에너지가 아직까지 제주도 전력 발전의 약 80% 가량을 점유하고 있지만, 풍력을 포함한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030년까지 급격하게 늘어날 전망이다(
아래 표, [4]).
이 글에서 우려하는 것은 전기차가 바람에너지로 잘 달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제주 카본프리 아일랜드 정책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풍력발전량은 현재의 3~4배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전기차를 풍력으로 움직이기 위해 필요할 에너지 설비들이 들어서고 난 후에 제주도의 모습이다.
제주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2029년까지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전력거래소 제주지사, 2017)
‘누군가’가 아닌 ‘어딘가’가 감수해야 하는 대가
재생에너지로만 전기를 생산한다는 의미는, 화력발전소를 풍력 터빈과 태양광 패널로 단순히 갈아 끼우는 문제를 넘어선다. 수십, 수백 개의 풍력 터빈들이 차지할 공간,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갈 인근 주민들의 삶도 그 문제에 포함된다. 이 문제들은 종종 간과된다.
“와, 풍차다! 친구 따라 제주도 촬영 갔을 때, 전기차라는 걸 처음 타봤어요.”
현대자동차가 홍보 부스에서 틀어놓은 여러 가지 광고 중 귀를 쫑긋하게 만든 광고가 하나 있었다. 광고에서는 제주도를 방문한 두 친구가 주인공이었으며, 그들은 전기차를 제주도에 와서 처음으로 경험해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바라본 제주도의 풍경엔 유채꽃, 검은 돌담, 푸른 바다뿐만 아니라 “풍차”도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바라본 풍차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력발전기이다. 적어도 그 두 사람이 바라보기에 풍력발전기는 전통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제주도 풍경의 일부로 흡수되어, 그렇게 보기 흉하지 않은 낭만적인 풍차들로 보였던 모양이다.[5]
제주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모습(필자 촬영, 2017년 6월 27일)
그러나 풍력발전기는 풍차라기보다는 거대한 산업시설에 가깝다.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줄지 몰라도 발전기에서 비롯되는 소음과 빛 공해 또한 상당하다. 실제로 대형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 서 보면 비행기가 멀리서 지나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며, 풍력발전기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그것을 “도깨비불”로 표현하기도 한다.[6] 광고에서는 풍력발전기가 한두 대씩 설치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많은 풍력발전단지에는 발전기가 10기가량 이상 설치되어 있다. 사람에 따라 아름다운 여행지보다는 산업단지의 느낌을 더 강하게 받기도 한다.
과도한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들이 사람들과 땅이 맺는 관계와 기억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점도 자주 간과되는 문제이다. 보통 자연환경은 ‘누군가’와 엮어서 이야기될 때 힘을 얻곤 한다. 제주의 곶자왈과 오름, 제주 앞바다와 같은 비인간들(non-humans) 또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거나 누군가가 찾는 곳이기에 그나마 공터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2030년 탄소제로라는 미래를 이루기 위해 제주도의 모든 자연환경은 그마저도 의미를 잃고, 새롭게 수치화되고 있다. 제주도 전기차 엑스포에서 발표한 한 관계자는 제주도의 모든 오름에 “등급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 오름을 크기 별로 등급화해서, 등급이 높은 오름에는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등급 컷을 통과하지 못한 오름은 배제하자는 것이 관계자의 요지였다. 그는 제주 오름이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에 용이한 자연환경인데, 경관상의 문제로 비도시지역 오름에서 1.2km 이상 떨어진 곳에만 설치할 수 있다는 조례 때문에[7] 개발에 제약이 많으며, 그 1.2km마저도 1km로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의 여러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제주도에 있는 사람들과 자연 공간들이 맺는 관계에 대한 고려는 적어 보였다.
제주도 전체는 여러 가지 미래들을 위한 ‘연구 대상’이 되어 있다. 풍력발전기뿐만 아니라 전기차를 쉽게 타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스마트그리드를 시험해서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는 한 마을, 한 집단이 아닌 섬 전체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정책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여러 에너지 인프라 실험들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만 참거나, 누군가만 설득하고 달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어딘가가 통째로 변하는 중이다.
제주도 환경과 청정에너지 인프라, 공생할 수 있을까
제주도는 “풍차”와 풍력발전기 사이에서 은근한 줄다리기 중이다. 도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어느 정도 수용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제주의 바람을 최대한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고 있다. 2030년까지 제주도를 탄소 없는 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제주도의 거의 모든 땅을 풍력발전기나 태양광 패널에게 양보해야 한다.[8] 재생에너지 인프라는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 것이지만, 기존의 인프라를 기대만큼 단기간에 대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딜레마를 만든다.
지속가능성과 청정에너지라는 문구들에 의해 정당화되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시설들은 무엇을 가리고 있는가? 미래 인류가 지금처럼 전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전기차와 풍력발전기는 꼭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인프라 시설들은 기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기존 인프라에 투입될 수는 없다. 풍력 터빈이나 전기차가 심각하게 고장은 나지 않는지, 풍력과 태양광으로의 이전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단계가 필요한지 실제로 확인하고 나서야 안전하게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생각이다.
물론 제주도는 무인도가 아니기에, 지역 주민들을 고려한 제도적 고민들이 없지는 않았다. 주민들의 불만을 모두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주민수용성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주민들을 설득한 후에야 풍력발전기를 세울 수 있다. 발전사업자는 제주도의 바람으로 발전한 전기의 수익을 어느 정도 도민들에게 환원해야한다는 제주도 법률도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제주도 특유의 자연환경이 에너지 인프라로 대체된 후에 대한 고민은 적다. 탄소배출 저감,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은 문구들이 설득력을 얻는 대신, 제주의 곶자왈, 오름, 그리고 앞바다는 비교적 가치를 잃은 것이다.
참고 자료
[1] 현대자동차그룹, “[HMG TV] 엑소 첸백시와 코나 일렉트릭이 함께한 아름다운 강산 프로젝트,”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d8timgcnHA.
[2] 제5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공식홈페이지. www.ievexpo.org.
[3] 전력거래소 제주지사. (2016). 제주지역 EV 및 풍력설비 확대 정책에 따른 계통영향 연구(최종보고서), p. 98.
[4] 전력거래소 제주지사. (2017). 2017년 연간 제주지역 전력계통 운영실적.
[5] 현대자동차그룹. “[HMG TV]제주에선 이미 대세! 아이오닉 트라이브,”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As796Jr9D4&t=0s&index=3&list=FL6uEE-KpHsUV6bOhdDQ4Kzw.
[6] 김은성, 정지범, 서용석. (2017). “한국의 전통신앙과 에너지 전환: 풍수, 샤머니즘 그리고 풍력발전기에 대한 주민인식”. 한국과학기술학회 학술대회, p. 146-172.
[7] 노컷뉴스. “제주 2월부터 오름 주변 경관심의 강화.” 2016.01.22. 기사.
[8] 제주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인터뷰(익명). 2017년 12월 21일.
조승희/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seungkey@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