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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동무는 무슨 연구를 하십네까?”

등록 2018-12-03 06:01수정 2018-12-03 17:13

[8인의 여덟갈래 정책 산책]
남북 과학기술 협력 어떻게 할까
남북공동 현지철도조사단을 태운 열차가 11월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 철도 통문을 통과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남북공동 현지철도조사단을 태운 열차가 11월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 철도 통문을 통과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2019년의 한여름, 남한과 북한의 과학기술자들이 평양에서 만났다. 두 정상이 ‘평양 선언’에서 ‘다양한 분야 교류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성사된 만남이었다. 대전역에 집합한 대덕연구단지의 과학기술자들은 비행기가 가는 ‘서해 직항로’가 아니라 2018년 12월에 갓 연결된 경의선 철도를 타고 북한으로 향했다. 평양 시내에 도착해서는 새로 만들어진 ‘미래 과학자 거리’와 ‘여명 거리’를 신기한 눈으로 둘러본 뒤 학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 북한 연구의 중심지 ‘과학기술전당’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이들은 생전 처음으로 북한에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마주앉은 남한 과학자에게, 한 북한 과학자가 어렵사리 말을 걸어온다. “동무는 무슨 연구를 하십네까?”

남한과 북한의 과학기술 교류협력은 10년 넘게 미뤄온 상상 속의 미래다. 2007년 참여정부는 남북과학기술협력센터를 수립해 양국의 연구자들이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려 했으나 이후 국내외 정치환경 악화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재일·재미 동포들이 다리를 놓아 이뤄진 간헐적인 만남과 짧은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제외한다면 남과 북의 과학기술자들이 공동으로 수행한 장기 연구는 아직 없다.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남북과학기술협력은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일지 모른다.[1] 하지만 전인미답의 길은 때로는 자유롭고 담대한 상상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카이스트와 김책공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평양의과대학, 기초과학연구원과 국가과학원이 만나면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분명 낯설고 어색할 만남에 대한 상상은 과학기술과 미래와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보는 드문 기회다. 길게는 분단 70년 동안, 짧게는 노무현 정부 이후 10여년 동안 만날 수 없었던 과학기술자들은 국경이 없다는 과학을 무대로 소통할 수 있을까? ‘남북공동연구’는 ‘남북합동예술공연’이나 ‘남북경제협력’과 같은 다른 협동의 방식과 어떻게 다를까? 남과 북의 과학기술연구는 한반도 평화 시대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까?

남쪽 카이스트와 북쪽 김책공대의 학교 마크. 두 대학의 과학기술자들이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남쪽 카이스트와 북쪽 김책공대의 학교 마크. 두 대학의 과학기술자들이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과학기술전당에서 처음 만난 남과 북의 연구자들은 서로 무리없이 소통할 수 있을까? 같은 말을 쓴다지만 분단 이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과학기술 분야의 학술 용어에는 서로 판이하게 다른 단어가 많다. 남한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교수라 하더라도 ‘완전저항(임피던스)’이나 ‘이극소자(다이오드)’라는 북한식 표현은 생소하고 알쏭달쏭하다. 학생 입장에서 단어 차이는 더 혼돈스럽다. 남북하나재단의 2015년 연구에 따르면 탈북 학생들은 학교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학교 수업 따라가기'(44.2%)와 ‘언어·문화 적응'(14.3%)을 꼽았다. 이는 선생님들과의 관계(2.6%)나 친구관계(3.9%)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낯선 언어로 과학기술을 공부하는 것은 낯선 친구와 공부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일 수 있다.[2]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은 과학 용어를 표준화하는 일이 전기주파수와 철궤를 표준화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어떤 경제 협력을 위해서든 전기와 물류가 막힘없이 흐를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과학기술 전문가 사이의 효율적인 소통과 협력을 위해서도 표준화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지금부터 미리미리 남북과학기술용어사전을 편찬하고 개정하자는 제안은 합리적이다.[3]

어느 나라의 말을 표준어로 선택해야 할까? 언뜻 생각하면 과학기술이 더 발달한 남한의 용어가 더 정교하고 정확할 것 같지만, 북한 단어에는 예상 외로 직관적이고 명료한 부분이 있다. ‘가시광선’을 북한식으로 ‘보임광선’이라고 하면 사람 눈에 ‘보이는’ 영역의 빛이라는 고유 개념이 더 직관적으로 인식된다. 남한에서 보통 에이에프엠(Atomic Force Microscope, AFM)이라고 줄여 부르는 장비를 북한에서는 ‘원자힘현미경’이라고 번역해서 부르는데, 이렇게 하면 약자를 모르는 사람도 이 기기가 “원자힘을 사용하는 현미경”이겠거니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영어가 특히 많은 정보통신기술 용어에서 북한 용어의 직관성은 두드러진다. ‘라우터’를 ‘경로기’라 하거나 ‘클라이언트’를 ‘의뢰기’라고 부르면 라우트(route, 경로)와 클라이언트(client, 의뢰인)라는 영어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도 그 단어가 쓰인 최소한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몇몇 북한 단어는 사전 지식이 부족한 대중에게도 친근하게 여겨질 수 있다.

남과 북의 과학용어를 비교해보는 일은 전문가들 사이의 효율적인 소통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 용어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써왔던 용어가 과학기술에 이미 익숙한 소수 전문가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지, 그래서 일반 시민에게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만약 과학기술을 한반도 평화 시대를 살아갈 모든 시민들의 필수 교양으로 생각한다면, 복잡한 한자어나 영어 약자 대신 쉽고 직관적인 단어를 표준어로 선택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용어에 대한 고찰은 통일된 남과 북에서 누가 과학기술을 배우고 익힐 것인지 생각해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남과 북이 같은 용어로 소통하게 된 다음에는 무엇을 연구해야 할까? 어떤 것을 하든, 남과 북이 만나야만 할 수 있고, 함께 했을 때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구라면 교류협력의 의의가 도드라질 것이다. 지난 7월 통일과학기술연구포럼이 제안한 ‘백두산 공동연구’는 그런 예시가 될 수 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남북이 함께 천문과 지질, 생태 연구 종합 기지를 구축”해서 “천혜의 입지를 가장 적합하게 활용”하자는 제안이다.[4] 백두산 천지 아래 쪽에 구멍을 뚫어 밑에서 꿈틀대는 ‘마그마방’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화산 분화 위험을 경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구포럼은 백두산 공동연구기지가 “한반도의 하늘과 땅, 생명”을 남과 북이 함께 연구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두산이 화산분화나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 변화처럼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하고 위험한 일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기지가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두산 연구기지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의 과학기술적 해석을 한반도 밖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과거를 극복하는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기상청은 서울 상공의 미세먼지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연구하기 위해 미항공우주국의 인력과 기기에 의존한 바 있다.[5] 우리나라가 주춤하는 사이 백두산 화산 연구는 미국, 영국, 중국 등으로 이루어진 국제연구팀이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백두산에 연구기지를 만드는 일은 과거와는 달리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직접 이해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반도의 위험에 대한 믿을 만한 과학기술 지식을 생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평화 시대에 걸맞은 책임있는 정치 공동체를 꿈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백두산 과학기지 구축방안’을 다룬 제12회 통일과학기술연구포럼의 포스터(왼쪽)와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원들의 모습(오른쪽). 사진 출처: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tumblbug.com/marc718)
‘백두산 과학기지 구축방안’을 다룬 제12회 통일과학기술연구포럼의 포스터(왼쪽)와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연구원들의 모습(오른쪽). 사진 출처: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tumblbug.com/marc718)
생명에 대한 책임있고 믿을 만한 지식을 만드려는 시도는 벅찬 감동을 준다. 가수 알리가 백두산 천지에서 부른 아리랑과 천지에 두 손을 담근 문 대통령의 모습이 즉흥적인 퍼포먼스로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주었다면, 세상에는 느리고 꾸준한 연구와 무덤덤한 논문체 말투만이 줄 수 있는 종류의 감동도 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생태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비영리단체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의 연구가 좋은 예시다.[6] 이곳 연구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남들이 지나치는 돌고래의 흔적을 발로 뛰며 수집하고 통계적, 수학적으로 가공한 뒤 정돈된 글과 그래프 형태로 세상에 내놓는다. 이렇게 정제된 정보들은 돌고래의 일생에 인간 활동이 미치는 치명적 영향을 이해하고, 또 이를 줄여나가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부족한 증거가 강제하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최선의 과학적 과정을 통해 생명이 걸린 문제를 설명가능하게 만드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백두산 과학기지 역시 이런 선례들을 따라 최선을 다하는 과학기술 연구가 생명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로서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남과 북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남북합동공연이나 경제협력은 정치 상황에 따라 취소될 수 있지만, 백두산에 대해 남북공동연구팀이 각종 센서와 계산으로 알아낸 사실은 단번에 기각되지 않는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과학적 사실을 함께 생산함으로써 우리는 정치적 혼돈으로부터 조금은 더 견고한 남과 북의 관계를 기대할 수 있다. 백두산 연구처럼 묵직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면 더는 설명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인 정치적 리더십에 의해 당혹스러운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다. 과학기술연구는 남과 북의 정치적 결정이 지향해야 할 합리성의 모범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공동과학기술연구는 남과 북이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 시대에 과학자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원칙과 자세로 연구에 임하게 될 것이다. 북한 과학자들은 더는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폭력 수단을 만드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만들어 놓은 기술의 위험성을 드러내어 책임지는 연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한 과학자들도 북한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막는 연구에서 벗어나 남북 공동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기술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쓸 수 있다.

북한이 자랑하던 원자력 및 핵탄두 연구는 앞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생화학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 해킹 기술을 연마하던 과학전사들도 원래 역할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위험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일거에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험 시설을 안전하게 해체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를 만든 사람들의 전문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과학기술을 직접 만들고 운영해 본 사람들이야말로 특수한 위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를 대체하거나 바꾸는 일 대신 필요한 것은 연구 방향과 목적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과학기술 연구가 음식을 잔뜩 만들어서 배불리 먹는 데 주력해왔다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연구는 식사의 마지막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설거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남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북한의 설거지를 거들고 도와서 과학기술 연구를 시작부터 종료까지 책임 있는 활동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 수조(습식 저장시설)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북한 비핵화에 대한 토론은 원전 해체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남한의 현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기회다.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발전소 수조(습식 저장시설)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북한 비핵화에 대한 토론은 원전 해체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남한의 현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기회다.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남한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북한 비핵화 과정에 동참한다면 이는 가장 상징적인 과학기술협력으로 남을 것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는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협인 북한 핵무기와 핵시설을 남한의 원자력 기술로 해체하고, 북한 핵물질은 모두 수거해 국내 원자로에서 소각한 후 북한에 송전해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한반도를 위한, 한반도에 의한, 한반도에 맞는 비핵화”라는 생각이다.[7] 비핵화가 끝난 후에는 북한 원자력 연구자들이 전문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분야로 이직할 수 있도록 중개할 수도 있다.[8] 물론 미국, 중국, 북한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적 외교관계 때문에 남한 전문가들이 비핵화 과정에 참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만약 그런 협력이 가능하다면 남북 과학기술자들은 국제사회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과학적이고도 정치적인 책임을 온전히 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설거지를 돕다보면 자신의 설거지는 제대로 해왔는지에 대해서도 돌이켜 보게 된다. 남한은 원자력 발전소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게 지어진 곳이지만 그에 걸맞은 원전 해체 기술이나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은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원전 해체를 위한 핵심기반기술 38가지 중 10가지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9] 실제로 원전을 해체해 본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실천적, 수행적 지식도 부족하다. 원전 안 수조에는 갈 곳을 잃은 15만 다발의 폐연료봉이 쌓여 있기까지 하다. 원전을 짓고 운영한 이래 단 한번도 고준위 핵폐기물 보관시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토론은 원전 주변에 무려 380만명이 밀집해 있으면서도 원전 해체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남한의 현 상황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기회다.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도 자국의 과학기술에 전주기적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누군가에게 설거지를 미루듯 후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평화 시대의 과학기술

“동무는 무슨 연구를 하십네까?”라는 북한 과학자의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시대적 변곡점에 선 한국의 과학기술자들과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은 북한 연구자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연구가 어떠한 사회적 활동이었는지 돌이켜볼 수 있다. 분단 이후 남한에서 과학기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지식이었는지, 어떠한 사실이 만들어졌으며 어떤 것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는지, 개발된 기술은 과연 책임질 수 있는 것이었는지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북한이라는 또다른 한국을 비추어볼 거울이자 함께 걸을 동반자로 삼는다면 사회적, 문화적 활동으로서 과학기술연구의 미래를 재설계할 수도 있다. 북한과의 공동연구는 과학기술과 사회가 더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나는 미래를 처음으로 그려보는 시험의 장이 된다.

북한의 유명한 냉면 식당 ‘옥류관’을 남한에 유치하겠다는 구상부터 북한 관광용 크루즈 노선을 개발하겠다는 생각까지,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 백화점식 협력 방안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검증되지 않거나 본질에서 벗어난 교류 제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연구만이 갖는 고유의 가치와 가능성을 분명히 하고 이를 남북관계에 녹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 사회를 사는 시민의 교양으로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근원으로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합리적 과정으로서 과학기술의 가치를 우선시한다면, 남북공동연구가 일회성 겉치레에 그치거나 경제협력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는 익숙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어쩌면 ‘전국민의 과학화’, ‘IT 강국,’ ‘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 같은 표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과학 한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성은/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주)

1. 문재인 대통령의 10월 1일 국군의 날 70주년 오찬 연설 중에서. 연설 전문은 다음을 참조: https://news.joins.com/article/23009544.

2. 남북하나재단의 ‘인천시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2015)’ 결과. 연구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7162#08hF.

3. 남북 과학기술 용어 통일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50409001338120.

4. 조명균 통일부 장관, 제12회 통일과학기술연구포럼 격려사, 2017년 7월 31일. 연설 전문은 다음을 참조: http://www.korea.kr/archive/speechView.do?newsId=132030642.

5. 한국 정부와 미 항공우주국(NASA)이 합동으로 수행한 ‘한?미 협력 국내 대기질 공동 조사(KORUS-AQ).’ 이 연구에 대한 더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07191557011.

6.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의 더 상세한 연구활동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4798.

7. 서균렬, “한반도에 맞는 비핵화 '평화로(爐)',” 에너지데일리, 2018년 6월 5일. http://www.energy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078

8.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지의 기술인력에게 재취업 기회를 제공한 ‘넌-루거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시다. 넌-루거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http://raythep.mk.co.kr/newsView.php?cc=12000006&no=16608.

9. 2017년 12월 22일 자 경향일보, “한국 원전 기술력 세계 최고?…핵심 해체 기술은 ‘아직 개발 중’,”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2222053015.

10. 한겨레 21 제 1239호, “원전, 멈춘다고 끝 아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62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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