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기자의 과학읽기]
작살 모양 선모 뻗어 DNA 포획
선모 수축해 끌어당겨 몸에 흡수
세균 항생제 내성 확산 일으키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 메커니즘
작살 모양 선모 뻗어 DNA 포획
선모 수축해 끌어당겨 몸에 흡수
세균 항생제 내성 확산 일으키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 메커니즘
형광 염색 기법을 써서 빛을 내도록 만든 콜레라 균에서 가늘고 긴 선모가 뻗어 나와 주변에 있는 디엔에이 조각(빨간색)을 선모 끝으로 포획하는 장면. 이어 선모를 끌어당겨 디엔에이 조각을 콜레라 균 안에 흡수한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연구진 제공
박테리아(세균) 세계에서도 일종의 작살을 이용하는 사냥술이 동영상에 처음 잡혔다. 이번엔 먹잇감 사냥이 아니라 자신의 유전형질을 바꾸는 데 재료로 쓸 만한 주변의 디엔에이(DNA) 조각을 박테리아가 사냥하는 모습이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등 소속 연구진은 콜레라 균이 다른 미생물의 흔적인 디엔에이 조각이 주변에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몸에서 가느다란 선모(pili)를 쭉 뽑아내어 디엔에이 조각을 붙든 다음에 자기 몸 쪽으로 끌어당기는 장면을 처음으로 영상 촬영했다. 연구진은 이 동영상과 함께 박테리아가 주변의 유전자를 흡수하는 이른바 “수평적 유전자 이동”에 관한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 미생물학(Nature Microbiology)>에 최근 발표했다.
박테리아는 왜 디엔에이 조각을 사냥할까? 박테리아는 주변 환경 변화에 적응해 생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유전형질을 바꾸는 능력이 뛰어난 생물로 알려져 있다. 농약이나 항생제에 대응해 저항성(내성) 갖춘 박테리아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유전형질 변신 능력 때문이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 환경 적응력 또는 약물 내성을 갖춘 박테리아가 출현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박테리아의 빠른 변신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박테리아들이 이전 세대한테서 유전자를 물려받기도 하지만, 죽은 다른 박테리아가 주변에 남긴 디엔에이 조각들을 흡수해 자신의 유전자 자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전 세대한테서 유전자를 물려받은 ‘수직적 유전자 이동’과 달리 다른 박테리아의 디엔에이 조각을 가져다 쓴다는 의미에서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라 불린다.
하지만 실제로 박테리아가 자기 몸 밖의 디엔에이 조각을 흡수하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의 장면을 직접 영상으로 포착한 적은 없었다. 그런 장면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박테리아가 외부 디엔에이 조각을 붙들어 끌어당기는 데 쓰는 선모도 그렇고 사냥감인 디엔에이 조각도 그렇듯이, 둘 다 워낙 작은 데다 식별하기도 어려워 시각적으로 관찰할 방법이 없었다. 박테리아 표면에 털처럼 나 있는 선모는 머리카락 굵기의 1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인디애나대학 등 소속 연구진은 형광 염료 기법을 사용해 박테리아 선모와 디엔에이 조각을 현미경으로도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함으로써 박테리아의 디엔에이 사냥 장면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공개한 짧은 동영상(위)을 보면, 왼쪽 화면처럼 보통의 관찰 환경에서는 두 마리의 콜레라 균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볼 수 없지만 연구진이 개발한 시각화 기법을 갖춘 관찰 환경(오른쪽 화면)에서는 콜레라 균에서 갑자기 선모 하나가 길게 뻗어 주변의 디엔에이 조각을 정확히 집은 다음에 마치 낚싯줄 잡아당기듯이 선모를 수축해 몸 쪽으로 끌어들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박테리아는 자기 몸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디엔에이 조각을 흡수해 유전자 자원으로 활용한다.
연구진은 이런 장면을 두고서 이 박테리아들이 사실상 “낚시꾼처럼 행동한다”고 비유해 설명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항생제 내성 대응연구에 도움” 박테리아의 디엔에이 포획 사냥술을 직접 확인함에 따라 박테리아에서 일어나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의 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더 나아가 이런 관찰 성공은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 능력에 대처하는 연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을 얻는 방식 중 하나가 이와 같이 외부 디엔에이 흡수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내성을 갖춘 박테리아가 죽고 난 뒤에는 자신의 디엔에이 물질을 환경에 배출해 남기는데, 이때에 주변의 박테리아들이 이를 흡수하면 항생제 내성의 유전형질을 갖출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런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박테리아의 디엔에이 사냥에 의해 이뤄지는 과정을 관찰하고 자세히 밝힌다면 앞으로 그 메커니즘을 차단함으로써 항생제 내성 확산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논문 초록 (우리말 번역)
자연적인 형질전환(natural transformation)은 박테리아 종들에 광범위하게 보존되어 있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이라는 메커니즘이다. 이로 인해 진화를 형성하며 항생제 저항성 결정인자의 확산을 일으키고 항원 변이를 촉진함으로써 전에 없던 독성 인자를 획득하기도 한다. 박테리아에 있는 반응성 선모(competence pili)라 불리는 표면 부속물은 자연적 형질전환의 첫 단계에서 디엔에이 흡수를 촉진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세포에서 선모 구조를 시각화하는 방법이 없기에 선모의 작동 메커니즘은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었다. 우리 연구진은 자연적으로 변형하는 모델 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Vibrio cholerae)를 대상으로 선모를 시각화하는 표지 기법을 사용하여, 자연적 형질전환 과정에서 제4 유형 반응성 선모들의 매개로 이뤄지는 디엔에이 흡수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먼저 우리는 제4형 반응성 선모들이 그 끝(tip)을 이용해 박테리아 세포 밖에 놓인 이중가닥 디엔에이에 결합함을 보여주며 이런 결합이 디엔에이 흡수에 매우 중요함을 입증해보인다. 다음으로 우리는 제4형 반응성 선모들이 역동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선모 수축을 이용해 끝에 결합된 디엔에이를 박테리아 표면 쪽으로 끌어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선모의 수축 작용이 디엔에이 내재화(DNA internalization)와 시공간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선모 수축이 방해받을 때 디엔에이 흡수가 가로막힌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합하면, 이 연구결과들은 제4형 반응성 선모들이 그 끝 부위로 디엔에이에 직접 결합하며 수축 작용을 통해 디엔에이 내재화를 매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작용이 수평적 유전자 이동라는 (생물 진화 과정에서) 보존되어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동안에 일어난다.
[ Nature Microbiology,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4-018-017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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