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학 무엇인가’ 간담회
먀샤 스테파니크 교수 초청
먀샤 스테파니크 교수 초청
지난 12일 서울에서 여성과총, 젠더혁신연구센터, 그리고 국립보건연구원 주관으로 ‘여성 건강과 젠더혁신’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이 열려 질병과 건강 연구와 치료에서 다뤄지는 ‘성과 젠더의 이슈들’에 관해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이 심포지엄에 참석해 ‘성과 젠더는 여성 정밀 의학에서 왜 중요한가’ 주제의 기조강연을 한 마샤 스테파니크 미국 스탠포드대학 교수를 국내 연구자 몇 명이 함께 만났다. 이들의 좌담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마샤 스테파니크 미국 스탠포드대학 교수. 사진 젠더혁신연구센터 제공
때: 2018년 9월12일
곳: 서울대 의대 학장실
참석: 마샤 스테파니크 미국 스탠포드대학 의대 교수,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센터장, 백희영 여성과총 젠더혁신연구센터장, 신찬수 서울대 의대 학장,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 오철우 한겨레 미래&과학 기자 (기록지원 젠더혁신연구센터 이한나 팀장, 이준영 연구원)
- 성별(sex):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의 구분
- 젠더(gender):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특성 등을 고려한 남성과 여성의 구분
- 젠더혁신/젠더의학: 성별과 젠더는 물론, 둘의 상호작용은 생물학적 과정과 임상의학 특성뿐 아니라 건강과 질병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성별과 젠더를 고려한 의생명과학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지닌 연구 활동 또는 분야를 젠더혁신연구라 하며, 의학 분야에서는 특히 젠더의학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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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수 서울대 의대 학장
백희영 여성과총 젠더혁신연구센터장: 올해 여름에 서울대 의대에서 김나영 교수의 주도로 의대생을 위한 ‘성차의학’ 수업을 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필수과목은 아니고 선택과목으로 진행되었지요.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센터장: 의대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달짜리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스테파니크: 반가운 소식입니다. 최근 관심을 끄는 이슈를 한두 개 소개한다면, 젠더의학에서 태반 연구가 새로운 분야가 되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태반에 남녀 성별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합니다. 태반은 산모와 상호작용합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공기오염, 약물 등으로 받는 산모의 스트레스에 태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칩니다. 남성 태반은 크기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며 여성 태반은 다른 것들을 선호합니다. 이런 점은 특히나 발달 과정에서 중요합니다. 자폐증, 난독증, 투렛증후군, 그리고 일종의 발달장애에서 남성 비율은 더 높은데, 이런 특징은 태반의 남녀 차이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분야는 이제 막 연구되기 시작한 새로운 분야이고, 대부분 연구가 신경과학 분야에서 이뤄져왔지만 아마 다른 것들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태아에게서 떨어진 세포들이 산모의 순환계로 들어가는 것을 ‘마이크로키메리즘(microchimerism)’이라 부릅니다. 이 세포들은 산모의 일생 동안 존재하며 자가면역질환과도 관련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태반 성별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임신중독증(pre-eclampsia)의 경우엔 차이가 생깁니다. 만약 남자 아이를 임신했다면 임신중독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습니다. 그러므로 성차는 사춘기 때 시작되는 게 아니라 태아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젠더의학 관심 점차 확산중 백희영: 스탠포드대학에서는 젠더의학이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마샤 스테파니크 스탠포드대학 교수
백희영: 12일 서울에서 열린 ‘여성건강과 젠더혁신’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연구사례들은 한국의 젠더혁신연구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여러 연구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스테파니크: 내일 심포지엄의 워크숍에서 우리가 논의할 내용은 신경과학 분야이죠. 신경과학 분야, 뇌 연구 분야에는 성차가 있다고 믿는 쪽과 없는 쪽이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신찬수: 제가 볼 때 미국에 있는 모든 의과대학이 교육과정에 젠더의학을 반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스테파니크: 그렇기 때문에 포럼 같은 젠더의학 관련 행사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2015년 의학교육 포럼(서밋)을 개최했을 때 비용지원을 받아서 미국 내 모든 의과대학 학장들을 초청했습니다. 또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도 있지만 미국에는 거의 없습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샤리테연구소(Charite institute)는 전부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NIH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캐나다는 미국보다 이 분야에서 확실히 앞서갑니다. 캐나다는 성과 젠더에 대한 아주 좋은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여러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느린 속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김나영: 미국 유타에서 열린 2018 성과 젠더 건강교육 서밋에서 의대생들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수들이 성과 젠더에 대해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스테파니크: 우리는 3년 전에 시작했고 마침내 의대생들이 성소수자(LGBTQ;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에 관해 배우는 필수과목을 만들었습니다. 문화적 요소에 대한 감수성(민감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의 깊게 분석해야 할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더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많은 수의 여성 교수를 채용했습니다. 지금이 성차 의학 교육을 시작할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백희영: 하지만 채용된 교수들이 젠더의학을 알지 못합니다. 먼저 그분들이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신찬수: 제 생각에는 임상약학, 심장병학, 내분비학처럼 젠더의학을 쉽게 도입할 수 있는 특정 분야들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분야에서 시작해 점차 확장할 수 있을 겁니다. 스테파니크: 맞습니다. 또한 면역학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자가면역질환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남성은 감염성 질환에 더 취약합니다. 면역체계는 약하거나 강하거나 양극단으로 둘 다 문제를 일으킵니다.
한겨레 미래&과학 오철우 기자: 현재 세계에서 젠더의학과 젠더혁신을 이끄는 기관은 어디입니까? 스테파니크: (독일 베를린의 의과대학인 샤리테)의 샤리테연구소(Charite Institute)라고 말할 수 있고, 스탠포드대학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클레이만연구소(Clayman Institute)는 사회문제, 일자리에 관한 사회적 형평성에 대해 다루는 약간 다른 측면의 젠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기관장은 소아과 의사였으며 교직원들이 젠더 기관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첫 번째로 197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론다 쉬빙어 교수(젠더혁신 연구의 주창자인 스탠포드대학 교수)와 저는 함께 연구했고 많은 수의 생물학적 연구사례를 축적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미국 종합병원인) 메이오클리닉(Mayo Clinic)을 검색해보시면 성차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특별 센터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벨기에에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한 기관도 있습니다.
젠더의학이 남녀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는 미래&과학: 젠더의학이 일반인들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스테파니크: 세 가지 사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수면제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여성에게 특히 심각했는데 대부분 여성이 해당 약물을 복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어느 정도 고쳐졌습니다. 그리고 심혈관 질환이 그렇습니다. 특히나 젊은 여성 환자들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그동안 잘못된 진단도구를 사용해왔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심장병에 걸릴 수도 있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유방암이 아니라 심장병이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임을 알리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스탠포드대학의 여성 심장건강 프로그램은 매우 훌륭합니다. 여성들은 혈관 조영술보다 더 정밀한 혈관내 초음파(IVS)를 통해 진단과 치료를 받습니다. 또한 골다공증의 사례도 그렇습니다. 미국에는 굉장히 많은 수의 권장사항을 보유한 질병 예방 전담부서가 있는데 남성 골다공증에 관한 자료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실험을 해야 할지의 여부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없습니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둔부골절 같은 문제를 많이 겪게 될 것입니다. 고령화사회에서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이 되면서 의료 시스템에 밀려들고 있습니다. 노년기 질환은 우리가 연구하지 못한 다수의 성차를 보입니다.
백희영 젠더혁신연구센터장
신찬수: 질병의 범위, 행태, 약물 반응성에서 남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밝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전적 민감성이나 환경 상호작용 같은 것만 봐도 단순히 X, Y 염색체차이 때문은 아니니까요. 그 이유와 원인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테파니크: 많은 사람이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과 관련된 이유와 원인을 찾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답은 ‘아니다’입니다. 상염색체와 상호작용하는 X 염색체에는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X 염색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습니다. 우리 연구자 중에 헌팅톤 윌라드(Huntington Willard)는 많은 상염색체들이 성염색체가 XX냐 XY냐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단지 호르몬 문제는 아닙니다.
미래&과학: 실험동물들이 연구자의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연구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스테파니크: 논의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핵심은, 단지 연구자의 성별에 관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성의 티셔츠를 방에 두었을 때, 암컷 동물은 남성이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과 동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티셔츠에 남아 있던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의 냄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성별에 따라 동물을 다루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동물을 반응하게 하는 요소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가 아직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백희영: 학술지들이 논문 저자 정보에다 연구자 성별을 표시하기를 요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스테파니크: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학술지들이 연구 대상 성별의 표기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실험에서 우리가 젠더 아닌 성차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오늘날이 많이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별할 수 없는 정도로 서로 다르게 실험동물을 키웁니다. 만약 우리가 케이지에 동물을 3~4마리 둔다면 서로 달라붙어서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케이지에 혼자 있는 수컷동물과는 달리 열량을 소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의학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케이지에 수컷 2마리를 둔다면 그들은 서로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2마리를 함께 둔다면 그들은 서로 죽이지 않습니다. 동물실험을 하는 방식이 사실 생물학을 더 난해하게 만듭니다. 제 생각에 이제 생물학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임상적 측면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초생물학이 잘못되면 기초의학도 잘못됩니다.
백희영: 김나영 교수의 성차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의견 중에서도 기초과학에 젠더 개념이 좀 더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센터장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젠더혁신‘ 누리집. https://genderedinnovations.stanford.edu/
백희영: 진전을 보이려면 어떤 것들이 중요할까요? 스테파니크: 젠더혁신연구센터에서 수행하는 연구와 사업은 굉장히 놀라운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은 비전을 가지고 있고, 스탠포드대학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그리고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정책 전문가들과 언론인들을 함께 모았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참석자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좋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정리/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젠더혁신연구센터 이한나 팀장, 이준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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