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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시험관 속 진화원리, 값진 생체분자 만들다 - 2018 노벨화학상

등록 2018-10-04 17:17수정 2018-10-04 19:13

[그림으로 보는 2018 노벨화학상] 
미국·영국 생화학자 3명 수상 영예
박테리아-바이러스에 유전자 집어넣고
무작위 돌연변이와 선별 과정 되풀이
효소와 항체 분자들의 물질진화 이뤄
바이오연료, 항체약물 등 개발에 기여
스웨덴 노벨위원회 제공
스웨덴 노벨위원회 제공
올해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무작위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기본 원리를 응용해 의약과 산업 분야에서 유용한 효소와 항체 분자를 생산해내는 기법을 새롭게 연 3명의 과학자들한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3일 이런 업적을 이룬 공로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프랜시스 아널드(62) 교수와 미주리대의 조지 스미스(77)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연구소의 그레고리 윈터(67) 연구원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설명자료에서 이들이 창안한 기법 덕분에 더욱 효율이 뛰어나고 정교한 효소와 항체들이 만들어져 바이오연료와 의약 등 분야에서 널리 쓰일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효소와 항체는 세포 안에서 유전자가 발현하여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일종인데, 효소는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화학 반응을 매개하는 촉매로 작용하며, 항체는 항원과 특이적으로 결합해 우리 몸을 보호하면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노벨위원회가 이들의 수상 업적으로 꼽은 ‘유도 진화’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무작위 변이와 자연선택의 기본 원리를 수상자들이 독창적인 방법으로 실험실에서 구현해 뛰어난 생체 분자들이 만들어지는 데에 데 응용했음을 의미한다.

[참조] 노벨위원회 설명자료
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2018 ▶바로가기

변이와 선별 거듭…효소분자의 진화

프랜시스 아널드는 미생물인 박테리아를 일종의 생화학 공장으로 이용해 더 뛰어난 효소 분자를 다량으로 만들어내는 길을 개척했다. 아널드는 1990년대 초부터 효소의 분자 구조를 개량하는 기존 방법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박테리아 안에서 화학반응과 진화의 메커니즘을 일으켜 더 나은 효소를 개발하는 전에 없던 화학 공정을 연구했다.

여러 해의 연구를 거쳐 아널드가 개발해 제안한 방식은 효소 유전자의 무작위 돌연변이와 선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효소 분자의 진화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초기 연구에서, 아널드는 ‘서브틸리신’이라는 효소 분자의 유전자에다 무작위 변이를 일으켰고, 그 돌연변이 유전자들을 박테리아들에 집어넣어 수천 가지의 서브틸리신 효소 변이들을 만들어냈다. 이들 중에서 촉매 반응이 뛰어난 것을 선별해냈고, 그 다음에 선별된 효소들의 유전자에다 다시 무작위 변이를 일으켰다. 제2세대 변이 효소들 중에서 효능이 더 뛰어난 효소를 선별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3세대를 거친 뒤에 아널드는 원래의 효소보다 화학반응 촉매 능력이 256배나 커진 진화된 효소 분자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험실의 시험관에서 구현한 ‘유도된 진화’의 결과물이었다.

스웨덴 노벨위원회 제공
이후에 유도 진화 기법을 이용하는 여러 방법들이 더욱 발전했고, 이제는 바이오연료 생산과 제약 분야에도 이런 효소 생산 기법이 응용되고 있다고 노벨위원회는 설명했다.

바이러스 이용해 미지의 유전자 찾기

다른 수상자인 조지 스미스와 그레고리 윈터는 근래에 항체 약물을 개발하는 데 쓰이는 ‘파지 디스플레이’라는 기법을 창안하고 응용,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파지(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가리키는데, 파지 디스플레이는 이 바이러스의 본래 유전자에다 연구 대상 유전자를 집어넣고서 발현시켜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노벨위원회의 설명자료를 보면 원래의 파지 디스플레이는 항체 약물을 개발하는 기법으로 고안된 건 아니었다. 1980년대에 이 기법을 만든 조지 스미스는 당시에 그 기능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미지의 유전자들 중에서 이미 알려진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어떤 것인지를 간편하게 식별해내는 방법으로 파지 디스플레이 기법을 고안해냈다. 연구자들이 알고 있는 어떤 단백질과 매칭 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 이를 이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스웨덴 노벨위원회 제공
노벨위원회의 설명자료와 그림을 보면, 연구자는 먼저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체 중에서 바이러스 캡슐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유전자에다 ‘미지의 유전자’ 조각을 집어넣는다. 그러면 집어넣은 유전자는 파지의 캡슐 단백질과 함께 발현해 바이러스의 껍질 표면에 펩타이드(작은 규모 단백질)로 노출된다. 많은 미지의 유전자들을 이런 식으로 바이러스 유전자에다 집어넣어 발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갖가지 펩타이드를 지닌 갖가지 바이러스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미 알고 있는 단백질 펩타이드에 잘 달라붙는 알려진 항체를 미지의 유전자들을 지닌 수많은 바이러스들의 용액에다 넣는다. 이렇게 해서 특정 항체가 달라붙은 박테리오파지만을 솎아낸다면, 이미 알려진 항체와 달라붙은 알려진 단백질이 어떤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비교적 간편하고 정확하게 식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약물표적의 항체분자 찾아내고 진화 이끌기

박테리오파지와 항체를 이용한 스미스의 독창적인 유전자 매칭 기법은 당시에 그 자체로도 주목을 받았지만, 그 가치가 큰 빛을 발한 것은 아주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시작됐다고 노벨위원회는 전했다.

신약을 연구하던 그레고리 윈터는 스미스의 파지 디스플레이 기법을 이용하되 파지의 캡슐 유전자에다 무수히 많은 항체의 유전정보를 집어넣었다. 이렇게 하면 항체의 유전 정보는 박테리오파지의 캡슐 유전자와 함께 발현하는데, 이때에 항체에서 매우 중요한 부위인 ‘항원 결합 지점’이 바이러스의 껍질 표면에 잘 노출되었다. 서로 다른 항체 단백질들을 표면에 달고 있는 갖가지 바이러스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항체 약물 개발에 큰 장점이 되었다.

그레고리는 1994년에 이런 방식으로 만든 무수히 많은 후보 항체들 중에서 특정한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잘 달라붙는 항체를 찾아내는 데 파지 디스플레이를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스미스가 개발한 효소 분자의 유도 진화 기법과 같은 원리를 사용하여 약물 표적과 잘 달라붙는 항체를 솎아낸 다음에 다시 그 항체에다 무작위 변이를 일으킴으로써 더 잘 달라붙는 항체 분자의 진화를 유도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약물 표적에 훨씬 더 정확하게 더 강하게 결합하는 항체 약물을 개발하는 길이 열렸다.

스웨덴 노벨위원회 제공
이런 항체 약물 연구기법 덕분에 들은 현재 여러 자가면역질환의 치료제와 항암 치료제로 개발되었고 개발되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이 개발한 기법들은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전하여 환경친화적인 화학산업을 진흥하고 신물질을 만들어내며 지속가능한 바이오연료를 제조하고 질병을 줄이며 생명을 구하는 데 쓰이고 있다”며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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