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을 한 통 보내면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발생할까? 영국에서 ‘쓸데없는 이메일 규제’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메일 하나를 전송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4g이다, 첨부 파일이 들어 있다면 탄소 배출량은 수십 배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스팸메일로 연간 330억㎾의 전기가 소모되고, 1700만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환경에세이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펴낸 ‘기후변화 전도사’ 타일러 라쉬는 한국방송공사(KBS) 캠페인 ‘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제안 5편-당신이 몰랐던 e-mail의 역습’에서 “한 시간 동안 동영상 시청하고, 세 통의 메일을 보내고, 7MB의 데이터를 사용한다면 모두 91g의 탄소를 배출하는 셈이다. 자동차로 1㎞를 주행한 결과와 같다”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이메일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타일러는 “23억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이메일 10개씩만 지워도 무려 172만5천GB가 절약된다”며 메일 지우기, 스팸메일 차단하기, 첨부 파일 따로 저장하기, 휴지통 지우기(메일 완전 삭제) 등을 실천 요령으로 제시하며 캠페인을 마무리한다.
정말 이메일 하나 줄이면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최근 영국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기후변화 대응 방안으로 이메일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 발언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국제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메일 논쟁’이 내년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온실가스를 감축할 혁신적인 방법을 찾던 당국자가 “하루 이메일 한 통만 줄여도 많은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제안한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촉발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국립사이버안보센터(NCSC)가 작성한 것으로, 지난해 재생에너지 전력회사인 오보에너지(Ovo Energy)가 “영국인이 하루 한 개의 ‘감사합니다’ 이메일을 보내지 않으면 연간 1만6433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 보도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오보에너지 연구팀은 이 규모를 8만명의 승객이 런던에서 마드리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양에 비유했다.
이 당국자는 “온라인상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축하’ ‘LOL’(너무 웃겨 또는 사랑해 뜻) 등 소소한 대화나 인사치레를 규제하는 것에 대해 보리스 존슨 총리한테 보고되지는 않았다”고 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하면서, 하지만 존슨 총리는 혁신적인 환경 정책을 그의 ‘보증수표’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꼬집었다.
영국 정부의 이런 태도에 전문가들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비영리산업단체인 테크유케이(TechUK)의 수잰 베이커 기후·환경·지속가능성 부국장은 "이메일 등의 데이터 유통량이 에너지와 탄소 부담을 유발한다는 걸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하지만 기술 부문은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데 투자를 집중하고 있고 일부 산업전망에서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0%까지 감축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랭카스터대의 마이크 버너스-리 교수는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하는 계기로 유용할지 몰라도 정보통신 부문이 저탄소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정보통신은 놀랍게도 (코로나19 상황에서) 탄소 발자국 증가 없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에 자리 잡은 네이버의 도시첨단산업단지(왼쪽)와 미국 유타주 국가안보국(NSA) 데이터센터. 연합뉴스 제공
이메일의 탄소발자국(직간접적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은 그 자체보다 이메일을 쓰거나 읽을 때 사용하는 전자기기와 데이터를 유통하는 데 사용하는 전송망, 이메일을 보관하는 데이터센터 등을 가동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세계 탄소발자국의 0.1% 이하를 발생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는 지난해 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4억3520만톤으로, 오보에너지 연구팀이 주장하는 ‘이메일 한 통 줄이기’로 얻는 절약 효과 곧 1만6천톤은 전체의 0.0037%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크리스 프리스트 브리스톨대 지속가능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이메일이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 생성에 관여하는지는 서버와 가정내 와이파이, 노트북 등을 사용하는 에너지에서부터 데이터센터 건물을 건설할 때 배출된 이산화탄소까지 모든 것을 계산해야 한다”며 “하지만 사실 이 모든 시스템은 이메일을 보내거나 말거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말했다. 프리스트 교수는 “이메일당 탄소발자국은 1g도 훨씬 안 될 것”이라며 “여행이나 난방, 식생활 등 좀 더 큰 것에서 ‘기후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른 사람한테 가치가 있다면 이메일을 보내고, 그렇지 않다면 보내지 말라”는 말로 <비비시>와의 인터뷰를 맺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