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군집위성들로 구성된 저궤도 위성인터넷, 이른바 우주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은 인터넷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는 점이다. 수천개의 위성들이 지구 전체를 감싸고 돌면서 데이터를 어느 지역에서나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우주인터넷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통신 인프라가 망가진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 스페이스엑스의 우주인터넷 스타링크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의 미하일로 표도로프 장관과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가 주고받은 트윗.
스페이스엑스는 어떻게 이렇게 신속하게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 인터넷망을 운용할 수 있었을까?
스페이스엑스는 사실 올해 초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 서비스를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20년 가을부터 시작한 공개 시험서비스 대상 지역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그윈 숏웰 스페이스엑스 사장은 지난 7일 한 토론회에서 “우리는 지난달 26일 미하일로 표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전환부 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스페이스엑스에 스타링크 장비 제공을 요청하기에 앞서 유럽 서비스 지역 확장을 위해 한 달 반 동안 우라이나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별다른 진척이 없던 상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급반전됐다. 러시아 침공 이틀 후인 26일 표도로프 장관이 트윗을 통해 머스크에게 “당신이 화성 식민지를 만들려고 하는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고 한다”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에 처음 도착한 스타링크 수신 장비. 표도로브 트위터
우크라이나 정부의 도움 요청에 머스크는 곧바로 스타링크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장비들을 보냈다. 첫 장비들은 이틀 후인 28일, 두번째 장비는 3월10일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숏웰 사장은 “장관의 트윗 문자가 곧 승인이었다”고 말했다.
표도로프 장관은 트윗을 통해 “스타링크가 생명을 구하는 도시 연결망과 긴급 서비스를 유지시켜줬다”며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의 평화를 지지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왼쪽은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통신 시설, 오른쪽은 스타링크 위성접시. 미하일로 표도로프 장관 트위터에서.
스타링크 독일 사무소 직원들이 스타링크 수신 장비를 트럭에 실어 보낸 데 이어 테슬라의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사무소 직원들은 가정용 에너지 저장시스템인 테슬라의 ‘파워월’을 보냈다. 파워월은 지상의 인터넷 접속 장비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애초 표도로프 장관은 발전기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머스크는 발전기보다는 열 신호와 연기가 나지 않고 연료 고갈 문제도 없는 에너지저장장치가 더 쓸모 있을 것이라며 파워월을 보냈다.
파워월 중 일부는 테슬라가 최근 가동하기 시작한 베를린 공장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테슬라는 이전에도 허리케인 마리아로 전력 인프라에 큰 피해를 입은 푸에르토리코에 이 장비를 제공한 적이 있었다.
스타링크 사용지역 추적 웹사이트의 스크린샷. 우크라이나 전역이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임을 뜻하는 녹색으로 표시돼 있다. https://spacenews.com/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시에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이 위성 신호를 이용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클리캘리포니아대의 보안전문가 니컬러스 위버는 ‘시엔엔’에 “스타링크는 잠시 동안은 유용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 접시를 설치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잠재적인 표적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1996년 러시아는 위성전화의 전파 신호로 체첸 대통령 조하르 두다예프의 위치를 파악한 뒤 미사일로 그를 공격해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의 한 사용자가 올린 스타링크 데이터 송수신 속도. 지난해 12월 스타링크 장비를 구입해 자신의 아파트 창문 밖에 안테나를 설치했다고 한다. Oleg Kutkov 트위터.
머스크 역시 트위터를 통해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작동하는 유일한 비러시아 통신 시스템이므로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링크는 필요할 때만 켜고 안테나는 가능한 한 사람한테서 멀리 떨어뜨린 곳에 설치하라고 권고했다. 또 들키지 않도록 안테나를 뭔가로 덮어씌워 위장할 것도 권했다.
스페이스엑스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얼마나 많은 스타링크 단말기를 보냈는지,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스타링크 위성은 2019년 5월 이후 지금까지 2090여개가 성공적으로 발사됐으며, 2020년 가을 북미지역을 시작으로 올해 3월 현재 28개국에서 공개 시험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시험 서비스가 아닌 긴급 구호 서비스 지역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