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26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 즈음에 공개된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 10위권인 한국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한겨레>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분야별 핵심 이정표를 매주 연재한다. 에너지·기후·공학·건축 관련 전문가그룹은 물론, 농민·노동자·자영업자·청소년·청년 등 기후위기로 영향 받는 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30여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이 시리즈가 다뤘던 연도는 인류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노력해온 주요 연도와 겹친다.
198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구성되어 기후변화를 인식하고, 평가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1994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약속으로 유엔기후변화협약이 발효되었고, 1997년 선진국이 먼저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었다.
10대였던 드라마 주인공들이 40대가 되는 시간 동안 인류는 기후위기를 다뤄왔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1990년 세계 이산화탄소배출량은 227억톤에서 2020년 340억톤으로 증가했다.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5ppm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유엔 난민기구는 폭우, 가뭄, 해수면 상승, 슈퍼태풍, 환경파괴로 매년 평균 2천만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기가 턱밑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IPCC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1.5도를 넘어서는 안되며, 이를 달성하려면 적어도 205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30년 내에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순배출 0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가 석유·석탄·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세계 에너지소비량의 80%가 화석에너지이다. 이건 마치 세계를 한번 뒤집었다 놓는 정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올해 우리는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을 논의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2760만톤으로 배출량 세계 10위권이다. 7억2760만톤이라는 숫자에는 5천만명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철강·시멘트·정유·조선·자동차·반도체 등 산업 활동을 지탱하며, 물류와 이동, 건물 냉·난방, 농사짓고, 물고기 잡으며, 소를 키우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모든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당사자들이다. 올해는 한국사회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숙제를 받아들고, 어떻게 할지 생각을 모으기 시작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앞에 놓인 장벽도 만만치 않다. 2009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한 이후 단 한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는 정부, 지금도 속도가 빠르다며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회피하는 산업계, 탄소중립도 오로지 탈원전 탓으로 돌리는 언론을 넘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관성을 넘어,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10대가 중년이 되는 2050년 지구 평균기온은 얼마나 상승하게 될까? 지구적 탄소중립 목표는 달성되었을까? 기후위기에 맞서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어가면서 살 만한 사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 내에서, 탄소예산(우리에게 배출이 허용된 온실가스 총량) 한계 내에서 인간의 기본적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녹색사회로의 비전과 실행계획이 담겨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에 대한 좌표를 새로 설정하는 논의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모든 지표를 오로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맞출 것이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불평등 해소, 녹색일자리 창출, 삶의 질과 행복이라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올해는 한국사회가 후회없이 기후위기에 응답하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