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동 중단을 앞둔 독일 바이에른주 군트레밍엔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 친화적인 '녹색' 사업으로 분류하는 규정 초안을 제안했다. AP/DPA 연합뉴스
2일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녹색산업의 기준을 정해둔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시키기로 한 유럽연합(EU) 택소노미 초안이 공개됐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와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이미 확인한 데다, ‘탈원전’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등이 포함된 국가들 연합에서 원전을 ‘녹색’에너지라고 분류한 것이다. 초안이긴 하지만 이달 중순 초안대로 최종 확정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 내에서 원전에 대한 입장은 갈려왔다. 2017년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원전 비율을 50%로 줄이겠다고 계획했으나 현재 70%에 육박할 정도로 원전 의존도가 높다. 2020년 한국의 원전 비중은 29%이다.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은 여전히 석탄 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들이다. 지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한국과 함께 주요 경제국으로서 2030년대 석탄 감축 성명에 동의했다가 돌연 딴소리를 하며 2040년대까지 줄이겠다고 물러선 폴란드의 석탄 의존도는 전체 발전량의 70%다. 주변 나라들도 다르지 않다.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전세계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자원·기술력 등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빠르게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원전이다.
반면 독일 등 대다수의 유럽국가들은 원전에 대해 이들 국가만큼 절박하지 않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한 지지 등 독일 내부 결속을 바탕으로 ‘탈원전’ 정책이 흔들리지 않고 진행되어왔다.
이처럼 프랑스와 독일로 대표되는 두 그룹은 녹색산업에 원자력을 포함시킬지를 두고 지난해 외교활동 등을 통해 꾸준히 대치하고 갈등해왔다.
결국 유럽연합의 택소노미 초안을 두고 프랑스와 동유럽의 이해관계가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 국가가 ‘로비’를 잘 했다는 평가다. 국내 원전 반대 운동을 수년째 계속해 온 이헌석 정의당 기후정의선대위 공동상임위원장은 “프랑스 전력공사인 EDF의 원전 사업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프랑스의 전략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봐야 한다. 석탄 수요를 줄이고 싶어하는 동유럽으로의 원전 수출시장을 찾기 위한 것인데 동유럽과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와 동유럽 10개국 경제·에너지 장관들이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 등에 기고를 보내 “유럽은 원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보내기도 했다.
독일 등 반원전파에게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는 해석도 더해진다. 기후위기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생산량도 감소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와중에 지난해 이상기후로 북미와 유럽이 폭염을 거치면서 에너지 수요가 늘면서 천연가스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가 아시아 지역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을 늘렸다. 지난해 상반기부터는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줄어 풍력발전에 의존하는 주요 재생에너지 강국들도 다시 화석연료의 존재감을 실감해야 했다. 결국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주로 수입해 쓰던 유럽 여러 국가가 ‘에너지 안보’ 현실을 실감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찾기 시작한 것도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 감축이 급선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성장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적 상황에서 유럽 역시 과거 관성에 의존했다는 비판적 해석도 나온다. 프랑스와 동유럽뿐 아니라 주요 경제국들이 새로운 도전인 재생에너지 대신 과거부터 의존해오던 원전을 위기 상황에서 ‘관행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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