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 후보 토론회가 열린 3일 서울 한국방송 스튜디오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 사진)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 2월3일 대선후보 방송 토론회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EU택소노미가 매우 중요한 의제인데 원자력 (포함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유럽을 봐도 독일이 원전을 없앴다가 (원전을 많이 가동하는) 프랑스에서 (전력을) 수입하고 러시아에서 가스를 들여오고 그렇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선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기후·에너지 분야이다. 지난 3일 첫 TV토론회에서의 아르이(RE)100과 택소노미, 블루수소 등 개념이 화제가 됐던 이유이기도 하다.
전세계적 기후·에너지 정책 대응에 있어 대표적으로 다른 노선을 걷는 국가가 독일과 프랑스다. 지난해 말 출범한 독일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2022년까지 남은 원전 3기마저 폐쇄하고, 2030년까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도 중단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 40% 수준에서 80%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반면 프랑스는 원전 의존도가 현재 전체 발전의 70% 수준이며 줄인다 해도 50%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를 선택한 독일이 ‘원전’에 의지하는 프랑스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는 게 사실인지 자연스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경 맞대고 있는 유럽 전력 수입·수출 “사실”
7일 <한겨레>는 독일 싱크탱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에서 일하는 염광희 한국담당 선임연구원과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자문위원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와 독일의 자료를 확인해보니 윤 후보의 발언은 진실과 꽤 거리가 있었다. 독일은 9개 국가와 인접해 전력을 주고받는다. 국가 간 세세한 수출·수입을 구분하는 게 어려울 정도다. 프랑스와도 국경 여러 곳에 송전망이 있어 공급이 많은 곳에서 수요가 많은 곳으로 전력을 이동시킨다. 다만 프랑스를 상대로는, 전력을 수입하는 양보다 수출하는 양이 더 많았다.
그래프 왼쪽 중간 부분 숫자 0을 기준으로 선을 그을 경우 윗부분은 독일에서 프랑스로 수출한 전력량이고 아랫부분은 반대로 독일이 프랑스에서 수입한 양이다. 2015~2021년까지 독일의 수출량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독일 연방 네트워크청 홈페이지 갈무리
독일, 2003년 이후 전력 순수출국가로 전환
독일연방네트워크청(Bundesnetzagentur) 누리집에서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의 연도별 전력 수출-수입 상황을 확인해보면, 독일이 프랑스로 수출하는 전력량이 프랑스로부터 수입하는 전력량보다 높은 추이가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일은 2015년 한 해 프랑스로부터 3.8TWh의 전력을 수입했고 13.4TWh를 프랑스로 수출했다. 지난해에는 8.3TWh를 수입한 대신 14.9TWh를 수출했다.
2019년, 2020년도 독일의 수출이 많았지만, 프랑스로부터의 수입량이 이전보다 늘었다는 특징이 있다. 염 선임연구원은 “2017년부터 독일 내 탈석탄 정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출량이 줄고, 프랑스로부터의 수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에서 프랑스로의 전력 수출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독일에너지수자원협회(BDEW) 자료를 보면, 지난해 독일은 총 약 71TWh의 전력을 주변 국가들에 수출하고 52TWh를 수입했다. 염 선임연구원은 “수출입양만 보면, 독일은 2000년대 들어 주변 국가들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것보다 수출하는 것이 더 많은 전력 순수출국으로 전환했다”며 “국내서 사용하는 전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수출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간 하얀색 선(0)을 기준으로 윗부분은 프랑스가 수입하는 에너지, 아랫부분은 프랑스가 수출하는 에너지를 가리킨다. 국가별로 다른 색으로 표시했는데, 최근 한 달 사이 독일과 벨기에(주황색)에서 프랑스로 수입된 양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송전공사 홈페이지 갈무리
“프랑스, 겨울철 에너지 수입 늘어”
프랑스 송전공사(RTE) 누리집에서도 독일 전력이 프랑스로 수출되고 있는 모습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월1일부터 이달 7일까지 주변 국가들과의 전력 수출입 현황을 보면 프랑스가 독일에서 수입한 양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자문위원은 “프랑스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기에와 독일을 묶어서 전력 수출입양을 표기하고 있다. 다만 두 지역 중 독일로부터 더 많이 수입을 하고 있다”라고 전제한 뒤 “프랑스는 보통 여름보다 전력 수요가 많은 겨울에 독일로부터 수입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 겨울엔 원전 가동이 중단된 특수 상황도 겹쳤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지난해 12월 중순 시보 원전 1호기에서 원자로의 냉각재 상실 사고 발생 시 냉각재를 투입하는 계통 배관의 부식결함을 발견해 같은 기종 원전들까지 포함해 총 4기(약 6GW)를 보수 점검하느라 가동을 중단했다.
다만, 데이터 확인 기간을 같은 해 여름철로 변경하자, 날씨나 시간에 따라 양국의 수출입 현황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석 자문위원은 “여름철은 난방 수요가 많은 겨울철과 같이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더 많은 전력을 수입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여름철에 프랑스의 전력 수출이 많아보이는 것도 프랑스인들이 장기간 휴가를 가기 때문에 남는 전력을 싼 가격에 주변 국가들에 판매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핵심은 겨울철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유럽국가들의 연간 전력 도매요금 평균가격을 보면 프랑스(FR)과 독일(DE) 중 프랑스의 가격이 더 비싸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자료
‘천연가스 의존’은 프랑스도…전력 도매가격 더 비싸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자국의 에너지원 비중이 원전과 천연가스 중심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염 선임연구원은 “프랑스는 원전을 확대하면서 전기 난방기를 많이 보급했다. 때문에 매우 덥거나 매우 추울 때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 게다가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가장 비싼 전력원인 천연가스를 많이 가동해야 하는 프랑스의 전력 도매요금은 독일보다 비싸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독일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원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에서는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경우 최대 전력 수요의 최대 15%까지 천연가스 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력 도매가격은 가장 비싼 에너지원인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 비중에 따라 달라진다.
독일도 재생에너지로 전환해가는 동안 천연가스 의존도가 오를 수 있다.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35%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면, 독일의 처지도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