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가습기 살균제 4차 피해정보 공유모임’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의 조정안 수정을 요구하며 삭발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아이들을 위한 미래 치료권 보장과 사망자 지원 확대 등을 조정안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의 최종 조정안이 예고와 달리 이달을 넘겨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치료비 보장과 기업 부담, 국가 책임 등 여러 쟁점을 두고 기업과 피해자 모두 합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2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안’이 기업의 주주총회 일정과 피해자 수용성 등을 감안했을 때 이달 내 조정안 확정은 사실상 어려운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도출된 2차 조정안 가운데 세부 항목을 조율하는 단계인데, 조정안대로라면 수천억원을 배상하기로 되어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총회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는 논리다.
조정안은 옥시RB, SK케미칼, SK이노베이션, 애경산업, GS리테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쇼핑, LG생활건강 등 9개 기업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간 사적 조정을 통해 확정되는 것으로, 환경부는 ‘조정위 지원’으로 역할을 한정해 한 발 빠져있다. 현재 초안을 한차례 수정한 2차안이 나와 피해유형과 연령에 따른 지원방안을 명시한 상태다. 피해자 외 단순 노출 또는 판정 대기자까지 포함해 총 7027명이 조정안의 적용을 받는다.
2차 조정안을 두고도 피해자들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적정 수준의 피해 보상과 미래 치료권을 확보하기에 부족하고, 국가 책임이 지워져 있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피해자들은 조정안 수정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에까지 나섰다. 지난 26일 SK 본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한 조순미 빅팀스(11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로 구성된 모임) 투쟁본부 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조정안에 국가적 책임을 명시해달라는 점과 향후 미래 치료에 대한 보장 방안을 제시하라는 점을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렇게 유야무야 역사 속에 덮어버리고 지나가선 안 될 일”이라고 밝혔다. 이날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도 서울 여의도 옥시RB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RB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최대 살인기업”이라며 “피해 조정에 무한 책임의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조정안 확정 전까지 말을 아끼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조정위에서 제안한 전체 내용에 대해서 내부 검토도 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조정위에서 논의하는 사안으로 저희로서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막판까지 난항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갈등 요소가 많을 수밖에 없는 참사를 단기간 조정으로 해결하려는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애초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조정위를 구성하고자 한 ‘선의’는 이해되지만, 대선 전인 2월말께로 합의 시점을 고정해두고 답을 내리려 했다는 것이 무리였다는 얘기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알려지고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피해자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이 문제에 매달려왔다. 그 사이 정부의 구제 정도에 따라 피해자 간 입장차도 크게 벌어졌다”며 “이런 복잡한 사안을 조정위를 만들어 결론 낸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10년 전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만든 환경부 등 정부 책임이 크다”며 “차기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과거 정부의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주도적으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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