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정오 서울 명동 일대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붉은색으로 보이는 건물과 길의 온도가 사람 체온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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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빙하 조각 위 위태로운 북극곰, 1년 이상 산불에 시달린 아마존, 기온이 50℃가 넘는 중동지역…. 한국과는, 아니 적어도 나와 내 가족과는 멀게 느껴지는 기후위기, 정말 그럴까.
이례적으로 뜨거웠던 지난 6월, 전국 평균기온은 22.4℃로 평년(21.4℃)보다 1℃가 높았다. 6월 기준으로 따지면 기상관측이 전국에서 실시된 1973년 이후 세번째로 높은 수치다. 서울 등 13개 기상관측 지점에선 처음으로 ‘6월 열대야’가 나타나기도 했다. ‘고작 1℃뿐, 에어컨 온도를 1℃ 더 낮추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무시하기엔 1℃의 무게는 무겁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 현황을 보면, 5월2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743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발생한 200명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온열질환으로 숨졌다고 추정되는 사람도 지난해 3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더 길고 세진 폭염은 더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때 이른 폭염, 이례적으로 긴 장마와 태풍 등 자연이 지속적으로 보내는 경고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기후위기의 그림자는 이미 일상 곳곳을 파고들었다. 예민한 촉각으로 삶의 전반에서 먼저 기후위기를 느낀 이들이 당신에게 기후 재난 일지를 보냈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우리는 이미 기후 재난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기후 난민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은 이례적으로 ‘뜨거운 6월’이었다. 전국 평균기온은 22.4℃로 평년(21.4℃)보다 1℃가 높았다. 서울 등에선 처음으로 ‘6월 열대야’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진은 낮 최고기온이 30도였던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지역은 가뭄 때문에 난리다.”
경북의 한 지역에서 문화기획 일을 하는 박은주(가명)씨는 올봄 농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강수 예보에도 비가 내리지 않자, 농부들이 밭에 물을 대야 한다며 강의 불참을 연달아 전해온 탓이다. 박씨는 “마늘·양파밭이 많은 이 지역은 비나 가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었는데, 최근 가뭄 때문에 농부들의 시름이 깊다. 정말 큰일”이라고 말했다.
말라가는 남부지역과 달리 중부에 퍼붓는 폭우를 보면, 박씨는 2020년 여름이 생각난다. 당시 역대 최장인 54일 동안 이어진 장마와 집중호우로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8천가구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거주하던 박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우가 일주일가량 쏟아졌을 무렵, 박씨의 집에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거실 천장 귀퉁이와 안방 창문 쪽 벽지가 젖더니, 이내 곰팡이가 피었다. 그 집에서 6년 동안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끝나지 않는 장마 탓에 누수 공사도 할 수 없었다. 곰팡이는 닦고 또 닦아도, 다시 똬리를 틀었다. 그해 여름, 박씨는 “집도 더 이상 기후위기에서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빨래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라도 없애보고자 찾은 집 근처 코인빨래방에서는 “서글픈 감정”까지 느꼈다. 집에서 쾌적한 세탁이 불가능한 이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박씨는 도시의 삶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에 고향으로 터전을 옮겼다.
오경은(가명)씨도 2020년 여름 박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초록색 꽃처럼 핀 곰팡이 때문에 비싼 패딩과 장롱 등을 버린 것은 물론, 오랜 장마에 아찔한 상황까지 생겼다. 비에 약해진 빌라 외벽의 벽돌 조각들이 떨어진 것이다. 오씨는 “공사하지 않으면 자칫 사람이 다칠 수 있어 빌라 주민들이 돈을 모아 외벽 공사를 했다. 공사를 맡은 업자에게서 ‘비가 많이 와서 벽돌이 떨어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장마 땐 비가 오는 게, 여름은 더운 게 ‘당연’하다고 넘어가기엔 이례적인 일이었다.
온도조절 기능이 있는 흙부대집에서 사는 최창열씨는 2018년 여름을 겪은 뒤 에어컨을 설치했다. 최창열씨 제공
여성환경연대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기후 재난이 일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5월30일~6월12일 설문조사를 벌였다. 성인 1263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박씨나 오씨처럼 ‘지난 5년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거주 공간의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사람이 54.5%에 이르렀다. 곰팡이 번식 피해를 봤다고 답한 이는 전체 응답자의 30.4%로 가장 많았고, 이어 건물 누수(18.4%), 건물 침수(4.9%), 정전·해충피해 등 기타(0.8%)가 뒤를 이었다.
설문 참여자들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데 동의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 평균 4.44점(5점 만점)으로 심각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국의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느끼냐’는 질문엔 평균 4.3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매겼다.
뜨거워진 지구만큼 한반도도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기상자료개방포털을 보면, 국내 폭염일수는 1973년 일주일에서 2021년 18일로 늘었다. 21세기 후반엔 한해 폭염일수가 22일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2020 폭염 영향 보고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현재와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100년엔 한국 연안 지역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 기상청)
인간의 활동으로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기후위기가 야기한 생활 속 불편함을 피하려 더 다양한 가전제품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놓인다. 30년 이상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강민경(가명)씨도 달리 도리가 없었다. 강씨의 집엔 여름철 대비용 가전제품이 매년 하나씩 늘고 있다. “장판이 끈적끈적할 정도로 습해 화장실과 방에 곰팡이가 피어서” 2년 전엔 제습기(30만원)를, “목에 얼음팩을 감고 찬물로 씻어도 열대야에 잠을 잘 수 없어서” 지난해엔 에어컨(설치비 포함 80만원)을, “제습기로는 수건과 빨래에서 나는 ‘행주 쩐내’를 없앨 수 없어서” 올여름 앞두고는 건조기(145만원)를 샀다. 강씨는 “기후위기에 일조하는 것 같아서 안 사려고 했지만 좁고 환기가 안되는 집에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대신 스탠드형 에어컨 아닌 벽걸이형 에어컨을 거실에 달아 손님이 오거나 밤에 잘 때 잠깐씩 사용하고, 빨래도 모아서 한번에 하는 식으로 최소화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폭염에 아이들과 카페로 피신한 고민지(가명)씨의 가족. 사진 고민지씨 제공
늘어난 가전제품만큼 강씨 가구(3인)의 전력 사용량도 늘었다. 강씨 가구의 최근 3년치 8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면, 전력 사용량은 2019년 372㎾h에서 2021년 528㎾h로 1.7배 증가했다. 그에 따라 전기요금 부담도 2만6280원에서 7만2450원으로 크게 늘었다. 기후위기 탓에 냉방기기 구매 비용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 지출도 덩달아 늘어난 셈이다.
강씨는 올해 더 걱정이다. 때 이른 폭염에 6월20일께부터 에어컨을 틀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7월 초에 에어컨을 가동했던 것과 비교하면 2주가량 빨라졌다. 올핸 건조기까지 돌리기 때문에 강씨의 마음은 더 불편하다. “최대한 한달 전력 사용량을 300㎾h에 맞춰보려고 한다”고 강씨가 말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때 이른 폭염 등의 영향으로 올 상반기 전력시장에서 거래된 전력거래량은 27GWh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 늘었다.
김효주(가명)씨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 붙어 있는 여름철 화상 주의 알림문. 사진 김효주씨 제공
기후변화는 주거환경이나 에너지 소비 지출뿐만 아니라 소득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번 설문 결과를 보면, ‘지난 5년간 폭염·폭우 등의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경제활동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소득 감소(13.9%), 권고사직 및 실직(6.5%), 휴직·경제활동 중지(6.4%) 등 경제적 피해를 봤다고 답한 응답자가 30% 가까이 됐다. “영향 없다”는 응답은 72%였다.
박은주씨는 비 때문에 사업 부진을 겪은 경우다. 박씨의 회사는 2020년 장마 때문에 입주하기로 한 건물의 공사가 연기되면서 입주 예정인 사무실보다 2.5배나 월세가 비싼 곳에서 약 반년 동안 머물러야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입주 연기로 회사 교육사업을 진행할 공간이 마땅찮게 되면서, 사업일정이 줄줄이 틀어졌다. 박씨는 “당시 장마로 입은 피해가 수천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경남지역에서 목수로 일하는 최창열(58)씨도 최근 손해를 입었다. 최씨의 사업체가 체육관 바닥에 깐 마루가 작업한 지 일주일도 안 돼 “배부른(마루 조각이 팽창해 산 모양으로 솟은) 상태”가 된 것이다. 최씨는 “고온다습한 탓”이라며 “나무의 섬유질 직각 방향이 아닌 섬유질 방향으로 변형된 건 목수 경력 10여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결국 일주일여 만에 하자 보수를 해야 해 직원 인건비 등 몇백만원을 손해 봤다.
기후변화 탓에 돌봄 시간과 비용도 늘었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자 지난해 서울에서 경북 김천으로 이사한 고민지(가명)씨는 요즘 자녀들과 자연 대신 대형마트나 키즈카페를 찾는다. “너무 더워서 실외에 나갔다 오면 탈진되고, 아이 몸엔 땀띠가 난다. 시원한 실내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고씨가 말했다. 늘어난 돌봄 비용은 키즈카페 입장료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씨는 집 근처에 키즈카페가 없어 구미까지 가곤 하는데, 아이 둘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타기 어려워 택시를 이용하다 보니 택시비도 적지 않게 든다. 아이의 발달도 기후위기 시대에 고씨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고씨는 “작년엔 유치원에서 매주 숲체험을 갔는데, 올여름엔 탈진 사례가 많아 숲체험 활동가가 교실로 찾아온다. 활동(하며 몸 쓰는 법을 배워야) 할 시기의 아이들이 야외놀이를 못 하고 실내에만 머물다 보니 대근육 발달도 염려된다”고 말했다.
곰팡이 방지 벽지를 셀프로 붙였던 고민지(가명)씨의 집. 사진 고민지씨 제공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건 수도권(4.15점)보다 비수도권(4.2점)이, 소득이 많은 응답자(월 소득 500만원 이상. 4.05점)보다 소득이 적은 응답자(월 소득 100만원 미만. 4.45점)가 더 컸다.
약 10년 동안 서울에서 살다가 3년 전 강원도 강릉으로 이사한 유은영(가명)씨는 도시와 지역에서 기후변화의 차이를 체감한다. 유씨는 “서울에선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에어컨이 나와서 여름이 덥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역엔 야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 비, 바람, 햇볕 등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씨는 소비가 쉬운 도시의 구조를 체감 차이의 이유로 들었다. “예를 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쓰레기 배출을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물건을 적게 살 수밖에 없는데, 서울에선 쓰레기를 버리는 게 너무 쉬워 쉽게 사고 버리게 되더라”고 유씨가 말했다.
김천으로 이사하기 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산 고민지씨는 주거환경에 따른 기후변화의 타격을 크게 느꼈다. 고씨가 서울에서 살던 집은 앞 건물과의 거리가 1m도 안 될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빌라였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빌라는 환기도 쉽지 않았다. 고씨는 “여름철엔 빨래에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아이 때문에 할 수 없이 건조기를 사서 돌렸더니 전기 차단기가 내려갔다”고 말했다. 경제사정 탓에 가격이 저렴한 대신 에너지 효율이 낮은 건조기와 에어컨을 함께 돌린 탓이다. 고씨는 “기후변화는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를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이들은 정부가 기후변화에 잘 대처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3.28점) 국외에서 보는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도 낙제 수준이다. 독일 환경단체 ‘저먼워치’ 등이 매년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평가하는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64개국 중 59위에 머물렀다. 한국보다 더 나쁜 성적표를 받은 나라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카자흐스탄, 대만, 캐나다뿐이다. 기후위기 탓에 출산과 결혼을 포기한 은주씨는 “국가가 주도해서 변화를 만들어도 될까 말까 한데, 시민이 끊임없이 국가를 설득해야 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래도 화만 내고 있을 순 없다. “개인적인 실천이 아닌, 우리의 삶의 중요한 방식들을 바꿔나가야만 변화가 있을 테니까.”(유은영)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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