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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사망·실종 7천명 슈퍼태풍…필리핀 대표 연설, 기립박수로 답하다

등록 2022-11-06 16:11수정 2022-11-10 16:56

[제27차 유엔기후변화총회]
기후협상 대표장면|③제19차 바르샤바 총회(COP19)
2013년 11월11일 폴란드 바르샤바 제19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회의장에서 슈퍼태풍 하이옌으로 국민 70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참사를 당한 필리핀 대표단의 예브 사노 대표가 울먹이며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2013년 11월11일 폴란드 바르샤바 제19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회의장에서 슈퍼태풍 하이옌으로 국민 70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참사를 당한 필리핀 대표단의 예브 사노 대표가 울먹이며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이 시간 저는 친척의 생사도 몰라, 가슴 졸이며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폭풍우로 숨져 더는 자신을 위해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을 대신해 말합니다. 고아가 된 아이들,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시간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대신해 말합니다. 우리가 과감한 조처를 약속해야 슈퍼태풍이 일상이 되는 미래를 막을 수 있습니다. 희극으로 불리는, 불필요하게 탄소만 배출하는 연례모임으로 불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과정을 고칠 수 있습니다. 이 광기를 멈출 수 있습니다.”

2013년 11월1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9) 회의장에서 필리핀의 예브 사노 대표가 떨리는 음성으로 연설을 끝냈다. 회의 개막 사흘 전 슈퍼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서는 사망·실종자만 7천명이 넘는 참혹한 피해가 발생했다. 세계 194개국에서 참석한 대표단들은 그가 발언을 마치기도 전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사노 대표는 손수건을 꺼내 참았던 눈물을 닦았다. 일부 청중도 눈시울을 붉히며 눈가를 훔쳤다.

2013년 총회는 슈퍼태풍 하이옌이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를 낸 직후 열린다는 점에서 특히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개발도상국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나 해수면 상승 등으로 입게 될 ‘손실과 피해’에 대한 선진국들의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사노 대표도 이날 연설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먹을 것을 찾기 위해 고생하는 동포들과 연대해, 회의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음식을 먹지 않겠다”며 조건부 단식을 선언하기도 했다.

2013년 슈퍼태풍 하이엔으로 필리핀 레떼섬의 타클로반의 마을이 파괴됐다. 위키미디어코먼스
2013년 슈퍼태풍 하이엔으로 필리핀 레떼섬의 타클로반의 마을이 파괴됐다. 위키미디어코먼스

바르샤바 회의에서는 신기후체제를 위한 협상을 2015년 제21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회의(COP21)에서 타결하기 위해 당사국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를 21차 총회 개최 전에 제출하기로 합의했다. 쟁점이었던 선진국과 개도국의 감축목표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각국이 제출한 감축목표를 어떻게 전 지구적 감축목표에 부합하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다음 회의로 미뤄졌다.

바르샤바 회의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이 제기한 손실과 피해 문제를 다루기 위한 ‘바르샤바 메커니즘’ 설립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손실과 피해에 대한 위험관리, 관련 기구·조직·이해관계자 간 연계, 재정·기술 지원 등을 위한 별도의 집행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선진국들은 손실과 피해 문제를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한 기존 논의 틀 안에서 논의하는 것을 선호했다. 새로운 재정 부담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반면 개도국들은 적응 문제와 분리해서 논의해, 확실한 재정 지원이 가능한 별도의 국제 메커니즘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이처럼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 가운데 바르샤뱌 메커니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에는 하이옌의 참상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 당시 나왔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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