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환경단체가 ‘지리산·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추진 공동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에요. 산양과 반달곰의 가치가 평가되어 국가 계정에 포함된다면, 우리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자연을 훼손할 수 없을 거예요. 그게 다스굽타 보고서의 핵심 주장입니다. 연합뉴스
A. 스턴 보고서에 이어 다스굽타 보고서도 내놓았어요.
19세기까지 세계를 주름 잡았던 영국. 지금은 미국과 중국에 세계의 리더 자리를 내주었지만, 지금도 자부심을 가진 게 있죠. 바로 미래 가치를 주도하고 새로운 표준을 선도하는 일이에요. 영국은 기후변화 대응, 동물복지의 선진국입니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영국이 추구하는 방향과 표준을 세계가 따라하고 있어요.
지난달 30일 주한영국대사관과 한국환경연구원(KEI) 주최로 ‘생물다양성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어요. 여기서 영국 정부는 시종일관 ‘다스굽타 보고서’를 강조했지요. 다스굽타라… 굽타? 찬드라굽타? 인도 왕조의 비밀보고서인가요? 처음 들어봤죠?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파사 다스굽타 경이 2021년 영국 재무부의 의뢰로 작성한 ‘생물다양성의 경제학’ 보고서에요. 요즈음 영국이 미는 보고서이기도 하죠.
영국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2006년 기후변화에 관한 ‘스턴 보고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니콜라스 스턴 경이 영국 재무부의 의뢰로 작성한 ‘기후변화의 경제학’ 보고서예요. 이것도 영국이 국가적으로 밀었어요. ‘기후변화 쫌 아는 동네’에서 아주 유명한 이 문건의 내용인즉슨,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은 매년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탄소 시대로 진입하면 매년 2조5000억달러의 이득이 창출되는 등 오히려 경제는 더 성장한다!”
스턴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미적거리는 세계 각국의 태도를 바꾸었어요.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흐름이 만들어진 거죠. 그래서 지금 각국은 저탄소 경제를 향해 경쟁하며 뛰고 있어요. (우리나라만 빼고요. 음?!) 미국도 얼마 전 2032년 자동차 생산량의 3분의 2를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폭탄선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파사 다스굽타 경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교수입니다. 영국 재무부의 의뢰로 2021년 생물다양성의 경제학을 다룬 다스굽타 보고서를 냈어요. 이 보고서는 자연과 기후변화를 보는 관점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돼요. 영국왕립학회 제공
제 생각으론, 다스굽타 보고서는 스턴 보고서에 이어 기후대응의 두번째 이정표가 될 것 같아요. 기후대응 선진국들은 화력발전소를 태양열∙풍력 발전소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이 궤도에 올랐다고 보고, 최근 들어선 자연보전을 통한 해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지만, 숲과 나무, 동물과 식물을 보전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거든요. 지난달 말 과학전문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린 논문에는 고래와 누, 상어, 늑대 등 9종의 동물을 복원할 경우 연간 64억톤의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결과가 담겼어요. 이 정도면 우리가 ‘1.5도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연간 감축량에 맞먹는 양이죠.
다스굽타 보고서는 자연을 새롭게 보자고 제안합니다. 즉, 자연을 ‘자본’(자산)으로 보자는 거예요. 심오한 자연을 돈으로 보자니, 불편하다고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자연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돈으로 환산해 보여줘야 사람들이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한다는 사실!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는 데 유용하다는 거죠.
다스굽타 보고서에 인용된 ‘1992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1인당 부(wealth per capita)’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생산자본과 인적자본은 상승 추세지만, 자연자본은 감소 중이에요. 이 세가지 자본이 ‘포괄적 부’를 이루는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결코 부자가 된 거라고 볼 수 없죠.
다스굽타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그래서 맘대로 써왔던 대기와 바다 그리고 숲을 자연자본이라고 봐요. 우리 인류가 가진 ‘포괄적 부’에 포함해야 한다고 보지요. 포괄적 부는 앞서 말한 자연자본과 인적자본, 생산자본 등 세가지로 구성돼요. 1992~2014년 동안 생산자본은 2배로 증가했고, 인적자본은 15% 증가했지만, 자연자본은 40% 감소했죠. 결론적으로 인류는 그렇게 부자가 된 게 아닌 셈이죠.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얼마 전 설악산국립공원의 청정지역에 오색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을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최종 허가했습니다. 우리는 탐방객 수를 예측하고 시설 투자 비용을 따지면서 ‘경제성이 있다, 없다’라고 했지, 케이블카로 인해 훼손되는 숲과 교란되는 멸종위기종 산양의 가치는 반영하지 않았어요. 다스굽타는 바로 이런 자연의 가치를 평가해 각종 국가 정책과 사업에 반영하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자연의 가치를 산정했다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경제성이 전혀 없는 사업이 됐겠죠?
국제표준화기구(ISO)의 모태가 된 영국 국가표준기구(BSI)는 이런 취지에서 지난해 ‘자연자본 계정(natural capital accounts) 작성을 위한 지침’을 발표했어요. 두둥! 뭔가 해일처럼 몰려오는 세계관의 전환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요?
한국환경연구원(KEI)에서 관련 연구를 하는 이후승 연구위원은 “그동안 국가가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자연의 희생을 불가피한 영향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자연을 자산으로 평가하면 새로운 인식의 창이 열린다”고 말해요. 그는 “영국의 환경 주무부서인 환경식품농무부(DEFRA)가 아닌 재무부에서 다스굽타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라고 강조하지요. 우리나라 한국환경연구원도 생물 분류군마다 각각의 다양성을 평가했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요.
기후변화 쫌 아는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