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동부 서포크주 시즈웰에 있는 시즈웰 비 원자력 발전소. 존 필딩,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기후위기 시대의 원자력 발전은 대안일까, 또 다른 위험일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2일(현지시각) 핵폐기물 관련 정부 자문관을 지냈던 앤디 블로어스 오픈유니버시티 교수(지리학)의 말을 인용해 영국 원자력 발전소들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블로어스 교수는 최근 <도시·국가계획학회> 학술지에 “정치인들은 원전을 건설하는 주된 이유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저탄소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들지만, 기후위기가 원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썼다. 원전 대부분이 해안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심각한 폭풍, 홍수 가능성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점을 우려한 것이다.
원전이 주로 해안가에 있는 이유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과 거리가 멀고, 원전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냉각수를 바다에서 쉽게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원자로에서 우라늄이 핵분열하며 만들어내는 열로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을 돌리는 고온·고압의 증기는 냉각수로 식혀 다시 물로 만들어야 한다. 냉각수는 증기를 식힌 뒤 온도가 6~7도가량 오른 온배수로 바다에 다시 방류되는데, 원전 1기당 매초 50~70톤의 물이 배출된다고 한다. 세계 각지의 원전들이 대부분 해안가(혹은 강가)에 있는 이유다.
블로어스 교수는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원전을 어디 지을 것인가 고려하는 수준은 1980년대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11년 신규 원전 부지로 지정된 지역들은 1세대 원전이 지어진 지역과 같다.
그는 과거 원전 부지를 선정할 때는 안전 문제, 냉각수 이용 편의성 등을 주요하게 고려했다면, 2세대 원전 부지 선정 배경에는 원자력 산업에 종사하는 지역 주민들의 원전 수용성이 높아진 것까지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원전이 가동되는 긴 세월 동안 닥칠지 모르는 다양한 기후 상황은 부지 선정의 고려 요소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전은 한번 지어지면 최소 50년은 운영된다. 가동을 멈춘 원전의 남은 폐기물을 제거하고, 완전히 냉각시키려면 폐쇄 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영국은 대표적인 ‘친원전’ 국가다. 영국은 2019년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를 위한 10대 중점계획 중 하나로 원자력 기술 활용을 포함했다. 영국의 친원전 행보에 우리 정부의 모습도 겹쳐 보인다. 지난해 5월 출범 직후 ‘탈원전 폐기’를 주요 국정과제로 선언했던 윤석열 정부는 지난 15일 경북 울진군에서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 착수식을 여는 등 ‘원전 생태계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해안을 따라 줄줄이 건설된 원전 라인이 더 촘촘해진 셈이다.
한편 영국 정부의 공식 기후 자문단인 기후변화위원회(CCC)는 지난 3월 영국의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연간 평가 보고서를 내며 영국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며 “잃어버린 10년”을 흘려보냈다고 지적했다.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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