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류된 마지막 수족관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돌고래 희망이가 점프를 보여주기 위해 높이 뛰어올랐어요. 근데 그 밑에 웅포의 새끼인 미돌이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죠. 희망이는 미돌이를 피해 내려갔는데, 그만…”
지난 1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연실(43)씨는 2004년께 벌어진 ‘사고’ 얘기를 다시 꺼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시멘트 바닥은 추락한 희망이의 피로 빨갛게 물들었고, 그날 돌고래쇼는 급하게 막을 내려야 했다. 이 사연은 2012년 3월3일
‘제돌이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남방큰돌고래 야생방류를 제기한 〈한겨레〉 보도를 통해 처음 공개 됐다.
박씨는 당시 언론에 처음으로 나선 증언자였다.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 돌고래 조련사로 일했던 그의 입을 통해 수족관에서 고통스럽고도 짧은 생을 마치는 돌고래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수많은 사건들이 이어졌다. 2013년, 제돌이를 시작으로 퍼시픽리솜에 의해 불법포획돼 이곳 수족관과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춘삼이와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 금등이, 대포 그리고 비봉이 등 모두 8마리의 돌고래가 야생의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박씨는 조용히 바깥에서 지켜봤다.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갈 때마다 “너무 좋았다”며 동시에 “돌고래들이 수족관에 갇혀 있던 고통스러운 모습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해미’가 생각난다고 했다. 일본에서 수입된 큰돌고래였는데, “아주 착하고 약한 아이”였다. 고등어 안에다가 비타민제, 간장약 등을 한 움큼 넣어 먹여야 했지만, 결국은 수족관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 4차례의 방류, 2차례의 성공
국내 최초 야생방류 프로젝트에 따라 제돌이와 춘삼이가 희망이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 돌아간 지 18일로 10주년이 됐다. 해양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는 이를 기념해 지난 16일 제주 서귀포시 도구리알 공원에서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를 열었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는 이 자리에서 “야생방류로 남방큰돌고래는 이제 수족관에 한 마리도 없다”며 “돌고래를 수족관에서 새로 사육하지 못하도록 법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신도리에서 열린 ‘제12회 남방큰돌고래의 날’에서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의 김미연 부대표(왼쪽)가 남방큰돌고래 생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귀포/남종영 기자
제돌이의 야생방류 이후 10년 동안 한국의 돌고래쇼 산업은 크게 달라졌다. 정부는 2021년 수족관에서 전시·공연용 돌고래의 신규 도입을 금지하는 ‘돌핀 프리’ 선언을 했고, 이를 담은 동물원·수족관법이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사이 한때 수족관 7곳에서 40마리 넘게 기르던 돌고래·흰고래 등은 지난달 현재 5곳 21마리로 줄었다.
지난해 방송된 인기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남방큰돌고래가 소개된 뒤로,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에는 관찰객이 끊이지 않는다. 해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돌핀맨’ 이정준 감독팀은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관찰되는 대정읍에 정착해 수년째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도 이곳이 터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야생방류 실적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네차례의 야생방류 가운데 최근 두번의 방류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2017년 방류된 금등이와 대포 그리고 지난해 방사된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는 방류 직후 종적을 감췄다. 연안 1~2㎞를 서식지로 하는 종 특성상 여태 발견되지 않았다면 길을 잃고 폐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함께 방류된 춘삼이가 2016년 8월 그의 새끼와 함께 목격됐다. 돌고래쇼를 하던 돌고래가 야생에 나가 새끼를 낳은 것은 한국이 최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 해양수산부 “야생방류 백서 내겠다”
한목소리를 냈던 동물∙환경 단체들도 비봉이의 야생방류를 두고 찬반이 갈렸다. 비봉이를 돌려보내기 위해 세워진 민관 방류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은 단체들은 이번 비봉이의 야생방류가 5년 전 금등이∙대포의 사례에서 배우지 못한 ‘예견된 실패’라고 주장한다.
야생방류에 성공했던 돌고래들은 수족관 감금 기간이 5~10년이지만, 실패한 돌고래들의 감금 기간은 15~20년이었다. 남방큰돌고래는 대개 야생생활에 필수적인 생태적∙사회적 기술을 배우지 못한 어린 나이에 잡혀 온다. 게다가 금등이, 대포, 비봉이처럼 수족관 감금 기간이 길어질수록 바다에 돌아가도 길을 찾고 무리에 합류하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방류에 찬성해 비봉이 민관 방류협의체에 들어간 핫핑크돌핀스의 조 대표는 “퍼시픽리솜이 문을 닫기로 해서 비봉이는 다른 수족관으로 이송돼 비참한 삶을 살게 될 상황이었다”며 “최선의 방법이 야생방류였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방류 사흘 전 비봉이가 여전히 사람을 따르고 몸무게가 많이 줄어든 점을 얘기했지만, 방류협의체에서 방류 연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류협의체를 이끈 신재영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장은 지난 14일 “제돌이부터 시작한 10년의 야생방류 백서를 올해 안에 펴낼 것”이라며 “(실패한) 비봉이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부분들과 의사 결정 과정까지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초 비봉이에 대한 백서를 방류 돌고래 8마리 전체로 확대함으로써 논점을 흐리려 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