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의 기후 변화 특사이자 COP28 의장인 술탄 알 자베르가 지난 9월3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미래 박물관에서 열린 기후 미래 주간 행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A. 화석연료 퇴출과 화석연료 ‘배출’ 퇴출. 비슷한 말 같지만, 유엔기후변화 총회의 핵심 이슈일 정도로 ‘근본적으로’ 다른 말입니다. 화석연료를 계속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거든요. 유럽연합 등이 주장하는 화석연료 퇴출은 말 그대로 화석연료의 사용 자체를 단계적으로 퇴출하자는 뜻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들이 주장하는 화석연료 배출 퇴출은 탄소포집 및 저장(CCS) 같은 기술로 배출을 점차 감축하자는 의미입니다. 탄소포집 및 저장은 가스전, 화력 발전,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포집해 파이프라인 등으로 이동시킨 후 이를 이용하거나 지층 깊숙이 저장하는 단계로 이뤄지는 기술입니다. 후자의 경우, 화석연료를 계속 쓰긴 한다는 뜻이죠.
최근 러시아가 11월30일부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를 앞두고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유엔이 지난 2일까지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의견을 받았는데,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러시아는 이런 내용을 제시한 겁니다. 러시아는 COP28에서 화석연료를 퇴출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걸 우려했던 것 같아요. 앞서 프랑스, 케냐, 칠레, 콜롬비아, 투발루, 바누아투 등 태평양 섬 국가를 포함한 17개 나라가 지난 9월20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기후정상회의에 맞춰 화석 연료 퇴출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당시 전 세계 시민사회에서도 ‘화석연료를 멈추기 위한 글로벌 투쟁’을 진행했거든요.
화석연료 퇴출 문제는 지난 6월 초 독일 본에서 COP28을 준비하기 위해 열린 유엔 기후회의에서도 합의를 찾지 못했던 사안입니다. 이때도 유럽연합과 태평양 도서국 등은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당사국총회의 안건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들은 이에 반대하며 ‘배출’을 줄이자고 했거든요. COP28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협상의 결과물로 만들려는 세력과 이를 공식안건으로도 채택하지 못하게 하려는 세력이 맞서고 있는 것이죠.
화석연료를 쓰든 안 쓰든, 결과적으로 지구온도를 높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로(0)가 되면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에 대해 기후·환경 단체인 플랜 1.5 소속 박지혜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은 이산화탄소를 캡쳐할 수 있는 기술(CCS)이 상용화된 게 없고, 연구·개발 단계입니다. 불확실한 기술을 믿고 배출량을 줄이면 된다고 합의하면, (산유국과 화석연료 기업들이) 화석연료 시설을 증설할 수 있습니다. 반면 화석연료 사용을 퇴출하기로 하면, 화석연료 (사업) 증설을 하기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화석연료 사용을 더 늘리면 안 된다는 점은 국제기구들이 인정하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유엔은 지난 5일 발표한 전지구적이행점검(GST)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가 화석연료 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 9월 ‘넷제로 로드맵’에서 ‘1.5도 목표’를 지키려면 2030년까지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수요를 25% 감축하고, 2050년에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제시했고요.
하지만 현재 상황은 밝지 않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8월 공개한 ‘화석연료 보조금 데이터’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전 세계 170개국 정부가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산업에 7조달러(약 9300조원)의 보조금을 집행한 것으로 추정되거든요. 이는 2021년 5조7천억달러 보다 22.8% 증가한 규모로, 2년 연속 역대 최고치입니다. 화석연료가 문제라고 하면서 보조금은 오히려 늘리고 있는 전 세계 국가들이 화석연료 퇴출을 합의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또한 지난해 COP27(이집트)에 이어 올해 COP28(아랍에미리트) 의장국도 산유국입니다.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 COP28 의장은 국영 아부다비 석유공사의 최고경영자이기도 합니다. ‘배출’ 두 글자가 끼지 않은 ‘화석연료 퇴출’이 COP28 공식안건으로 채택될 지, COP28에서는 어떤 합의를 만들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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