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시위 뒷이야기] 국회 기습 시위 ‘멸종반란한국’의 유쾌한 기후운동 “예측 불가능한 재난보단 예상 가능한 연행이 낫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서점 풀무질에서 <한겨레>에 ‘그 날의 시위’ 뒷이야기를 풀어놓은 멸종반란한국의 청년들. 왼쪽부터 김지훈·문성웅·홍성환·황혜정·강다연씨.
“흐름을 바꾸고 싶었어요. 기후위기라고 하면 북극곰 불쌍하다고 끝나는 그런 여론? 그런 게 불만스러웠어요. 인간도 같은 동물로서 이 문제는 인간이 책임지고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인데.”(문성웅)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게 가장 보수적인 것이잖아요. 기후위기가 진짜 위기상황이라면 코로나19 대응하듯이 해야 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있어서 극단의 조치를, 처방을 하라는 요구에요.”(홍성환)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부가 옳은 길로 가려면 국민이 먼저 알아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강다연)
지난달 19일 오전 8시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노란 우비를 입은 청년 6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자전거 자물쇠로 국회 철문에 자신의 목을 묶고 “우리는 살고 싶다”고 외쳤다. ‘우리는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 ‘2025 탄소중립’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다른 청년들이 옆에 섰다. 같은 날 열린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공청회’를 앞두고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항의 시위였다. 20분 뒤 경찰은 절단기를 이용해 자물쇠를 끊었고 목을 잠근 6명과 피켓을 든 청년들까지 11명을 업무방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기후운동 사상 첫 연행 사례다.
이들이 국회 정문에 목을 건 채 “살고 싶다”고 소리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사회과학서점 풀무질에서 시위에 참여한 20∼30대 청년 홍성환·문성웅·황혜정·강다연·김지훈씨를 만났다. 이들은 ‘멸종반란한국’이라는 모임으로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만나 기후위기 문제를 고민한다. 풀무질에서 여는 읽기모임에서 첫 만남을 한 이들은 서로의 불안과 우울을 돌보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자연스럽게 ‘비폭력 시민 불복종’ 가치를 중시하는 기후운동 시민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이번 시위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연대체다. 살아남기 힘든 시대, 웃음과 눈물 그리고 철학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둥지가 되어주는 돌봄 공동체이기도 하다.
“지구 온도 상승폭이 1.5℃를 넘어가면 그동안 겪은 것과는 전혀 다른 재난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인류문명의 붕괴와 인간성의 상실을 겪는 것보다는 예상 가능한 연행을 감수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체포를 불사하고 시위를 벌인 이유를 묻자 황씨는 이렇게 답했다.
2018년 폭염, 2019년 따뜻했던 겨울, 올해 코로나19와 긴 장마와 집중호우처럼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혼란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재난은 이들의 미래를 예측 불가능한 영역으로 몰고갔다. 황씨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고 이제 노년의 계획마저 흔들릴까 두렵다.
“할머니가 되면 제 고향 부산에서 요가를 하며 지내고 싶었거든요. 만약 (기후변화로) 부산이 바다에 잠기면 제 미래는 없어지는 것인데, 그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비용 아닌가요? 이 정도 전과를 치러서 막을 수 있으면 오히려 남는 장사죠.”
지난달 29일 책방 풀무질에서 멸종반란한국의 청년들을 만나 ’그 날의 시위’ 뒷이야기를 풀었다. 왼쪽부터 김지훈, 황혜정, 홍성환, 문성웅씨.
정부의 대응은 이러한 청년들의 위기 의식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협의체(IPCC)는 ‘1.5℃ 특별보고서’에서 “지구 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려면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선언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처럼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모인 청년들은 30년 뒤 먼 미래가 아닌 202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을 정도로 급진적인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쏟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내 기후운동 사상 첫 연행 사례를 남겼지만, 사실 이들 모두 시위나 체포 경험이 전무한 ‘준법시민’들이다. 첫 시위 과정은 우왕좌왕했고 얼떨떨했다. “전기차를 타고 국회로 갈 계획이었는데 시위 전날 타이어에 구멍이 났어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빗속에서 다같이 ‘멘붕’에 빠져있다가 새벽에 겨우 수리를 했죠. 지인들한테는 ‘내일 폭우가 내린다는데 시위 할수 있겠냐’며 걱정하는 전화도 걸려왔고요.” 홍씨는 시위 전날 상황을 이렇게 돌아봤다.
지난달 19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멸종반란한국’ 활동가들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당일 상황도 계획 밖이긴 마찬가지였다.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 많은 경찰 인력이 동원됐고 몇몇 언론이 그들을 찾았다. 홍씨는 ‘운이 따라줬다’고 여겼다. “경찰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면서 ‘일이 왜 이렇게 커지지?’ 생각하면서도 ‘행운이다’ 싶었죠. 자물쇠는 생각보다 쉽게 끊겼고요. 우리끼리는 ‘경찰이 톱으로 자물쇠를 썰면 어떡하냐. 다같이 살자고 이러는 건데 그냥 우리가 직접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얘기도 했거든요. 근데 황당하게 절단기로 싹둑 끊기더라고요.”
연행되어서도 기후운동은 계속됐다. 경찰서에서 이들은 조서를 작성하는 경찰에게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십니까”를 묻고 “야외 근무나 긴급 출동 업무가 많은 경찰과 소방관들은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연행돼 경찰 버스 안에 앉아 있는데 우울하더라고요. 같이 부를 노래 하나가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지요. 하하.” (홍성환)
다음날 예상 밖의 성과에 이튿날 시위 모습이 담긴 <한겨레> 지면 신문을 구입해 자축도 했다. 이들은 시위 다음날까지 뿌듯함에 어깨가 올라가 있었다고 말했다. “떡집에서 축하떡도 사와서 책방 풀무질에 모여 나눠먹었어요. 서로 ‘우리가 해냈어요’라고 말하면서. 다들 들뜨고 어깨가 이만큼 올라가 있었어요.” (문성웅) “우리가 만든 ‘작은 파장’이라고 하며 웃었죠.”(황혜정)
벌금형 등의 ‘전과’ 기록이 부담되지는 않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쿨’한 답변이 쏟아졌다. “과외 학생에게 ‘곧 큰 돈이 필요하니 너가 성적이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을 믿고 나선 일이었으니 정말 큰 돈을 내야 한다면 모금을 해볼까?”(문성웅), “전과기록이 남더라도 이를 두고 나를 거부하는 회사는 나도 가고 싶은 조직이 아니다.”(김지훈), “국회의원들은 집시법 위반 정도는 전과도 아니던데. 미래세대에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게 더 문제”(홍성환), “대학생이라 취업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정부 견제가 필요하다.”(강다연)
이들은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빨간약’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홍씨는 개인의 실천보다는 기업과 정부에 책임을 묻는 쪽에 집중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잖아요. 분리수거 잘하는 것 같이 개인의 실천만으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때가 아니에요. 탄소배출의 주범인 기업과 정부에 변화를 요구할 때입니다.”
황씨는 기후위기를 막을 방법으로 탈육식을 제안한다. “탈육식을 하면 동물과 이웃이 겪는 기후위기를 나의 일로 여기는 공감능력이 커져요. 직관적으로 느끼는 슬픔과 분노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고요.”
앞으로도 이들은 기후위기를 주제로 계속 ‘일’을 벌일 작정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처럼, 우리 역할은 기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게끔 ‘빨간약’을 제시하는 거예요. 앞으로도 재밌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이슈를 만들려고 합니다.”(홍성환)
글·사진·영상/김민제 최우리 기자 summer@hani.co.kr
‘멸종반란한국’ 활동가들이 국회 앞 기습시위를 벌인 사진기사가 1면에 담긴 지난달 20일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