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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기후위기는 인권 위기”…인권위로 간 기후변화 피해자들

등록 2020-12-16 13:59수정 2022-01-12 09:59

기후위기인권그룹,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진정 접수
농업인, 건설노동자, 기후우울증 피해자 등 41명 진정 참여
장맛비가 소강 상태인 지난 8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 세워져 있는 캐리커처가 진흙물에 잠겨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장맛비가 소강 상태인 지난 8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 세워져 있는 캐리커처가 진흙물에 잠겨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올해 여름 56일 간 장마에 작물은 살 수 없는 환경이 됐습니다. 고추는 한번도 제대로 못 따고 탄저병 때문에 다 뽑아버리는 걸 보고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이 오고 있구나 했습니다.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국민의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을지, 우리 모두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됐습니다.

농업인, 가스검침원, 방송노동자, 건설노동자, 해수면 상승지역 거주민, 기후우울증 피해자 등 41명의 진정인이 기후위기로 인해 생명권과 건강권 등 인권을 침해받았다며 1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과 함께 한 녹색연합과 녹색법률센터 등 기후·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인권그룹은 “가속화되는 기후위기와 미흡한 정부의 대응으로 인해 날씨에 취약한 계층과 일반 시민들의 인권침해가 심화되는 현실을 고발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과 건강권,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받았다는 취지다. 진정 대상은 대한민국 정부다.

진정인들은 기후위기가 지금까지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표 진정인으로 나선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장은 “예전에도 대형 태풍이 왔을 때 농민들이 피해를 입곤 했지만 어느 시기부터 대형 태풍이 나타나는 주기가 짧아졌고 오는 시기도 점점 늦어진다. 올해 여름에는 56일 간 비가 왔는데 장마라기보다는 우기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기후에 따라 작목이 변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식량 위기가 다가오는 것 같다. 농민의 삶이 위협당하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진정에는 재산이나 업무상의 피해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로 인한 우울증 등 건강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참여했다.

진정에 참여한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후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기후 우울증이라는 것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기후 우울증은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치료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나서야지만 풀리는 문제”라고 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기후위기인권그룹과 일부 진정인은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를 열고 이런 피해를 알린 바 있다.

증언대회에 참여한 건설노동자 이상범씨는 “기후위기 영향을 많이 받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막연하다. (폭염 등으로) 일이 힘들어 집에 가면 소주 한 병 하고 잠자리 들기 바쁘다. 그런 날씨에 회사가 일을 시키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이고 살인미수”라고 했다.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나의 미래에 기후위기가 존재한다면 행복할 수 없겠구나, 매일 생존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우울하게 지냈다”고 했다.

기후위기인권그룹은 “이번 인권위 진정은 정부와 기업들이 나서 새로운 돈벌이로 기후위기를 소비하지 않고 인권의 문제로 대응해 나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권위를 향해서는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구제 조치와 이행, 법령과 정책 개선을 권고하고 의견표명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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